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 걸까?
요 며칠 집 근처에 있는 상영관 내 어둠처럼 황사가 하늘을 덮었다. 거기에 송화(松花)까지 더해지니 내 세상이 뿌옇다. 안경이라도 깨끗하면 좀 나을까 싶어 비눗물로 렌즈를 씻었다. 언제 날아와 달라붙었는지 세면대가 노랗게 물들었다. 그 덕에 나는 요란하게 재채기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꽃들이 서로 시샘하듯이 봉우리를 터트리던 4월이 며칠 안 남았다. 탁상달력을 들었다. 달력을 넘기려니 제주도 푸른 바다에 잠긴 곡소리와 송화를 닮은 노란 리본이 내 손을 꽉 잡는다. 서늘한 목소리로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말한 가장 잔인한 달인 4월을 기억하라며 내게 소곤거렸다.
탁상달력 날짜를 보니 순천 웃장 날이다. 나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쌓여있는 북적거리는 장으로 한번 나가고 싶어졌다. 며칠째 가슴에 꽂고 다니던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고 버스 승강장으로 갔다.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와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발열 의자에 다정하게 앉아 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발을 동동거리며 옹알거렸다. 누런 이를 드러낸 할머니가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아가 재밌어요. 엄마가 좋아요.’ 뭐가 즐거운지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까지 휘저었다. 할머니가 아이 대신 입을 열었다. ‘자동차가 지나갔어요. 아이고 그게 그렇게 좋아요. 아가 이름은 뭐예요’ 이번에는 엄마가 대답했다.
“준이예요. 할머니.”
아이는 마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지 아는 것처럼 더 들썩거렸다. 할머니는 웃으며 ‘이름도 멋지네. 우리 아가.’라며 아이 손을 잡았다. 그때 어린이집 버스가 왔다. 아이는 선생님 품에 안겨서도 팔다리를 흔들었다. 마치 내가 스트레칭한다며 춤을 추듯이. 아이와 엄마가 떠난 승강장엔 고요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나를 한번 흘깃거리더니 이내 전광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봤다. 드디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음성이 나왔다. 카드를 꺼내는데 할머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노란색 커버가 씌워진 노약자석에 나는 버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장날이어서인지 자리가 거의 없었다. 버스에 꽉 찬 승객 중 누군가가 덥다고 창문을 열었다. 초여름도 아닌데 바람이 벌써 시원하다니. 나는 '여름옷 정리를 해야겠어'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할머니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주름진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영화 '내 이름은'에 제주도 청보리밭에서 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춤을 추는 여인이 있었지.
뭔가에 홀린 듯 걸어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가슴이 시리도록 푸른 제주도 청보리밭에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초록 물결의 외침에 노란 유채꽃이 온몸을 흔들었다. 초점이 흐릿해진 그녀가 입을 벌려서 들리지도 않은 목소리를 냈다. 주름진 손으로 흰머리와 함께 휘날리는 머플러를 목에서 풀었다. 손과 머플러가 하나 되어 상하좌우로 더 거세진 바람을 따라 흐느적거렸다. 그녀 이름은 정순이다.
여자 이름이라며 개명을 원하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그녀. 분만 중 사망한 딸이 남긴 손자를 아들로 받아들인 그녀가 익숙하고 친숙한 이름이라 작명했다는 아들 이름은 영옥. 바로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린 그녀의 본명이었다.
꽃잎이 날리면 의식을 잃던 그녀가 흐릿했던 그날의 진실을 기억해 낸다. 총구 앞에서 의도치 않게 그녀가 친구 정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 한순간. 삶과 죽음이 갈렸다. 이름을 뺏긴 정순과 영옥의 부모가 그녀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그녀는 그 시절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모든 기억은 흐릿한 실루엣으로 그녀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랬던 그녀가 하나둘 떠오르는 그 시절의 그들과 청보리밭에서 춤을 췄다. 펄럭이는 춤 선을 따라 거세진 바람이 제주도 땅과 바닷속 수많은 영혼을 불러들였다. 이미 사망한 정순이 아닌 영옥이 ‘친구’ 노래를 부르자 제주도 검푸른 바다가 처절한 통곡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평소처럼 이웃들과 소박하게 살아가던 그들 앞에 갑자기 들이닥친 국가폭력과 슬롯적 참사. 그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져 갔다. 그들의 억울하고 분통함이 영화관에 울려 퍼졌다. 이 영화는 클라우디 펀딩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한 9,778명의 이름을 보며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감독님은 아마도 억울하고 분통하게 이 땅에서 사라진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당신들의 두려움이 오늘의 우리를 바르게 살게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거라고.
나는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잃거나 뺏겨본 적이 없는 내 이름을 불러봤다. 내가 세상에 하나뿐인 나인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름. 만약 타의에 의해 내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 바꾸고 싶었던 이름이니 받아들여야 하나. 아님 친정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이라며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야 할까? 이름 앞에서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와 여러 명의 사람들이 웃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먹거리가 풍부한 장날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오래간만에 사람구경도 하고 국밥거리를 기웃대려 했는데. 승강장에서 만난 할머니 뒤통수와 영화가 나를 근처 중학교로 잡아끌었다. 나는 국밥과 수육을 다음으로 미뤘다.
제주도에서 국가폭력이 자행되던 그해 10월. 내가 사는 이곳도 민간인들이 쓰러져갔다.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 중 하나인 중학교 근처 당산나무를 찾아갔다. 나무 둘레를 감싸고 있는 전등을 안은 벽돌들. 나는 묵념을 한 후 그들을 위해 살풀이하듯이 양팔을 벌려 휘저으며 그 자리에서 돌고 돌았다. 마치 영화 '내 이름은'의 가짜 정순이 말고 진짜 영옥이가 그랬던 것처럼.
https://youtu.be/E3mUDQyoZ2w?si=8i2iVFkVTwl28l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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