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승화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 팬』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by박민영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서사화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무의식 속에 녹여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하는 작가도 있다. 앞서 살펴본 이승하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자기 서사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경험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펼쳐 보였다면, 제임스 매튜 배리와 메리 셸리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변형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특히 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상상적 서사로 승화된 사례를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매튜 배리(1860-1937)의 작품 세계는 어린 시절 상실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배리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던 형 데이비드가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형의 죽음은 가족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특히 어머니는 깊은 슬픔 속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 배리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죽은 형의 옷을 입고 형의 역할을 연기하곤 했다. 어머니 앞에서 죽은 형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고, 형이 세상을 떠난 나이였던 열네 살의 모습 속에 머물고자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놀이의 차원을 넘어, 충격 속에서 어린아이가 선택한 무의식적 동일시의 방식이었다.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상실을 견디기 어려운 개인은 때로 잃어버린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상처를 견디고, 그것을 내면화한다. 배리에게 죽은 형은 부재하는 존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대신 살아내야 하는 또 하나의 자아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동일시는 훗날 『피터 팬: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작품 속에서 상징적으로 형상화된다. 피터 팬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과 성장, 바카라임과 죽음의 세계를 거부하고, 환상의 공간인 네버랜드에서 영원한 유년의 시간을 살아간다. 이 ‘자라지 않는 소년’의 형상은 어린 시절을 형의 죽음과 어머니의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던 배리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즉, 피터 팬은 상실된 형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던 배리 자신의 내면이 상징적으로 투사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죽은 형은 영원히 열네 살로 남게 되었다. 『피터 팬』은 이러한 무의식적 기억이 환상적 이야기로 승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제임스 매튜 배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1953)의 포스터


문학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자기 서사와는 또 다른 방식의 글쓰기 치료이다. 앞서 살펴본 이승하와 뒤라스가 기억을 직접 언어화하였다면, 배리는 자신의 상처를 환상적 인물과 이야기 속에 우회적으로 투사하였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실과 결핍이 상징적 서사로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상징화 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고통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며, 무의식적 상처를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피터 팬』에 등장하는 네버랜드 역시 이러한 상징적 공간으로 읽을 수 있다. 현실의 시간과 바카라임, 상실과 죽음이 유예되는 이 공간은 어린 배리가 꿈꾸었던 무의식적 피난처이자, 성장과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환상의 장소이다. 따라서 『피터 팬』은 환상 동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상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무의식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배리가 자신의 작품을 개인적 상처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훗날 그는 『피터 팬』의 저작권을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어린이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에 기증하였다. 이후 『피터 팬』은 수많은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병원의 재정적 기반이 되었고, 상처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다시 다른 생명을 돌보는 힘으로 확장되었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피터 팬의 이미지로 각인된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피터 팬>(1953)의 오프닝 크레디트에도 이 병원에 대한 감사의 말이 등장한다.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어린이 병원


방문학자로 런던 블룸즈버리 지역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우연히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어리이 병원 앞에서 피터 팬의 동상을 만난 적이 있다. 병원 입구에는 날렵한 소년의 형상을 한 피터 팬이 있었고, 그의 손 끝에는 요정 팅커벨의 형상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어린이 병원 앞에 피터 팬이 있는지 의아했지만, 곧 배리가 『피터 팬』의 저작권을 그 병원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런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어린이 병원 입구에 위치한 피터팬의 동상. 요정 가루를 아픈 아이들에게 불어주는 형상이다. 왼손 끝에 팅커벨이 있다. 이미지 출처: 자체 제작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병원 앞을 지나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보호자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가던 병약한 아이들이 잠시 멈춰 미소를 띠며 피터 팬 동상을 바라보던 장면은, 상실의 기억 속에서 태어난 한 편의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의 삶을 위로하는 상징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특히 팅커벨의 요정 가루를 불어 뿌리듯 손바닥을 입 앞으로 내밀고 있는 피터팬의 모습은, 마치 고통 속의 아이들에게 잠시라도 날아오를 수 있는 환상의 힘을 건네는 듯했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요정 가루는 사람들을 날 수 있게 하다. 웬디의 남매들이 날아서 네버랜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피터 팬의 손에 묻어 있던 팅커 벨의 요정 가루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실 속에서 탄생한 피터 팬이 현실의 아픈 아이들을 위로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학의 치유적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상처가 예술로 승화되고, 그 예술이 다시 타인을 치유하는 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피터 팬』은 문학치료의 기념비 적인 작품이다. 개인의 트라우마가 고통의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이야기로 형상화되고 다시 공동체를 위한 선한 영향력으로 확장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결국 『피터 팬』은 모험담이나 환상 동화의 차원을 넘어, 상실의 기억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무의식적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배리의 글쓰기는 직접적인 고백이 아닌 상징적 투사를 통해 상처를 재구성한 사례이며, 무의식의 창조적 형상화가 어떻게 개인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랑을 갈망하는 괴물


메리 셸리(1797-1851)의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역시 개인의 상처와 결핍이 상상적 서사로 승화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은 흔히 공상과학소설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메리 셸리 자신의 삶에 깊이 각인된 상실과 불안,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다.


메리 셸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실의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이자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로 잘 알려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그러나 메리를 낳은 지 열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 역시 급진적 정치사상가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부재는 메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결핍으로 남았다. 어린 메리는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바카라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부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메리의 내면 깊숙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후 메리는 아버지의 제자였던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에 빠져 가출한다. 당시 메리는 17세였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격렬하게 불화했다. 메리는 어린 나이에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했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연달아 잃는 비극을 겪었다. 빚장이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기혼자였던 21살의 매력적인 청년 셸리는 밖으로 나돌았다. 메리는 사랑받고 싶지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서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감내해야 했다.


런던 블룸즈버리에서 우연히 메리 셸리와 퍼시 비시 셸리가 살았던 마크몬트 스트리트의 집터를 지나간 적이 있다. 지금은 평범한 런던의 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메리는 조산한 딸을 잃는 깊은 상실을 경험하였다. 화려한 문학사의 이름 뒤에, 젊은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사랑과 죽음, 가난과 상실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메리 셰리와 퍼시 비시 셸리가 살았던 마크몬트 스트리트 74번지. 1816년 시인 바이런의 초대로 스위스에 떠나기 직전까지 약 1년간 살았다. 이곳에서 메리는 조산한 딸을 잃었다.


메리 셸리와 퍼시 비시 셸리가 살았던 집터임을 알리는 블루 플라크. 이미지 출처: 자체 제작


1816년, 메리는 셸리와 함께 시인 바이런의 초대로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게 된다. 그 해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의 여파로 유럽 전역에 기후 이상이 나타난 '여름이 없는 해'였다. 폭우와 어둠 속에서 바이런은 함께 모인 젊은 작가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 보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메리는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구상하게 된다.


소설 속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시체를 모아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한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너무나 흉측하다는 이유로 곧바로 버리고 만다. 창조된 괴물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사랑받기를 원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함께 살아갈 존재를 갈망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그를 거부했고 혐오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파괴적인 괴물로 변해 간다.


이 작품의 괴물은 메리 셸리의 내면에 자리한 결핍과 상실의 감정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존재로 읽을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젊은 여성, 반복되는 자식의 상실 속에서 인정과 애정을 갈구했던 메리 자신의 모습이 괴물의 형상 속에 투사되어 있다.


괴물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며, 함께 살아갈 존재를 원했을 뿐이라고. 이 설정은 메리 셸리 자신의 내면과도 깊이 겹쳐진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끝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존재, 인정받고 싶지만 거부당하는 존재의 불안이 괴물의 형상 속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처와 결핍이 상징적 서사로 변형되는 방식이다. 메리는 자신의 고통을 직접 고백하지 않았다. 대신 버림받은 피조물이라는 환상적 존재를 통해 내면의 불안과 상실을 형상화하였다. 괴물은 외부의 존재인 동시에, 메리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또 하나의 자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연극으로 재창조되면서 대중문화 속 괴물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대중이 기억하는 기괴한 외형 이면에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의 슬픔과 버림받은 자의 절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메리 셸리가 창조한 괴물은 공포의 대상이기 이전에,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였다.


결국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은 과학적 상상력의 산물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상실과 결핍,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상징적으로 투사되어 있다. 메리 셸리의 글쓰기는 직접적인 자기 고백 대신 상상적 서사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형상화한 사례이다. 무의식 속 결핍이 어떻게 창조적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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