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작가가 되는 대신 나의 작가가 되기로 했다.

남의 기대보다 나의 이야기를 쓰기

by다슬

누군가 내 글의 솔직함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음 글에서도 솔직해야 할 것 같고, 활기찬 문체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음에도 생동감 있게 써야 할 것 같다. 어느 순간 나의 장점이 새로운 의무가 된다.

그런데 그 의무는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의무에 가까웠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으니까. 내가 별생각 없이 쓴 문장에서 누군가가 나만의 특징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좋아한다고 말해 주면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야 발견하는 모습도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자신의 문체를 좋아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꽤 특별한 일이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가 표현한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나도 그 장점을 잘 지키고 싶었다. 누군가가 좋아해 주는 나의 모습을 계속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의 장점을 지키는 것과 그 장점에 갇히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굉장히 헷갈렸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잘하는 것만 계속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지금까지 잘 써 온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싶을 때도 있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글을 써 보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름대로 변주를 주려고도 해 보았다.


조금 더 세련된 표현을 써 보기도 하고,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문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내가 쓰던 방식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글이 나올 줄 알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딘가 어색했다. 변화를 주려고 노력할수록 내 글이 내 글 같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퍼스널 컬러를 억지로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잘 어울리는 색인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지금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과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글을 자주 읽으시는 독자님께서 내 문체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지금의 글도 좋지만, 예전의 날것 같은 문체가 더 나답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고쳤던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예전보다 덜 나다운 모습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지금의 글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지고 있던 솔직함과 투박함이 독자에게는 하나의 매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더 나은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었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처럼 매끄럽고 멋진 문장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진 장점을 발전시키는 것과 남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나를 바꾸는 것 사이에서 자꾸 헷갈렸던 것 같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분명 나에게 필요한 욕심이다. 하지만 잘 쓰고 싶다는 이유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말을 계기로 굳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나에게 코르셋처럼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코르셋은 몸을 아름다운 형태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몸을 조이기도 한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들에게 더 좋아 보이는 문장을 만들려고 애쓰다가 정작 내가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까지 잃어버린다면, 그건 내가 원했던 글쓰기와 조금 멀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가진 장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에는 평소보다 차분한 글을 쓸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다. 때로는 문장을 정교하게 다듬고, 때로는 처음 쓴 투박한 문장을 그대로 남겨 둘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글이 될 수 있다면, 굳이 한 가지 모습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선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조회 수도 라이킷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신경 쓰인다. 내가 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한다고 말해 주면 기쁘다. 글을 발행하고 나면 조회 수가 얼마나 나왔는지 궁금해지고, 어떤 문장에서 공감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내가 공들여 쓴 글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도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 역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고민하며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거나,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의 반응이 내가 다음에 쓸 글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조회 수가 높은 글을 쓰고 나면 다음에도 비슷한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반응이 좋았던 표현이 있으면 다음 글에서도 그 장점을 보여 줘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일도 작가에게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독자가 어떤 부분에서 공감했는지 살펴보는 건 다음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글이 같은 방식으로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떤 글은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어떤 글은 소수의 독자에게 오래 남을 수도 있다. 또 어떤 글은 당장 큰 반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내가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고 싶다면, 나는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글도 좋다. 내 글을 읽고 감동하거나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내가 신나서 쓰고 싶어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머릿속에 있던 장면을 문장으로 옮기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다음 문장이 궁금해서 얼른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지는 글 말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보다 이 이야기를 빨리 쓰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순간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찾아 읽는 이유도 단순히 문장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작가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그 사람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일상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발견하는 것이 다르고,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다음 작품도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쓸지 나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뿌듯해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혼자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내가 쓴 모든 글이 마음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글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부끄러울 수도 있고, 어떤 문장은 왜 이렇게 썼을까 싶을 만큼 어색할 수도 있다. 지금은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표현이 나중에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글을 쓰는 동안에는 끝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글이 전부 실패한 글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쓴 글이고, 다음에는 조금 다르게 써 볼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글일 테니까.


나는 아직 작가로서 배워 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을 것이고,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으며 부러워할 것이다. 독자들의 반응에 기뻐하기도 하고, 기대만큼 읽히지 않는 글 앞에서 아쉬워하기도 할 것이다. 그 마음을 완전히 없애는 건 아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가 좋아해 주는 나의 장점을 소중히 여기되, 그 장점만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히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예전의 날것 같은 문체로 돌아가고, 때로는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다.


어떤 글에서는 내가 가진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어떤 글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지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좋은 작가로 기억되는 것도 좋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가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이다.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작가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이 좋아하는 문체를 흉내 내기보다 내가 즐겁게 쓸 수 있는 문장을 찾고, 남들이 기대하는 이야기만 반복하기보다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누군가의 작가가 되는 대신, 나의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 말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도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쁠 것이고, 더 많은 독자에게 내 이야기가 닿기를 바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바꾸는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쓴 오래된 글을 다시 펼쳐 보았을 때, 그때의 문장이 서툴러서 웃음이 나더라도 그 안에 내가 좋아했던 마음과 즐거움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글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이건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야."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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