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저기요!

by아름다움

토요일 저녁 7시 40분.

서현이와의 홍대 데이트를 마치고 연남동 경의선 숲길로 접어들었다. 한참 퍼붓던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말갛게 개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버스를 타기에는 뭔가 아쉽다, 걷자.



아무리 홍대라지만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이렇게 많았나, 아니 그보다 토요일 저녁이지만 인구 밀도가 이렇게 높다고 싶을 정도로 북적이던 메인 거리를 벗어나자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릴 만큼 한적하고 고요한 숲길이 나타났다. 동네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가장 먹고 싶은 아웃백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과 축하를 듬뿍 받은 서현이는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아졌다. 우리는 경의선 숲길을 아주 천천히 걸으며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손이었다.



장마철이라 비는 그쳤어도 공기는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반 친구들이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는 서현이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화면을 보며 내게 누구누구에게 축하 메시지와 선물이 왔다며 배시시 웃는 아이를 보니 나까지 기분이 몽글해졌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싶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렇게 걷는데 앞서가는 사람의 등에 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어둑해지기 시작했지만 흰 티여서 유독 눈에 띄었다. 종류는 뭔지 모르겠지만 슬쩍 봐도 크기가 상당했다. 당장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저기요?”

목소리를 높였지만 앞사람은 못 들은 것 같다. 서현이가 왜 그러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 등에 벌레 붙었어. 말해주려고.”

“이어폰 끼고 있어서 못 듣나 봐. 엄마, 얘기하지 마. 저 사람이 싫어할 수도 있어.”

“응?? 왜 싫어해?”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 거는 거 싫어할 수도 있고... 무서운 사람일 수도 있잖아.”


슬쩍 보니 체격이 조금 큰 편이긴 했다.

낯선 이가 다가오거나 말을 거는 것을 경계하는 요즘 분위기와, 남의 영역을 침범하기 싫어하는 서현이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반응이긴 했다. 하지만 요즘 사람이 아닌 내 정서와 성격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엄만 얘기해주고 싶어.”

내 성격을 잘 아는 서현이는 이내 수긍하는 듯했다. 이어폰을 낀 것이라면 살짝 치는 수밖에. 걸음을 빨리해 그 혹은 그녀의 어깨 뒤쪽을 톡톡 두드렸다.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

“네?”

“등에 벌레가 붙었어요. 크기가 좀 커서 떼어내야 할 것 같아요.”

“진짜요?”

놀란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접이식 우산을 내게 건넸다.

“이걸로 좀 부탁드려요.”

그녀의 우산 끝으로 등에 붙은 벌레를 툭 쳐서 날려 보냈다. 가까이서 보니 벌이었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벌이 날아가는 걸 보고서야 그녀와 나, 우리 둘 다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등 뒤로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서현이에게 말했다.

“봐봐, 싫어하지 않잖아. 벌레 날려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네."

서현이는 졌다는 듯 무안하게 잔잔한 웃음을 보였다. 흐흐흐, 하고 번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우리 사이에 기분 좋게 맴돌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실례일까 걱정하던 아이의 마음도 맞고, 곤란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은 내 오지랖도 쓸모가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서현이의 수긍하는 표정에 마음이 슬쩍 뿌듯해졌다. 연남동 숲길 위로 서현이와 나 사이에 추억이 하나 더 얹어진 것 같아, 잔잔한 기쁨이 남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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