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고지서가 왔네.
노트북 위에 둘 테니 아침에 봐봐."
꿈인가 했다.
자정 즈음 귀가한 남편이 나지막이 건넨 말이었다.
잠결에 내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꿈은 아니었다. 아이보리색 고지서 속 숫자는 13만 원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틀 뒤, 수업 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촉이 좋지 않아 학습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왜 이런 느낌은 틀리지 못하는가....?
"고지서가 또 왔네."
"응?????????????? 또 왔다고? 일단 알았어. 이따 확인할게."
불과 5일 간격을 두고 두 번.
정확히 같은 장소, 같은 어린이보호구역이었다.
과태료는 13만 원씩 두 번, 총 26만 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고지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차량번호요."
"0000입니다."
"두 번 다 같은 장소시네요."
"네...."
경찰관의 물음에 겨우 대답을 이어가다, 나도 모르게 목이 꽉 메어 왔다.
참아보려 했지만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서러움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울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매일 가는 길인데...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연달아 발생해서요."
"그동안 한 번도 찍히신 적이 없을 만큼 운전을 잘하셨다는 거죠."
"제가 빨간불에 건넌 기억이 전혀 없어서요. 아이도 태우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목이 다시 매여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럼, 이의 제기 신청 하시는 방법도 있어요. 블랙박스 확인하셨나요?"
"아직 확인을 못 했어요..."
내가 우니 경찰관은 당황했을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남편분이 아실까요?"
"..."
"이것 때문에 싸우셔서 더 그러실까 봐..."
얼굴도 모르는 경찰관의 뜻밖의 다정한 걱정에, 꾹꾹 눌러두었던 억울함과 속상함이 단단한 응어리가 되어 왈칵 차올랐다.
남편 퇴근 후 함께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았다.
한 건은 초록불에 움직이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의 제기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 일단 가봐. 이건 가능성이 있어 보여."
"....."
"울지 말고. 괜찮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배웠다 생각해."
남편의 다정한 위로도 허공으로 흩어졌다. 속상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건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올라오는 기대를 애써 누르며 경찰서로 향했다.
인생 첫 경찰서 방문이었다.
‘울지 말자. 또 울면 진상이야.’
"안녕하세요."
"아 어제 통화하신 0000 차주시죠?"
"네."
"어젯밤에 블랙박스 확인 했는데 한 건은 초록불에 출발해서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얼마 후 나온 담당 경찰관은 내 눈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비껴 두며 말씀하셨다.
"여기 신호가 좀 어려운 곳이라서요. 두 건 다 저희가 보기엔 어려울 것 같아요."
"진짜요?"
"이제부터 잘 보셔서 운전하시면 돼요."
기대하지 말자고 다잡았던 마음이 또 무너졌다.
아무리 내 실수여도... 아무리 그래도 몇 초에 26만 원은 너무 비싼 금융치료다.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별도리는 없다.
"네..."
26만 원.
내게는 큰돈이다.
서현이, 수현이 좋아하는 아웃백 몇 번 갈 수 있고,
서현이는 좋아하는 옷, 수현이는 좋아하는 바카라 사줄 수 있고,
엄마, 아빠 모시고 한정식 집 갈 수도 있고,
수업을 몇 번을 해야 벌 수 있는 그런 돈이다.
'파마하고 클리닉 받았다 치자.'
'피부과 시술받았다 치자.
'장바구니에 담은 원피스와 운동화 샀다고 치자.'
아무리 합리화를 해보고 해 봐도 도무지 수긍이 되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그 순간 밀려온 건 허무함이었다.
매일 다니던 길이었다.
아이들 시간에 맞춰 학원에 데려다주고, 내 일상을 쪼개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익숙하다 못해 눈감고도 갈 것 같은 도로였다.
아이들을 위해, 내 삶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바쁘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랬을 뿐인데....
그 짧은 몇 초의 순간으로 날아간 26만 원은.... 너무 아깝고 크다.
‘알뜰하게 살아서 뭐 하나.’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나.’
열심히 달려온 내 일상 전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는데 미안함과 서러움이 몰아쳤다. 애들한테 쓸 소중한 돈을 몇 초만에 날려버렸다는 허무함. 나도 불쌍하고...
자바카라한다고, 곱씹는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고, 내 마음과 피부만 상한다는 걸 왜 모르겠나.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장염에 걸렸을 때도 입맛은 살아있었는데
전 남친이랑 헤어졌을 때도 식욕은 잃지 않던 난데....
그런 내가, 인생 최초로 입맛이 없다. (그렇다고 안 먹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