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칸나」(2024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한경희 작가의 「칸나」는 강렬한 원색의 꽃 ‘칸나’를 시각적·상징적 매개로 삼아, 삶의 고단함과 치열함, 그리고 그 끝에서 피어나는 아련한 그리움과 생명력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화자는 마당 한구석이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칸나를 바라보며 셋째 언니를 끌어올린다.
이른 봄 알뿌리를 마당에 심었는데 석 달이 지나도록 미동도 없었다. 벌레가 먹었는지, 거름으로 땅만 살찌웠는지 의심스러운 그때 조그맣게 파란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빠른 속도로 자라 줄기가 굵어지더니 크고 널따란 이파리가 멋스럽게 서로 비켜 가며 자리를 잡았다. 검은 펜스 넘어 우뚝 솟은 칸나의 견고한 줄기에 빨갛고 보랏빛 도는 두툼한 꽃대가 한꺼번에 여럿 올라오고, 닭 볏 같은 빨간 꽃이 피었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칸나만큼 열정적인 꽃이 또 있을까. 여러 겹의 빨간 치마를 나선형으로 두르고 플라멩코를 추는 정열의 여인 같은 칸나, 그 칸나 위로 셋째 언니 얼굴이 떠오른다.
수필에서 ‘칸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름꽃에 머물지 않는다. 칸나의 붉고 짙은 화염 같은 색채는 세파를 견디며 뜨겁게 살아낸 인물의 열정과 한풀이, 그리고 억척스러움을 대변한다. 나아가, 뼛속까지 아려 오는 삶의 상처나 그늘진 기억을 오히려 가장 강렬한 빛깔로 터뜨려 승화시키는 생명력의 결정체로 작동한다. 나아가, 계절이 지나면 시들어버리지만, 다음 해에 다시 뜨겁게 피어나는 칸나의 생태를 통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끈질김과 숭고함을 조명하고 있다.
추위에 약한 칸나는 서리 내리기 전 알뿌리를 캐어 보관하면 이듬해에 다시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 언니는 꾸준한 건강관리와 섭생으로 추위를 타는 겨울도 병치레 없이 잘 보낸다. 손주들이 커서 자유시간이 많아진 언니는 국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다. 살아보니 인생 별것 없더라. 내가 앞으로 이렇게 마음대로 여행 다닐 시간이 얼마나 되겠니. 지난날을 생각하며 눈물짓거나 우울한 감상에 젖는 일 따위는 언니 사전에 없다. 무더운 여름에 애써 꽃을 피우는 칸나처럼 굴곡진 세월을 한 올 한 올 잘 풀어나간 언니의 삶이 깊은 울림과 진한 감동을 준다.
수필 '칸나'는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을 보편적인 삶의 서사로 확장하는 힘이 뛰어난 수필이다. 붉은 칸나 꽃잎 뒤에 숨겨진 서글픔과 단단한 생명력을 문학적으로 매끄럽게 포착해 내어 심사위원들에게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화자는 절제된 감정과 감각이 잘 묻어나는 문체로 수필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묘사가 뛰어난 문장이 선보였다. 자칫 센티멘털해지기 쉬운 그리움의 감정을 과하게 쏟아내지 않고, 시각적·감각적 이미지로 절제하여 표현함으로써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