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일이 생기면 그 마음이 서운해할 만한 일인지부터 따져본다. 상대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고, 별생각 없이 한 말일 수도 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면 조금 전까지 분명히 서운했던 마음이 어쩐지 민망해진다. 이 정도 일로 마음이 상하는 게 맞나 싶어서다. 그렇다고 서운함이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불편할 때가 있다. 상대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런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생각보다 무심한 대답이 돌아오거나, 기대했던 순간에 별다른 반응이 없을 때가 있다. 상대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쁜 일이 있었거나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말이 떠오른다.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서운했던 일보다 서운해하는 마음이 더 신경 쓰인다. 상대의 사정은 이해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정에는 자꾸 이유를 묻게 된다. 서운한 일은 한 번이었는데 마음속에서는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셈이다.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 상대는 평소처럼 이야기했고, 특별히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떤 말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말을 꺼내는 순간 일이 커질 것 같았다. 그저 한마디가 서운했을 뿐인데, 설명하다 보면 상대의 말투를 지적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대답이 돌아올 테고, 다시 왜 서운했는지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대화가 길어졌다. 결국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그날의 대화는 평소처럼 끝났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생각났다.
이럴 때 가장 어려운 건 서운함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말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그냥 지나가도 되는 일인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아무 말하지 않으면 관계는 평온하게 이어진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불편함까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운하다고 말하면 상대를 탓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이 잘못했다는 뜻으로 들릴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꼭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말이 조금 서운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특히 상대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걸 알 때 더 망설여졌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서운하다고 하면 괜히 미안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별일 아닌 걸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은 굳이 이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운한 마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할까. 물론 서운하다고 해서 상대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서로 기대하는 것이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도 다르니까. 어쩌면 서운함도 그런 차이에서 생기는 감정일지 모른다. 상대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일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모든 서운함을 그때그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일도 있고, 그날의 기분 때문에 평소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인 일도 있다. 굳이 꺼내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냥 넘어가는 것과 억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다르다. 괜찮다고 마음을 정리했는데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지난번 일이 함께 떠오른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서둘러 괜찮다고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서운하다면 그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면 그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전해 보기도 한다. 막상 이야기하면 상대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하거나, 그런 마음이 들었을 줄 몰랐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이해받는 건 아니다. 대화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서운함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한 건 그만큼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여전히 서운하다는 말은 어렵다. 아무렇지 않게 꺼내기에는 마음이 쓰이고, 그렇다고 매번 삼키기에는 남는 것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 분명해졌다. 서운하다는 말은 상대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그때 내 마음이 조금 그랬다는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