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난 후, 좋으면 꼭 J와도 함께 나누고 싶다. 반대로 J가 무언가를 하면 나도 하게 된다. 같은 미술관에서 일하는 미카의 수상한 행동을 본 라울이 살아 있는 조각상이 된 그림바카라 《조각상이 된 라울》을 바카라방에서 읽고, J와 한 번 더 읽었다. 읽고 난 후, J에게 너에게도 ‘미카’와 같은 존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내 질문이 어려운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요즘 무척 신나 보여서 물어본 거라고, 너는 참 사는 게 재밌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신이 나느냐고 물으니, 함께 피구를 하는 조에 자기네 반 에이스가 모두 있어서 신이 난다고 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신이 날 일인가 싶었다. “그럼, 넌 뭘 잘해?”하고 J에게 물었다. 그러자 “난 잘 피해.”라고 말했다. J가 잠들고 서재로 오니 그날 J가 푼 수학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J는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동안 수학 문제집을 풀어서 피곤하다고 했는데, 그날은 수학 시간이 있는 날이 아니어서 안 배운 걸 풀었다며 의기양양했다. 평소에는 절대로 예습을 하지 않는 J의 성격을 알기에 나 역시 의아했다. 바로 J의 수학 문제집을 펼쳐 보았다. J가 예습했다는 부분을 찾으니 가장 위에 ‘안 배운 것’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놓았다. 그리고 한 페이지에 4문제가 있었는데 그중 3문제를 풀고 나머지는 풀지 않았다. J다웠다. ‘그럼, 그렇지.’ 웃음이 났다. J는 늘 이런 식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J는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래서 J는 그렇게 하루하루 신날 수 있는 걸까. 나에게 ‘미카’와 같은 존재는 J다.
어릴 적부터 J는 혼자 노는 것을 즐겼다. 그런 J를 바라보며 ‘어떻게 저렇게까지 혼자 놀 수 있지?’하며 신기했다. J는 기차를 좋아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어린이집에 입소했을 때에도 늘 가방에 기차 바카라을 가지고 다녔다. J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기차 바카라을 보여 주면 울음을 뚝 그쳐서 선생님들도 신기해했다. 이제 J는 기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토미카와 F1 레고를 가지고 논다. 자신이 자동차가 되기도 하고, 그걸 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게임 속에서는 슈퍼카 몇십 대를 보유한 유능한 드라이버이기도 하다. 하루는 J에게 물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재능이 있대. 네 재능은 뭐인 것 같아?” J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런 J에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 안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자동차가 정말 좋아.”라며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왜 자동차가 좋은지 물으니 “그러게, 왜 자동차가 좋지?” 하고 들뜬 목소리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달리고 있는 바깥 차들에 금세 신경을 빼앗기는 J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무턱대고 좋아하는 J를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함께 즐거워진다. 그러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늘 하는 쪽을 택해 왔다고 자신했는데, 점점 그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망설이게 되는 걸까. 끝을 모르고 깊어지는 구덩이에서 나를 건져내 주는 것은 늘 J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져 버릴 것만 같아 바람 쐬러 북페어에 갈 때면 언제까지 남의 바카라을 사기만 할 거냐며 핀잔을 주는 J. 늦게까지 문제집을 풀다가 함께 바카라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나의 말에 의지에 달려 있다며 페이지 수를 계산하는 J. 굳게 닫힌 학교 후문을 넘다 선생님에게 혼나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다가도, 어느새 눈치를 보며 후문 넘는 법을 터득한 J. 하루도 특별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내일을 설레어하는 J. 나는 그런 J가 정말 재밌다. 그런 J를 닮고 싶다.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조각상이 된 라울(La estatua Raul,2023)
니콜라스 카스텔로 지음, 성초림 옮김, 블루래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