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총량 법칙에 관한 얕은 고찰

근데 이제 근거는 나만 아는..

by안전기지민

불행 총량 법칙이라고 내가 지었다. 그 근거와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썩 불행하진 않구나, 하는 마음이 들길 바란다.


불행이란 모든 인생에 찾아오게 되어 있고 머무르다 떠나가면 행복이라는 감정도 찾아온다. 행복을 감정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행복하다는 느낌 정도로 치자. 만약 내가 유치원 때 불행했다면, 초등학교는 다닐만하다. 왜냐면 이미 앞에 크게 불행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가 최악이었다면 지금의 남편은 참을만하다. 왜냐면 앞에 같이 살던 남자 가족보단 낫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행한 일을 겪는다면 다음에 오는 일들은 꽤나 괜찮게 느껴진다. 그건 우리가 힘든 사건을 통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고난을 겪는다면 다음에 올 고초를 겪을 때 버틸만한 맷집이 되어준다. 그러니까 불행이 오지 않기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맷집이 커지거나 그릇이 넓어지길 또는 뿌리가 깊게 내려 흔들려도 꺾이진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나는 지금의 남편이 매우 마음에 든다. 21살 때 돌아가신 우리 아빠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아빠는 경상도 사람이라서 표현이 늘 어색했고 엄마와 다투었고 돈에 쪼들렸고 몸이 말랐고 담배도 한 갑씩 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남자를 만나도 우리 아빠보다는 나을 점이 있다고 본다. 그래도 우리 아빠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아빠라는 이유, 나를 낳고 길렀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별로라고 했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이 별로라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애완동물이 뱀이라고 해도 키울 수 있고, 교복이 마음에 안 들어도 학교를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바운더리 안에 있기에 나는 좋아한다.

아무튼, 불행은 총량이 있어서 내가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으면 성인이 되어서는 좀 살만하다. 어릴 때 오냐오냐 자란 사람은 슬롯의 쓴 맛을 버티기 힘들다. 사랑을 많이 받고 그저 수용받고 자란 존재가 커서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회복탄력성 측면에서는 고통을 받았지만 살아남은 존재가 더 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를 여행했다면 다낭이나 냐짱, 태국의 어떤 지방을 가든 깨끗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누군가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지고 비참한 감정이 든다면, 이것으로 불행의 용량을 채웠다고 생각해라. 남은 인생은 그것보단 나을 일이 많을 거다. 부모 복이 없고, 남편 복이 없다면 다른 부분에서 복이 채워질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했다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구석에 몰릴 일은 없을 것이다. 뇌가 아픔을 기억하고 비슷한 상황이 오면 바로 대피하기 때문이다. 즉, 비슷한 불행이 오려고 하면 뇌가 알아서 위험 신호를 알리고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대신, 비슷한 불행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곧 지나갈 것이고 결국엔 이겨낼 것이다. 나는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이겨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릇이 더 넓어진 것이다.


나는 사실, 육아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 온라인 게임 생활이 오히려 힘들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 인간관계가 끊기고 정리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살지 않고 지방에 살고 있지만 힘들지 않다. 교통체증과 치솟는 집값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반대로 생각하면 무조건 장점이 존재한다. 키가 작아도 괜찮고 못생겨도 괜찮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도 괜찮고 발이 너무 커도, 작아도 괜찮다. 우리는 그저 살아 있고 숨 쉬는 것만으로 1인분을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의 나의 과오는 그저 실수일 뿐이니 후회나 집착을 버리고 그냥 보내버리자. 추억 상자에 넣어서 수평선 너머로 물 띄워 보내든지, 구석탱이에서 태워 버리던지, 없애버리자. 우리에게는 오늘 하루, 지금 현재,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 참 별 거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존재라는 걸 느낀다. 나 자신이 점점 좋아진다. 어쩌면 이전부터 나를 사랑해 왔고 지금도 지독한 짝사랑을 나에게 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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