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매력

비탄과 공허를 경험하다.

by안전기지민

나는 인생에서 몇 번의 상실을 겪었다.


1. 아버지

아빠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시면 하나님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겠다고 빌었는데 그가 떠났다. 떠났지만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며 산다. 아빠는 내게 큰 방패였다. 아무 말이 없었고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존재. 그런 자가 세상을 떠났으니 나는 너무 추웠고 무서웠다.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떼던 날, 나는 1박 2일이 나오는 휴게실에서 티브이를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 아빠가 죽지 않을 것 같다는 미신적인 생각 때문에. 근데 곧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고 천국에서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했다고도. 살아 있을 때 사랑한단 말을 그렇게 못 하던 딸은 마지막에서야 했다. 결국 하긴 했다. 대단한 상실이 있었지만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뉴스에서는 아빠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고 SNS에서는 다들 자신의 삶을 인증했다. 나만 슬프고 아프고 믿기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장례식에서 나는 많이 울지 않았다. 내가 큰 슬픔에 잠기면 헤어 나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까 봐 두려웠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결과, 10년이 지나서 비탄이 몰려왔다. 아빠를 보내주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충분히 울어야 한다. 그리고 아파해야 한다. 그런 시기를 보내야 진짜 잘 보낼 수 있다.


아빠. 잘 있지? 내가 보내줘서 잘 갔을 거야. 나랑 함께한 20년이 아빠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했어. 무뚝뚝해서 서로 말도 잘 안 하던 우리였지만 그저 아빠라고 부를 대상이 있었던 게 감사였어. 그게 이제 아빠가 없어보니까, 아빠라는 단어를 쓸데가 없으니까 깨닫네. 그냥 내 인생에 잠시라도 있어줬던 거, 고마워.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면서 잘 지킬게. 그리고 상실이 오기 전에 충분히 소중히 여길게. 그게 뭐든.

2. 친구

너무 의지해서 아프게 했다. 친구가 내게 손절을 고했던 날, 많이도 울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아니 우울증과 함께였고 슬픔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자다 깨서 미안해서 울었고 바다를 보고도 윤슬이 예뻐서 울었다. 추억이 떠올라서, 잘해주지 못했던 게 미안해서 울었다. 나는 가족이 있었고 나이도 충분히 들었음에도 인형을 잃은 아이처럼 오래 울었다. 소파에서 울었고 거실 벽이 나를 가뒀다. 한동안 집에 있지 못할 정도로 집 안에서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다 보니 보낼 수 있었다. 관계의 끝을 수용하고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마음에서 정리가 되었고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 떠나보낸 뒤에야 인연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었고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가깝다는 이유로 챙기지 못한 내 가족과 지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를 잃고 열을 얻었다. 그리고 곧 새 생명이 내 배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온 정성과 사랑을 아이에게 부을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뒤로 인간관계를 정리했고 남는 에너지를 아이에게 줄 수 있었다. 지난 인연들은 그 시절에 행복했던 것으로 충분했다. 그때의 내가 부족하고 엉망이라서 아픔을 주었겠지만 그들도 나를 용서할 것이다. 사람은 늘 뭔가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니까. 우린 모두 약간의 ADHD을 앓고 있고 상실이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부족한 존재들이다.


3. 직업

직업을 잃었다. 아니, 내가 놨다. 그리고 육아만 한다. 아니, 운동을 하고 산바카라을 하고 집을 청소하고 아이를 키운다. 그렇게 하루를 바쁘게 지내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에게 보상이 된다. 해소가 된다. 위로가 된다.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된 듯한 착각을 준다. 그래서 쓴다. 자본주의에 지지 않으려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대들지 못해서,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 보려고, 누군가에게 내가 나무가 되어보려고 글을 쓴다. 직업이 없지만 나는 늘 일을 하고 있다. 하루를 숨 쉬고 살아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1인분을 한 것이다. 나 스스로를 더 알아가는 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바카라을 읽는 일, 몸과 정신을 단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을 평생 하며 살 것 같다. 나 말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상실에 대해 나눴다. 상실이 있다면 좋은 것이다. 비탄과 공허를 통해 우리는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채워질 것이며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상실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하며 지난날을 보내주는 법을 깨닫게 한다. 인간은 부족하고 힘들 때 더 큰 힘을 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나는 글을 많이 썼고 운동을 많이 했다. 이겨내보려 발버둥치다 보니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었다.


아픈 과거도 내 것이기에 지우려고 하지 말고 가져가라. 그리고 더 나은 매일을 살아내라. 당신을 사랑하는 존재들이 곳곳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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