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가는 길

나는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by수키

요즘 산바카라을 하다가, 바카라을 읽다가, 소파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 이제 뭐 하지…’라고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해 학교에 편입하고, 동화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여러 바카라을 읽으며 바쁘게 지내다가 찾아온 평온한 일상에서 갑자기 찾아드는 불안감은,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내도 괜찮은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한다. 같은 일상을 보내던 그날도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 이제 뭐 하지…’라는 마음을 품고 바카라방으로 향했다. 바카라방에 도착하면 그날 함께 이야기를 나눌 바카라이 무엇인지 눈으로 먼저 찾게 되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그림바카라은 알렉스 킬리언의 《우리는 언제나 사이에 있어》였다. 제목에 들어있는 ‘사이’라는 단어를 보니 자연스레 한나 아렌트의 ‘사람은 사이에 있을 때 존재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속으로 ‘오늘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겠구나.’하고 짐작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사이’는 관계가 아닌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의 삶에서 가장 고민이 깊은, 지금 내가 멈춰 있는 곳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림바카라을 읽고 각자 떠오른 질문을 말했다. 나는 우리가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때 H님이 사이를 뜻하는 한자 ‘間’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門’ 사이에 있는 ‘日’의 자리에 각자가 넣고 싶은 한자가 무엇인지 말해보자고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바람을 뜻하는 한자 ‘風’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머무르는 이 시간에 바람이라도 불어서 어딘가로 통하는 길이 되었으면 했다. 지금 내가 있는 사이의 시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캄캄한 터널 앞에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차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할 때면 여러 번 터널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터널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주 짧은 터널이 있는가 하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야 할 때도 있었다. 아이는 터널을 지나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느냐고 걱정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터널을 지나다가 갑자기 터널 벽 위에 걸려있는 커다란 환풍구가 떨어지거나, 터널이 받치고 있는 산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면 어떡하지?’ 하고. 그렇게 망상인지, 상상인지 모를 생각을 한참 하다 보면 어느새 터널의 끝에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다시 창밖 세상을 구경한다.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것뿐이었다.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는 막막하다. 확신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그 길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아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삶이란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려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이를 관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우리는 언제나 사이에 있어(원제: In-Between Places)

렉스 킬리언 글, 그레이디 맥퍼린 그림, 최현경 옮김

불광출판사(2025)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