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편해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장단점은 어디에나 있다.

by자미손

"너는 여전히 제주도 떠날 생각이 없어? 거기서 계속 살 거야?"

한 달 전, 친구들을 만나러 오랜만에 육지행 비행기를 탔다. 서울, 김포, 광명, 화성, 제주. 스무 살 때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은 이제 각기 다른 시에 산다.

"응, 지금은 서울로 다시 올라올 생각이 없어. 그럼 굳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렇구나. 제주도가 잘 맞는다니 좋다."

친구의 말에 웃음으로 답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주가 나에게 잘 맞나? 나는 왜 계속 제주에 머무는 걸까?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고2 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서울에서 30대 중반까지 살다가 결혼 후 제주로 이주한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다. 제주는 내 의지로(물론 시작은 남편의 의지였지만) 옮긴 첫 삶의 터전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환경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14살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 컬러 TV였던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30년을 살다가 총천연색인 제주 자연의 품에 안기고서야 교과서가 아닌 '바카라'을 펼쳤다.


당신의 부정성 편향을 극복하는 간단한 방법은, 우리가 '하나의 YES는 3개의 NO'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당신이 무언가를 할지 말지를 고려할 때 각각의 긍정적인 이유에 각각의 부정적인 것보다 3배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 존 크럼볼츠·라이언 바비노, 『 빠르게 실패하기 』, 스노우폭스북스, 2022, 204쪽.


시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호기심으로 구매한 바카라 한 권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때부터 단점이 보이면 장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주의 장점은 단연코 접근성이 좋은 다양한 자연환경이다. 바다, 오름, 둘레길, 숲, 계곡, 하천. 집에서 차로 짧게는 5분, 길어도 1~2시간이면 닿지 못할 곳이 없다. 이 장점은 다른 모든 단점에도 우리가 제주를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단점은 당연히 사람과 환경이 주는 낯설음이다. 도시에서 누리던 편리함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익숙한 대중교통,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 다양한 장보기 옵션과 배달 등등.


차가 없으면 제주의 읍면 지역은 확실히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애월읍으로 이주한 2018년 여름, 동네 식당들은 평일 저녁 6시면 문을 닫았다. 근처에 편의점도 없었고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24시간 운영하지 않았다. 서울의 4, 7호선 이수역 근처에서 살았던지라 일찍 조용해지는 동네가 꽤나 불편했다. 가장 빠른 택배 배송이 3일 정도 걸려 신선식품은 근처 마트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고 마트의 공산품 가격이 높아 주말이면 공항 근처 시내로 나가 생필품을 사 오곤 했다.


2020년 코로나 발생 이후 해외여행 대신 제주로 여행객이 몰렸던 상황도 역시 장단점이 있었다. 관광업이 호황 하면서 부동산이 요동치고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져 지금도 미분양된 아파트나 빌라가 넘쳐나 유치권을 행사하는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분명 부작용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 제주 이주가 늘면서 다양한 편의시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8년 동안 코로나 이전의 느린 제주와 코로나 이후 빠르게 달라진 제주를 겪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훼손된 자연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만 8년 전보다 윤택해진 지금의 삶을 바라보며 역시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킨도 배달이 되지 않아 전화로 주문하고 찾으러 가야 했던 시절을 거쳐 어플로 커피를 배달시키는 지금, 주변 자연환경이 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도 장단점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온라인 게임에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기곤 했다. 대부분 서로 맡은 업무의 경계선이 모호해 벌어지는 다툼이었다. 뚜렷한 선 안에서 일해온 육지인은 적잖이 당황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제주에서 한 온라인 게임을 6년 동안 다니며 넉살이 부쩍 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꽤나 선 없이 일하고 있었다. 초기에 품었던 불만은 사그라들고 감사함이 자라났다. 4년 전 넘어지면서 오른팔을 다쳐 깁스를 했을 때처럼 제주다운 정을 느낄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서울의 온라인 게임에서 30대의 나는 젊은 꼰대였다. 당시에는 신념이 너무 강해 나는 다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틀렸다고 믿었다. 유럽여행과 제주살이를 경험하며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얄팍하고 내가 들이대던 잣대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옳고 그름은 언제나 존재한다. 동시에 다름도 늘 존재한다. 장단점이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장점을 볼 수 있게 되자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텃세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평생 일궈온 소중한 땅을 내어줬는데 건물을 짓다 말고 혹은 엉망으로 짓고 도망가버린 육지인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망가진 이웃을 둔 도민이라면 육지인을 무턱대고 경계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억울함 없이 이해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왔던 대사처럼 옆집 젓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게 제주답다는 사실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사 초, 초면인 동네 어르신께 길에서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우리 집의 위치와 전셋값까지 일사천리로 물으시던 선 넘는 이웃에게 당황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지만 이제는 넉살 좋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선을 넘는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안다. 2026년에도 여전히 대문을 열고 사는 건넛집 어르신께서 밭에서 막 따온 브로콜리를 한 아름 안겨주시면 선 넘는 제주의 따스함을 느낀다.


장단점은 어디에나 있다. 또 누구에게나 있다. 물론 나에게도 있다. 서로 느끼는 장단점이 다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그때마다 선택할 뿐이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좋으면 그곳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 관계에 안착하는 것이다. 불편해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매주 목요일 밤 9시 연재)


선 넘어온 브로콜리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2. 노는 게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