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미 알고 있는데, 왜 결정을 못 할까

확신이 생겨야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

by오로보이

우리는 가끔 이상한 고민을 한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는데,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게 맞을까?"

"이번에는 내 마음을 이야기해야 할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사연을 찾아보기도 한다.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조언을 듣고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헤어지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좋은 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조금 더 만나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동안 서운했던 일을 이야기한다.


마치 어느 쪽으로도 가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나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답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선택한 다음이 두려워서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


결정을 미루면 잃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가 결정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면 거절당할 수 있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으면 적어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관계를 끝내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언젠가 달라질 가능성도 함께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결정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안전해 보인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고백하지 않은 채 지나간 시간에도 마음은 쓰인다. 끝내지 못한 관계를 붙들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가능성은 조금씩 사라진다.

결정하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결정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결정인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심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까.

나는 진심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해보자.

당장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동시에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그냥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어느 쪽이 진짜 내 마음일까.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진짜이고,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진짜일 수 있다.

문제는 그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두려움을 진심으로 착각한다.

거절당할까 봐 무서우면서도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상대가 실망할까 봐 두려우면서도 "나는 원래 거절하는 걸 싫어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나조차 내 마음을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진심을 알려면 내 마음을 믿는 것만큼 솔직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지만 두렵다는 것.

함께하고 싶지만 불편하다는 것.

떠나고 싶지만 미안하다는 것.


서로 반대되는 마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마음들을 인정한다고 곧바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지는 조금 선명해진다.


용기는 두려움이 사라진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예전에는 용기 있는 사람이 두려움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거절도 잘하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정작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단호한 사람도 가족에게는 싫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한다.

반대로 평소에는 조용하고 소심한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는 놀랄 만큼 단호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 사람이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도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 두려워도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때로는 상대를 잃는 것이 두려워도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두려움이 없어져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보다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는 반드시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떨리는 목소리로 싫다고 말하는 것.

오랫동안 미뤄왔던 사과를 건네는 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

혹은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

그런 작고 평범한 행동에도 용기가 있다.


결정한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것들

우리는 흔히 확신이 생기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계에서는 순서가 반대일 때도 많다.


마음을 전하기 전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른다. 막상 표현하고 나서야 내가 그 관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거절을 해보기 전에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다. 그런데 막상 거절하고 나면 생각보다 관계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고백했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고, 솔직하게 말한 뒤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험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상상했다면, 이제는 내가 해본 일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은 끝없이 커질 수 있지만, 경험은 적어도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알려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무엇은 포기할 수 없는지, 어떤 관계에서 편안한지.

어쩌면 확신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나만 정해보자

그렇다고 모든 고민에 지금 당장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어떤 관계에는 충분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마음은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

기다리는 것 역시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면 하나의 결정이 될 수 있다.


다만 내가 정말 기다리기로 한 것인지, 두려워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인지는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마음에 걸리는 관계가 하나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보자.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가?"


두 질문의 답이 다르다면 그 사이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창한 결정이 아니어도 괜찮다.

미뤄왔던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내 마음을 종이에 적어보거나, 이번에는 먼저 연락하지 않고 기다려보는 것.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모든 결과를 알고 나서 관계를 시작할 수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믿는 일도, 떠나는 일도 언제나 조금의 불확실함을 남긴다.


그래서 관계에는 확신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결정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오늘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작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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