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사자성어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복인 줄 알았는데 화가 되고 화인 줄 알았는데 복이 되는 인생은 새옹지마 그 자체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2016년에 남편은 산재로 손가락 수술을, 나는 재해로 발목 인대 수술을 받았다. 거동은 불편하고 재활은 힘들고 맞벌이에서 백수 부부가 된 마당에 사기로 큰돈까지 날렸다. 몸도 마음도 경제 사정도 그때가 제일 바닥이었다.
둘의 재활치료가 마무리된 날, 남편이 말했다.
"어차피 못 쓰고 없어질 돈이면 우리가 다 써버리자."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인가.
"돈 모아서 유럽 여행 가자."
모험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나에게도 당시 남편의 제안은 솔깃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당시의 유행에 편승해 2018년 봄, 우리는 두 달의 유럽 여행을 저질렀다.
여행 전 남편은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여행 다녀와서 우리 제주도 가서 살아보자."
"일단 여행부터 갔다 와서 말하자고."
여행 전 아내는 제주로 이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돌아가신 아빠의 흔적이 남은 고향을 고1 때 떠나 서울에서 22년을 살았다. 가족도 친구도 익숙함도 모두 서울에 있었다.
여행 바카라, 블로그, 구글 지도를 이용해 숙소를 정하고 동선을 짜고 비행기와 기차를 예매하는 일들이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매일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상상이 현실이 된 두 달의 시간은 정말 꿈같았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계획하고 이룬 인생 첫 대형 프로젝트(?)라고 봐도 무방했다. 2,30대 시절 나의 시작은 대부분 의심으로 가득했고,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며, 제대로 마무리를 지은 적이 거의 없었다.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인생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 첫 성공 사례였다. 그 성취감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짜릿하게 남아있다. 3개국 32개의 도시를 누비며 평소와 다른 행복을 느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두 달의 여행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물 밖의 풍경과 삶을 경험해 버린 개구리는 이제 우물 안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귀국 후 2주 만에 남편은 제주도에 새 온라인 게임을 구했고 한 달 후 서울집을 정리하고 제주로 이주했다.
"와, 저 아저씨 부럽다."
2018년 6월, 해가 긴 저녁,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바닷가에서 퇴근길에 들린 듯 양복을 차곡차곡 벗어 가방 위에 올려두는 중년의 남성을 보았다. 한 차례 바다 수영을 하더니 성벽에 설치된 샤워기로 소금기를 씻어낸 후 큰 수건을 몸에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러게. 꿈같은 삶이네."
때때로 꿈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2020년 여름, 퇴근 후 우리는 곧장 제주 바다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개장하지 않은 해수욕장은 도민들만의 놀이터였다.
뜨거운 태양, 시원한 바람, 잔잔한 파도, 맑은 공기. 스노클을 통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생명으로 가득 찬 바닷속을 해수면 위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파랑돔, 범돔, 나비고기, 군소, 멸치 떼, 거북복, 쥐치. 이름을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체들이 햇살을 가리는 거대한 인간들을 잠시 경계했다가 다시 각자의 삶에 집중한다.
뭍으로 나와 저녁 도시락을 먹고 비치 타올로 몸을 감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여름의 일상에 가슴이 뭉클했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결혼, 유럽 여행, 제주 이주. 지금도 자주 남편에게 감사를 전한다.
"오빠랑 결혼하길 정말 잘했어."
(참고로 사기는 남편이 당했다.)
유럽 여행을 떠나지 않고, 제주로 이주하지 않고, 잃은 돈을 아까워하며 계속 도시에서 살았다면 우리 부부의 삶은 어땠을까? 더 먼 곳을 바라보지 않고 미래로 향하지 않고 계속 뒤를 돌아보며 과거를 후회했다면 닿지 못했을 오늘이다.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다.
(매주 목요일 밤 9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