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나답다, 제주답다.

by자미손

이 온라인카지노북은 2018년에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후 8년 동안 달라진 저의 생각, 시선,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제주도라는 지역과 관계된 내용도 있지만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나이의 흐름에 따라 깨달은 것들도 있기에 제주라는 특정 지역과 연관이 없는 내용도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주의 자연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기에 제주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서울이었다면, 만원 지하철의 출퇴근 속이었다면, 깨닫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낯선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기 바빴던 서울의 출퇴근길. 20대 때부터 음악으로 귀를 막고 바닥만 바라보며 걸어, 누군가 제 코앞까지 다가와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타인이 아닌 나에게 중점을 둔 삶을 살았다고 여겼지만 제주에 와서 깨달았습니다. 제 눈과 마음은 핸드폰 속 소리와 영상을 쫓았을 뿐,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은 많지 않다는 것을요.


제주에 오자마자 장롱면허를 꺼내 운전 연수를 받고 6년 동안 운 좋게 해안도로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신호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15분 동안 달리며 반짝이는 바다를 눈에 품고 푸른 향기가 코 끝에 닿으면 몸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차창을 열고 휘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출퇴근 길은 행복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자연은 늘 멋진 옷을 입고 거대한 자신의 존재를 뽐냈습니다. 그런 존재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초라해지기는커녕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Mother Nature. 말 그대로 어머니의 품 같은 대자연은 도시에서 바닥만 바라보던 저에게 고개를 들라고 속삭였습니다. 은퇴 후가 아닌, 도시에서 한창 바쁘게 일해야 할 나이인 삼십 대에 제주에 사는 게 맞는지 이주 후에도 사실은 자주 고민했었어요. 1년을 보낸 후에는 우리 부부보다 일찍 20대에 제주에 온 이웃집 부부를 무척 부러워하게 되었지요. 자연과 가까운 삶은 빠를수록 좋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남들보다 늦었다 후회하는 대신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자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어요. 이 글이 자연 속의 삶을 고민하는 과거의 저와 비슷한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길 바랍니다.


(매주 목요일 밤 9시 연재)


2021년 7월, 해안도로 옆 올레길의 풍경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