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이 무상(無常)과 재회하는 날
내 마음의 결을 온전히 내어주며 일편단심으로 흠모했던 여인은,
가는 구리 철사를 정성껏 감아 와이어 코일을 만드는 장인을 따라 가출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떠남을 이별에 익숙한 DNA를 타고났기 때문이라 수군대지만,
나는 맞부딪친 고난 앞에 차마 절망의 손을 놓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절망 대신 무상(無常)을 품고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죽기 살기로 걷다 보면,
하얀 미소를 띤 시인과 맞부딪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허무 대신 무상(無常)을 쫓는다면,
이별 또한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지 않겠는가?
이별을 고한 여인의 옅은 향수는, 결국 산들바람이 불어와야만 내 가슴에 닿을 수 있는 것.
선악의 피안이 무상(無常)과 재회하는 날, 나는 고요히 찾아오는 낯선 여인을 기다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