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 읽은 바카라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내용은 정확히 실패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저 '과정'인 것이다. 실패라는 것은 그저 다시 시도하라는 신호일뿐이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실패를 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배움의 돌다리 개수였다. 그냥 밟고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었다.
나는 12개월을 막 넘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육아 전담 엄마다. 원래 직업은 언어치료사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나쁘지 않은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난 그저 집에서 애를 보는 엄마다. 누가 봐도 그냥 아줌마인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흘러 보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처음이다. 무슨 일을 시도하고 싶어도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것은 내 자존감을 저하시키는 일이기도 했고 여자로서의 정체성도 모호해지고 전문가로서의 자격에도 금이 가는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포기하는 자제력과 시간을 버티는 인내를 연단하는 중이다. 나를 위해 살아온 인생에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내어주는 삶으로의 회귀는 어디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육아라는 것도 단어가 과연 존재할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과연 몇 년일까. 그저 같이 사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같이 사는 친구가 할 줄 아는 게 아직 얼마 없어서 도와주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한 인격체로 성장되어 간다. 늘 받고 누리던 삶에서 조건 없이 내어주는 삶으로의 전환인 것이다.
나는 이제 실패라는 이름을 지운다. 그런 단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실패는 없고 과정, 순서, 반복만 있다. 실패를 지우기 위해서는 '반복'이 중요한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는 '아, 이 방법은 별로구나.'쯤을 알고 지나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배움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배우지 않는다. 공부도, 운동도, 인간관계도,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배운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나는 선천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서로를 힐난하는 형식으로 장난을 치곤 하셨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는 말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애정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못 되게 구는 습관이 있었다. 몇몇을 그저 잃고 아니, 보내고 나서야 이 사랑 방법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중, 연민, 이해, 포용, 섬김, 용서, 사랑'만이 진짜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장난이라도 인격에 상처를 내는 말은 조금도 내뱉어서는 안 된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런데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성대가 약해서 강의를 뛴다고 해도 1시간 밖에 떠들지 못한다. 그런 나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10곡도 더 부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노래를 썩 잘하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농담이겠지만, '기본 소양이 되어 있지 않다.'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상처를 받고 노래와 멀어질 뻔했지만 이렇게 해석했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서 리드할 만큼의 실력은 아닌 것 같아서 바카라임을 지우지 않겠다.' 정도면 어떨까. 꽤 흡족했다. 상대의 표현은 거칠었지만 내 해석에서 필터링이 되어 상처가 되고 말고를 결정했다. 앞으로도 어떤 말을 듣던지 내 필터는 내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내 기분을 좌우지할 순 없습니다.'
상대에게 '상처받았다'는 말도 지우고 싶다. 그저 그는 말을 했고 나는 들었다. 단지 그 사람의 표현이 부족했고 나는 잠시 오해할 뻔했지만 좋게 해석했다, 쯤으로 귀결된다.
세상에는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날 수 있고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만약 인간관계에서 계속된 실수를 반복한다면 문제가 내 안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내 해석만 바꾼다면 누구든 두렵지 않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아들의 낮잠이 축복처럼 감사하다. 오늘 하루 주어진 내 삶에 최선을 다하며 평생이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들은 자라서 더 이상 날 찾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려야 한다. 누군가 육아는 정체된 삶이라고 바라본다고 해도 나만은 나아갈 것이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