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의 진실

by은하

누군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으면 종종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 말이 생각보다 환영받지 못할 때가 있다. 아무거나 말고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해 보라고 하거나,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게 맞느냐고 다시 묻는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한 말인데, 상대는 대답을 피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종종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걸 모르니 메뉴를 정하기 어렵고, 기껏 골랐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신경 쓰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맡았을 때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조금 억울하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고를 때 뚜렷한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편이다.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그렇고, 주말에 어디를 갈지 이야기할 때도 비슷하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한다. 그런데 그런 날보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날이 더 많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매운 음식도 좋고, 따뜻한 국물도 좋다. 어제 먹은 것만 아니라면 대부분 괜찮다. 어디를 가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한 날도 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 아무거나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꽤 솔직한 대답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아무거나 좋다고 해놓고 막상 정하면 싫다고 할까 봐 걱정하기도 하고, 결국 선택을 떠넘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마음도 이해는 된다. 아무거나 좋다고 해놓고 상대가 고른 메뉴에 하나씩 반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김치찌개는 어제 먹어서 싫고, 파스타는 오늘 당기지 않고, 다른 음식을 제안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작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으면 다시 아무거나라고 대답한다.






이쯤 되면 아무거나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다는 건지, 아직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지. 그러니 사람들이 그 말을 어려워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아무거나는 조금 다르다. 무엇을 골라도 크게 상관없다는 뜻에 가깝다. 물론 먹지 못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메뉴가 있다면 미리 말한다. 그 외에는 정말 괜찮다.



그런데 이 간단한 설명을 하다 보면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에도 이렇게 긴 설명이 필요하다니.


아무거나 좋아, 행복한 식사 고민.png


한 번은 무엇을 먹을지 정하다가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특별히 당기는 음식이 없어서 아무거나 좋다고 했는데, 상대는 계속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지 몇 번이나 확인하더니 그래도 하나쯤은 골라보라고 했다. 그때부터 오히려 고민이 시작된다. 조금 전까지는 어떤 메뉴든 괜찮았는데, 이제는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음식도 생각해 보고, 최근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떠올려 본다. 그러다 겨우 하나를 말하면 이번에는 그게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인지 스스로도 헷갈린다.



처음에는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았는데,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이 복잡해진 셈이다. 그렇다고 결정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나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나름대로 기준이 분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의견을 내기도 하고, 정말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일에 똑같은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 어떤 선택은 오래 고민해야 하지만, 어떤 선택은 그날의 기분에 맡겨도 괜찮다. 점심 한 끼가 그럴 때도 있고, 산바카라할 장소가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언가를 물으면 반드시 하나의 답을 내놓아야 할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하나쯤은 말해야 하고,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으면 가고 싶은 장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정말 떠오르는 게 없다는 대답은 어쩐지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원하는 게 없다고 해서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오늘만큼은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는 날일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제법 많다.






물론 아무거나라는 말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한쪽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선택해야 한다. 매번 상대에게 맡기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도 피곤할 수 있다. 한 사람은 편하게 한 말인데 다른 사람은 매번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 뒤에 조금 더 덧붙이기도 한다. 정말 다 괜찮으니 먹고 싶은 걸 골라도 좋다고 말하거나,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그중 하나를 고른다. 특별히 원하는 메뉴가 없어도 함께 정하는 일에는 참여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없는 취향을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끔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좋아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분명히 좋아하는 음식도 있고, 다시 가고 싶은 장소도 있다. 그저 그 순간에는 특별히 원하는 게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이 차이를 예전에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 누군가 자꾸 고르라고 하면 너무 우유부단한가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원하는 걸 말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선택하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먹고 싶은 메뉴가 먼저 떠오르고, 누군가는 몇 가지를 비교한 뒤 결정한다. 무엇을 먹어도 괜찮은 날이 많은 사람도 있을 테고. 그중 어느 쪽이 더 좋은 대답인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아무거나는 참 묘한 말이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뜻일 수 있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선택의 바카라임을 넘기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같은 네 글자인데 서로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아무거나 좋다고 말해도 곧바로 다시 고르라고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반대로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할 때는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한 번쯤 생각한다.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상대에게 결정을 모두 맡기는 건 다른 일이니까.



여전히 무엇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잠깐 생각하다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할 때가 많다. 그러다 상대가 다시 물으면 이번에는 직접 메뉴를 정하기도 한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생겨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선택이니까.

그리고 또 어떤 날에는 상대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따라가 맛있게 먹는다.



그런 날이면 생각한다.

아무거나라는 말은 정말 아무거나였다고.

그 말 뒤에 숨겨둔 다른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가끔은 아무거나라는 말이, 정말 아무거나 괜찮다는 뜻일 뿐이다.







이전 11화관계를 지키려다 나를 잃었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