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바라봄'은 무엇인가

권상연. 「외눈」(2024 전라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by뜰에바다

권상연 작가의 수필「외눈」은 신체적·시각적 모티브를 통하여 타인과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치우친 시선'을 성찰하고 진정한 시선의 회복을 담담하게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수필에서 '외눈'은 단순한 신체적 질병이나 결함을 넘어 세 가지 차원의 상징성을 갖는다. 황반변성으로 수술해야 하는 화자의 눈과 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감긴 눈, 그리고 현실적인 고통의 출발점이다.

나는 술래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어둠을 더듬으며 아이들이 쳐대는 손뼉 소리를 따라간다. 짝짝, 어둠 속에서 내가 의지할 데라곤 소리뿐이다. 악동이었던 순애는 나를 물구덩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한다. 나는 쓰러졌다. 발목이 접질렸다. “황반변성 백내장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의사의 말에 캄캄한 어둠은 또 한 번 닥쳐왔다. 혹시 이건 유전이 아닌가, 어머니한테 의심이 갔다.

그럼에도 화자는 평생 한쪽 만으로 세상을 보되, 백내장으로 약해진 아버지를 전적으로 보살폈던 어머니의 외눈을 직면한다.

명사수는 활을 날리기 전 마지막 동작으로 한쪽 눈을 감는다. 분산되는 신경을 차단하여 멀리 떨어진 과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다. 화살은 선수가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균형을 잡고 활을 당길 때의 힘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승부를 판가름하는 건 한쪽 눈이 과녁을 잘 읽었을 때라고 한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눈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수술이 끝났을 때는 자신은 외눈으로 산 날이 며칠이었으나 평생을 외눈으로 살면서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를 몰라보았던 지나온 날들을 참회하기 시작한다.

수술이 끝나고 한쪽 눈에 안대를 했다.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신경이 제자리에 찾지 못해 흔들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어질어질하는 것이 멀미하는 것 같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남은 눈에 힘을 줬다. 그제야 흐릿했던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외눈으로 산 날은 며칠뿐이었다. 어머니의 세상을 알기엔 턱없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수술을 끝내고 다시 시력을 찾았을 때는 육체적인 눈의 시력이 약해지거나 한쪽 시야가 좁아지는 위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마음의 눈'과 '온전한 눈(양 눈)'을 얻는다.

저녁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앗! 달도 외눈이다. 외눈으로 저렇게 세상을 밝게 비추다니 오늘부터 나는 외눈을 온 눈이라고 부르련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수필 '외눈'은 시각적 한계를 통해 인간 본연의 편견을 반성하고 '온전한 바라봄'에 이르는 깊이 있는 성찰 수필이다. 자칫 신체적 고통이나 가족사로 인해 과도한 신세타령이나 감상주의로 흘러갈 수 있는 소재를, 정갈하고 안정적인 구성력으로 끌어올려 도덕적·문학적 울림으로 승화시켰다. 나아가, 세상을,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이를 '외눈'으로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자가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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