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바람이 불잖아요
오전 내내 은행, 의원, 약국을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와 운동화를 벗는데 발과 발목이 집 근처 신대교(橋) 기둥만큼 둥실했다. 발등만 가리는 덧신 대신 신었던 발목 양말 때문이다. 외출 전 운동화 속 발이 편하길 바라면서 선택했던 핑크색 양말이 미웠다. 신축성 있는 고무줄이 야무지게 내 발목을 쪼일 줄이야. 나는 양말을 벗으면서 굵어진 발목과 푹신한 발등을 쓰다듬었다. 다행히 손가락 자국이 남을 만큼 붓지는 않았다.
양말 하나 벗었을 뿐인데 마치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 같다. 오전 시간을 바삐 걷는 나와 함께 하느라 애썼을 발가락들이 시원한 공기에 끄덕였다. 나는 고생한 발을 위해 샤워기를 틀어 미지근 한 물로 대야를 채웠다. 듬직하게 무게 있어 보이는 발을 담갔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쐬었던 발가락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시원해라’ 미지근한 물이 시원하다니. 발가락도 나와 함께 늙어가는구나. 물속에 잠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는 시집을 집어 들었다.
바싹 마른 나뭇잎 같은 주름진 손가락으로 시집을 넘기려는데. 건조한 손끝 때문인지 종이가 잘 잡히지 않았다. 습관처럼 입으로 가려는 손가락을 발이 담긴 대야 가 쪽에 갖다 댔다.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혔다. 덕분에 바카라 페이지가 쉽게 넘겨졌다. 추천의 말을 읽는데 벌써 물이 식었다. 다시 샤워기를 틀어 대야에 담긴 물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피로를 풀어주는 족욕이지. 여기에 아로마 오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완벽한데. 아쉽지만 그래도 발을 감싸는 물의 출렁거림이 부드러웠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바카라장을 넘기며 시를 읽었다. 한편, 두 편…. 페이지를 넘기는데 눈이 감겼다. 왜 나는 활자를 보면 눈이 감기고 고개는 앞뒤로 흔들거리는 걸까? 글자들이 제각각 난해한 춤을 췄다. 발이 편안해지자 부릅뜬 눈이 같이 쉬고 싶어 눈꺼풀에 돌덩어리를 매달았다.
읽던 시집을 접어두고 씻었다. 닫히려던 눈꺼풀이 다시 열렸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시집을 읽기 전 먹거리를 준비했다. 그릇장에서 꽃무늬가 예쁜 큰 접시를 꺼냈다. 김치냉장고에서 사과를, 냉동실에서 빵을, 수납장에서 커피 원두를 빼 싱크대 위에 올렸다. 먹을 걸 보니 눈과 손이 바빠졌다. 빵을 굽고 사과를 자르고 원두를 갈았다. 침묵이 흐르던 집안이 분주해졌다. 연주곡이 없어도 부기가 빠진 발과 발목이 나비처럼 살랑댔다. 식탁 위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를 불렀다. 의자에 앉아 바라본 창밖이 오전과 다르게 부옇다. 다른 날과 다르게 일찍 서둘러 일을 마친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 한쪽을 입에 넣었다. 아픔을 참아가며 치료를 끝낸 이를 자랑하듯 꼭꼭 씹으면서 왼손에는 빵을 오른손에는 커피잔을 들었다.
페이지를 접어뒀던 도종환 님의 『고요로 가야겠다』를 폈다. 정치인에서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그가 펴낸 첫 시집이다. 추천의 말을 써준 곽재구 시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산전수전을 겪고 돌아왔을 그의 시’를 나는 어떻게 음미해야 할까? 흰색 표지에 글씨는 검은색인 시집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마치 블랙커피를 즐기면서도 양손엔 초콜릿을 쥐고 사는 내 모습과 비슷해서다. 아니면 늘 웃고 있지만, 숨어서 울기도 한다는….
시집 제목이 자꾸만 내 입안을 맴돌며 눈가를 흔들어댔다. 사람의 끝이 고요라는 걸 몇 번이나 경험했던 나는 이 시집을 받는 순간 죽음이 떠올랐다. 친구도 얼마 전 하늘로 여행 떠난 친정엄마가 생각나 이 시집을 읽고 나에게 건넸을지도. 요양병원에서 3년을 누워계시다 오래전 떠난 아버지 곁으로 가신 친구 엄마. 그 또래들은 평생을 종종거리며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사셨을 텐데. 이름만으로도 눈이 뜨거워지는 세상 모든 엄마.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따라 생겨났을 바람이 멈추면 남는 거라곤 고요함뿐. 그 쓸쓸함에 목이 멘 친구와 나는 시집을 읽고 이미 고인이 되신 친정 엄마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고요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
-중략-
다시 해가 뜨고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생은 계속된다고 조그맣게 속삭이다
다시 별빛을 바라보고
자신을 용서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들은 신께 판단을 넘기고
고요의 끝에 왜 두 손을 모으게 되는지
물어보게 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오늘 생명이 움트는 이곳을 떠난 자들도 있지만, 축복받은 새 생명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내 시간도 온갖 꽃들이 활개 치는 우리 동네 신대천(川)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제 4월이 떠나고 5월이다. 2월부터 피었던 꽃들은 지고 또 다른 꽃들이 피고 있다. 그 꽃들 옆에서 눈물 닦는 5월의 엄마들과 나는 같이 걷고 싶다. 걷다가 발이 부어오르면 미지근한 물에 족욕을 하리라. 향기 나는 오일 한 방울 떨어트리고 치열한 삶을 견뎌온 발에게 휴식을 줘야겠다. 행여 머리카락을 흔들어대는 바람이 불어오면 멈출 때까지 함께 하자 손도 잡아 보련다. 다가오는 고요를 같이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