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바림, 스며들다」(2024 투데이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김정화 작가의 수필 「바림, 스며들다」는 전통 그림 기법인 ‘바림’(그러데이션, 색을 단계적으로 옅게 하거나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삶의 태도와 관계, 성찰에 비유하여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민화나 채색화를 그릴 때 물감을 칠하고 붓에 물을 묻혀 경계를 자연스럽게 흩트리는 '바림'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시작한다.
양홍에 수감을 섞어 붓끝에 찍는다. 소복한 꽃잎 안쪽, 검붉은 물감이 미리 내놓은 물길을 따라 번진다.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바림붓이 부드럽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물감의 번짐을 돕는다. 서서히 농도를 달리한 색들이 꽃잎에 스민다.
강렬하거나 선명한 단색의 주장보다, 젖은 붓끝에서 물감이 은은하게 스며들며 경계를 허무는 모습에서 인간관계나 인생의 이치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다리 다친 시모와 치매인 친모를 한집에서 아직 대치중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타협은 불가능한 듯 보였다. 평생을 다른 환경,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온 어머니들이다. 자식을 나누면서 사돈지간이 되었지만 교류는 없었다. 매사에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상대방의 일상에도 관여하려는 시어머니와 오롯이 자신을 지키려는 친정어머니 사이에,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식에게 의지하기를 바라는 내가 끼었다. 얼마간의 탐색전이 끝나자 갈등은 점점 깊어갔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면 화합이 도둑이라는 존재가 침입하면서(망상일지라도) 두 어머니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에 이른다. 날 선 경계가 '바림'처럼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고 감싸안는 과정에 이른 것이다.
붉은 물감에 군청색을 살짝 찍어 더하자 물감은 검붉게 변했다. 빨간 바탕의 꽃잎 안쪽에 물을 바르고 검붉은 물감을 선 안쪽에 얹었다. 물길을 따라 자연스러운 번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한 바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붓질을 반복하다 보니 종이가 닳아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꽃 한 송이를 붙잡고 진땀을 흘렸다. 바림은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기다림이었다. 거기에 미리 안배된 물의 양이나 붓을 다루는 섬세함, 번져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수필 '바림, 스며들다'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마음의 결을 교차시키는 문장 기교가 뛰어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을 만큼 문장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시모와 친모의 한집살이의 부조화와 갈등이 섬망사건을 통해서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하나됨을 '바림'이라는 소재로 절묘하게 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