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에 숨은 NO

by은하


불편할 때 웃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당황했을 때도 웃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때도 웃는다.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조차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갈 때가 있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닌데 표정만 보면 꽤 괜찮아 보인다.



예전에는 그런 내 모습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것도 나름의 슬롯생활이라고 여겼다. 모든 말에 정색할 필요는 없고, 별일 아닌 건 웃고 넘기는 게 서로 편할 때도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나조차 헷갈린다. 정말 별일이 아니어서 웃은 건지, 별일 아닌 것처럼 만들고 싶어서 웃은 건지.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농담처럼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평소라면 나도 웃고 넘겼을 이야기인데 어떤 날은 유난히 듣기 싫을 때가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웃고 있으면 나도 따라 웃는다. 그만하라는 말을 하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는 나. 그러면 상대도 웃으며 내가 웃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비슷한 말을 한 번 더 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 웃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때부터는 조금 불편해진다.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표정을 굳히기도 어렵고, 방금 전까지 나도 같이 웃었으니 이제 와서 싫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결국 끝까지 웃으며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야 생각한다.

'사실 그 말이 싫었어.'



이런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누군가 선을 넘는 질문을 했을 때도 그랬고,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물어볼 때도 그랬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농담의 대상이 되었을 때도 그냥 웃었다. 그 자리에서는 웃는 게 가장 쉬웠다. 싫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았고,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오히려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내가 불편하다는 걸 드러냈을 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게 싫었으니까. 차라리 한번 웃으면 금방 지나간다. 정말 별일 없이 지나갈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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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누군가 내게 꽤 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순간 당황해서 웃음부터 나왔다. 적당히 얼버무리면 끝날 줄 알았는데 상대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했다. 나는 또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날도 별일 없이 대화는 끝났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장면이 생각났다. 왜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 싶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웃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내가 불편한 줄 몰랐을 수도 있었다. 질문을 받고 웃었고, 대답도 했고, 대화도 계속 이어갔으니까. 속으로는 분명 싫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계속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예전에 서운했던 일들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왜 자꾸 이런 말을 하지, 왜 내가 싫어하는 걸 모르지 생각했던 순간들 중에는 상대가 정말 몰랐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불편해하면서도 웃었고, 싫으면서도 대답했다. 그러고는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생각해 보면 말하지 않은 마음을 알아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모든 불편함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할 수는 없다. 웃고 넘어가는 편이 나은 일도 있고, 굳이 문제로 만들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다. 때로는 그 자리를 빨리 지나가기 위해 웃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일 수도 있다. 다만 웃었다는 이유로 내 마음까지 괜찮았던 것으로 만들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때 웃었어도 싫을 수 있고 대충 넘겼어도 불편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때 느낀 마음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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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비슷한 순간이 오면 예전보다 조금 덜 웃는 편이다. 누군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물으면 굳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는다. 잠깐 가만히 있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그냥 말한다. "그건 말하기 좀 곤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이 짧은 말도 어색하고, 말하고 난 뒤의 몇 초가 괜히 길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상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은 알겠다고 하거나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더라.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한 번 더 묻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그때 다시 웃으면서 얼버무렸겠지만, 요즘은 그냥 같은 뜻을 한 번 더 전한다.



아직도 나는 자주 웃는다. 당황하면 웃음부터 나오는 버릇도 그대로다. 누군가의 말이 불편했는데도 그 자리에서는 웃고,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싫어했다는 걸 깨닫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웃는 버릇을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웃음 덕분에 어색한 순간을 무사히 지나온 적도 많았고,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을 넘길 수 있었던 때도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웃고 있는 내 얼굴만 보고 마음까지 괜찮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웃었다고 괜찮았던 것은 아니다.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계속 물어봐도 좋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에는 싫다는 말보다 웃는 게 쉬웠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웃음 뒤에 숨어 있던 마음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순간에는 말하지 못했더라도 내가 싫었던 건 무엇인지, 왜 불편했는지 한 번쯤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순간이 오면 조금 덜 웃고, 조금 더 내 마음에 가까운 대답을 해본다.



여전히 웃어넘기는 쪽이 쉽다. 오래 해온 방식이니 아마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집에 돌아와서야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웃음으로 넘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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