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싫은 날
글을 쓰기 싫은 날에는 오래된 애인과 미친 듯이 싸운 날이다. 서로 마음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씨인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에는 글 앞에 앉는다.
괜히 투덜거리며 오늘은 한 글자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어느새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분명 쓰기 싫다고 했는데 왜 또 쓰고 있는 걸까.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좋아서 하는 일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만둘 수도 없는 일.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있고, 한 문장도 쓰기 싫은 날도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일 말이다. 이럴 땐 내가 츤데레가 된 기분이다. 나는 글과 장기 연애 중인 커플인 것이다.
"아… 쓸 만한 게 없어. 아이디어도 생각이 안 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쓸 게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이렇게 글을 쓰기 싫다는 마음을 적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쓸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글이라는 오래된 애인은 내가 싫다고 밀어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존재인가 보다. 오늘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해 놓고도 어느새 다시 말을 걸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뾰로통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와 음료를 들고 글과 마주 앉는다. 왜냐하면 미치도록 사랑했던 관계에서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아, 이것도 권태기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래도 글과 대화를 해 본다. 글과 나는 장기 연애 커플이기 때문이다.
"그래… 지지고 볶을 수 있지. 애증도 사랑의 한 종류이니까."
옅은 한숨을 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도각도각 소리를 내고, 천천히 글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집필을 시작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으면서도 결국 또 쓰고 있다. 오래된 애인과 한바탕 싸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말을 걸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