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것 봐봐.”
“엄마, 점심 메뉴 뭐야?
"엄마, 나 아침 뭐 먹어?”
“엄마, 나 이거 조금 있다 해도 돼?”
“엄마, 로션이 안 나와.”
“엄마, 샴푸가 없어."
"엄마, 샴푸 새로 산 거야? 이거 쓰면 돼?”
“엄마, 나 친구들이랑 영화 보고 점심 먹기로 했어.”
“엄마, 나 찜닭 먹고 싶어.”
“엄마, 분모자랑 고구마 넣으니까 진짜 맛있어. 밖에서 사 먹는 맛이야!”
“엄마, 이거 너무 하기 싫어.”
“엄마, 언니가~~!!!”
“엄마, 얘가~~!!!”
"엄마,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언니가 자꾸 뭐라 해."
“엄마, 나 이거 좀만 더 하고 샤워할게.”
“엄마, 복숭아 있어?”
“엄마, 머리 바꾸니까 예뻐.”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방학인 걸 감안해도 하루에 수십 번은 호출되는 내 이름.
나, 이렇게 인기 많은 사람이었구나.
나, 이토록 매력 넘치는 사람이었구나.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난 늘 음악을 좋아했다. '좋아했다'라는 동사로는 많이 부족하다. 엄청나게 끔찍이도 사랑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화가 날 때도, 행복할 때도 항상 음악과 함께였다.
가장 즐겨 듣던 음악은 Destiny's Child, Beyoncé, Rihanna, Eminem, 50 Cent 같은 업비트 팝과 힙합, 랩 장르였다. 심장이 절로 바운스 하게 만드는, 저혈압인 나를 정상 혈압까지 올려주는 신명 나는 비트의 노래들.
20대에는 클럽도 자주 갔다. 런던에 체류하던 시절에는 매주 클럽으로 출근 도장을 찍던 때도 있었다. (무려 22년 전 이야기다.) 시끄럽고 북적대며 혼잡한 공기 속에서 주고받는 웃음소리, 환호, 발 구르는 소리, 친구들과의 대화를 좋아했고, 가끔 낯선 이들과 나누는 스몰토크는 신선하면서도 소소한 기쁨이 되어주었다.
... 정확히 짚자면, ‘좋아했었다’.
강렬한 비트와 현란한 조명 속에서 즐거웠던 이십 대의 나는, 어느덧 끊임없이 나를 부르는 사랑스러운 아가들과 함께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나를 찾는 아이들.
하지만 어제와 비슷한 듯 다른 멘트들로 전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한다.
슬쩍 가르마를 바꿨을 뿐인데 빛의 속도로 알아채며 “엄마, 머리 바꾸니까 예뻐” 하고 배시시 웃어주는 둘째.
분모자랑 고구마 팍팍 넣어 만든 찜닭을 입안 가득 오물거리며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 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한 마디 건네는 첫째.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완전 새로운 차원의 충만함과 기쁨, 행복감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다.
엄마의 노력을, 애정을, 사랑과 수고를… 그리고 때로는 화를 꾹꾹 눌러 담은 어색한 표정과 짜증 섞인 말투까지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나의 기분, 태도, 감정 그리고 행동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벅차오를 만큼 고맙고, 또 그만큼 무섭다.
그리고 그런 애틋하고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철저한 고요와 고독을 원한다.
정적, 여백, 고요, 적막... 이런 것들을 갈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눈앞의 해결해야 할 일들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지는 시간.
머릿속으로 다음 동선과 끼니를 계산하며 '최적의 효율'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무중력 상태의 시간.
서현아, 수현아,
엄마는 너희를 목숨 바쳐 사랑하지만, 엄마 지금 에너지 0이야.
지금부터 각자 할 거 하고, 진짜 진짜 필요할 때만 불러.
방으로 돌아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침대에 앉아 무드등을 켜고, 그날 기분에 맞춰 바카라을 고른다.
아,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