기억하기와 드러내기

이승하의 '어머니'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by박민영

글쓰기 치료는 문학치료의 한 방법으로서 표현적 글쓰기를 활용하여 자기 성찰과 정서적 환기를 돕는 활동이다. 이 글에서는 글쓰기 치료의 이론과 실제를 ‘기억하기’와 ‘드러내기’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글쓰기 치료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이른바 ‘성찰적 글쓰기’의 형식과 기법이다. 일반적인 글쓰기 교육에서는 글쓰기의 영역을 ‘성찰적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 실용적 글쓰기’로 구분한다. 학술적 글쓰기나 실용적 글쓰기가 독자를 향한 정보 전달에 중심에 둔다면, 성찰적 글쓰기는 필자 자신에게 집중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 기억과 상처를 언어화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목적이 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글 쓰는 일을 어려워한다. SNS 등으로 일상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조차 막상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려 하면 막막함을 느낀다. 이는 자기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몇 줄의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글쓰기 자체가 지닌 정서적 환기와 해방의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글쓰기 치료의 출발점이다.


글쓰기 치료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억압되었던 개인의 감정과 상처를 언어화하고,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면서 자기 이해를 심화하게 된다. 결국 글쓰기 치료의 핵심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에 있다. 상처와 기억을 언어로 드러내는 과정 속에서 개인은 자기 삶을 다시 서사화하고, 그 서사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성찰적 글쓰기 혹은 자기 서사


이승하의 작품 세계는 상처의 기억을 언어로 견뎌낸 자기 서사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의 산문과 시에는 가난과 가정 폭력, 불안정한 청소년기, 반복된 가출과 절망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상처는 단순한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글쓰기를 통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서사화한다. 억압된 기억과 불안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언어화함으로써 자기 삶을 이해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이승하는 산문 「나를 키운 것은 10할이 어머니였다」에서 방황으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를 회고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차례 가출과 자살 시도를 반복하였으며, 불면과 신경성 질환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바카라임지면서도 상처 입은 아들을 끝까지 붙들어 준 인물로 기억된다.


나는 남들 모두 멀쩡히 다니는 고등학교 생활을 2개월밖에 하지 않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달아났던 가출소년이었다. 어머니의 가슴은 그때마다 얼마나 시커멓게 멍들었으랴. 몇 차례의 자살 기도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 때 어머니는 눈물 어린 호소로 자식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하셨다. (...) 검정고시에는 첫 번째 가출을 시도한 바로 그해 8월에 합격했지만 대학입시에서는 연전연패했다. 입시 준비에 매진해도 쉽지 않은 명문대학 입학을 오로지 독학(獨學)으로 준비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미역국을 먹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면증을 비롯한 각종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었고, 어머니의 주름살은 나날이 늘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지독한 문제아였다. (...)
서정주 시인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겠지만 나를 키운 것은 10할이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살을 나는 사랑한다. 올해 일흔넷 인 어머니의 여생이 조금은 덜 고통스럽기를 소망한다.

-이승하, 「나를 키운 것은 10할이 어머니였다」 부분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서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청소년기의 불안과 결핍을 실패의 경험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글쓰기 치료에서 말하는 ‘자전적 기억의 재구성’과 깊이 연결된다. 기억을 다시 언어화하는 행위를 통해 과거의 상처는 더 이상 억압된 고통에 머물지 않고, 이해 가능한 삶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특히 “나를 키운 것은 10할이 어머니였다.”라는 표현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다시 확인하려는 서사적 진술로 읽힌다. 이는 서정주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를 변주한 표현이기도 하다. 서정주가 자신의 존재를 운명적이고 자연적인 힘 속에서 이해하였다면, 이승하는 자신의 삶을 지탱한 힘을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글쓰기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재인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서사의 특징은 시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에서도 이어진다.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던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이승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전문


시 속에서 화자는 늙고 쇠약해진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과 삶의 고통을 함께 응시한다. 특히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라는 대목에서는 언어 이전의 깊은 정서적 교감이 드러난다. 말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신체적 접촉은 모자의 관계가 언어 이전의 깊은 정서적 차원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효(孝)의 정서를 넘어, 상처 입은 아들이 결국 어머니를 돌보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승하의 작품에서 어머니는 상처 입은 삶을 견디게 한 근원적 존재이다. 동시에 그의 글쓰기는 억압된 기억과 고통을 반복적으로 언어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회복하려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부정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서사화함으로써 삶을 견디는 힘으로 전환하였다.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이승하의 작품은 기억의 언어화가 자기 이해와 정서적 회복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반복적으로 상처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의미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순간, 비로소 그것을 성찰하고 견딜 수 있게 된다. 이승하의 자기 서사는 바로 그러한 글쓰기의 치유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욕망과 상실의 내밀한 기록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1984)은 기억과 욕망, 상실의 경험을 자기 서사로 재구성한 대표적인 자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뒤라스에게 콩쿠르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을 바탕으로 식민지 베트남에서의 성장 경험과 첫사랑의 기억을 서술한다. 그러나 『연인』은 단순한 회고담에 머물지 않는다. 뒤라스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기억 자체를 하나의 서사적 탐색 과정으로 만든다.


뒤라스에게 기억은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상처와 욕망을 다시 소환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연인』의 기억은 객관적 사실의 재현이라기보다,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경험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회고적 서사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자기 경험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삶을 재해석하게 되는 문학치료의 과정과도 깊이 연결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


뒤라스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애정은 폭력적인 큰아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그녀는 가족 안에서 깊은 결핍과 소외를 경험한다. 이러한 정서적 결핍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슬픔과 외로움의 정조로 이어진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내레이터는 어린 시절의 자기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날 소녀의 몸차림에서 대담하고 놀라운 것은 꼭 하이힐만은 아니었다. 그날 소녀는 남성용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장밋빛이 도는 일종의 펠트 모자로 커다란 검은 리본까지 달려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19면(김인환 역, 민음사, 2008)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레이터가 과거의 자신을 ‘나’가 아니라 ‘소녀’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서술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려는 시선과 관련된다. 즉 현재의 내레이터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타인처럼 응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거리 두기를 통해 기억을 객관화하고 있다.


이러한 한 소녀에 대한 묘사는 내면의 고백에 이르면 다시 ‘나’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은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위의 바카라, 57면


여기서 슬픔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와 결합된 정서로 나타난다. 내레이터는 슬픔을 외부의 감정으로 설명하지 않고, “슬픔이 내 이름 같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상실과 결핍의 경험이 얼마나 깊이 자기 정체성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슬픔은 더 이상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규정하는 정서적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특히 뒤라스는 자신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이미지와 감각, 단편적인 기억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상처의 기억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인 감각과 분위기의 형태로 회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설 속 소녀는 중국인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여성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사랑의 경험이라기보다, 결핍된 애정과 존재 인정에 대한 갈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가족 안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소녀는 낯선 타자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성장의 경험인 동시에 깊은 슬픔의 기억으로 남는다.


뒤라스는 작품 속에서 연인과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콜랑의 그 연인은 사춘기의 이 백인 소녀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몰두했다. 매일 밤 그녀와 함께 추구하는 희열이 그의 모든 시간을, 그의 인생을 구속했다. (…) 그들이 나눈 말이라고는 밤마다 침실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서로의 이름을 부른 것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렇다. 난 그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믿었고 그는 자신이 미처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위의 바카라 117면


『연인』에서 시점의 변화는 기억 속 자아의 분열과 중첩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현재의 화자는 과거의 자신을 ‘소녀’ 혹은 ‘그녀’로 객관화하면서도, 다시 ‘나’의 시점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시점의 이동은 과거의 상처를 직접 응시하기 어려운 자아가 기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서사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거리 두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곧바로 말하기 어려울 때, 그것을 제삼자의 이야기처럼 우회적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뒤라스가 과거의 자신을 ‘소녀’라고 부르는 순간, 기억 속의 자아는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나’의 시점으로 돌아오면서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자기 안에서 다시 해석되고 의미화된다.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연인』은 기억을 서사화하는 과정이 곧 자기 이해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라스는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해석하고,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글쓰기 과정 속에서 개인은 과거의 상처를 고통으로 남겨 두지 않고, 자기 삶을 이해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하게 된다.


결국 『연인』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과 상실, 그리고 자기 존재를 이해하려는 한 인간의 자기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글쓰기가 단순한 기록 행위를 넘어 자기 이해와 기억의 재구성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뒤라스의 자기 서사는 과거의 상실과 욕망을 언어화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다시 이해하려는 문학적 시도라 할 수 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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