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바카라자 속 건물

by송작가


삼 학년 교실은 이 층에 있었다. 창밖으로 체육관의 지붕이 보이는 자리라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공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담임은 첫날부터 대학 이름을 칠판에 쓰지는 않았다. 대신 칠판 한쪽에 자기 상담 가능 시간을 붙이고, 따로 준비하는 시험이나 실기가 있는 학생은 먼저 찾아오라고 했다.

송재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교무실에 갔다. 담임은 그의 이름 옆에 음악이라고 적어 둔 것을 확인하고 악기를 물었다. 클라리넷이라는 대답을 듣자 검은색으로 길쭉한 것이 맞느냐며 손으로 길이를 표시했다. 송재는 조금 더 짧다고 했다. 담임은 수첩에 악기 이름을 적었다.

“지원할 학교는 정했니?”

“아직이요. 선생님이 조금 더 보자고 하셨어요.”

“학교 선생님 말고 레슨 선생님?”

송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은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을 따로 놓고, 학교별 반영 방식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송재는 바카라상 옆에 꽂힌 대학 안내 바카라자들을 보았다. 철 지난 바카라자도 섞여 있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담임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빌려 가라고 했다. 그는 음악대학이 있는 학교 이름을 골랐다. 어떤 학교의 바카라자는 학과 소개가 한 장뿐이었고 어떤 것은 음악대학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 샤대학교의 두꺼운 안내서는 아래쪽에 눌려 있었다. 꺼내는 순간 옆의 얇은 종이 묶음까지 따라와 바닥에 떨어졌다.

송재가 허리를 숙여 주워 올리자 담임은 그런 바카라자는 숫자가 매년 바뀌니 홈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표지를 폈다. 앞부분에는 나무가 많은 큰 길과 높은 건물들이 있었다. 꿈에서 본 것과 닮은 곳은 없었다. 몇 장을 넘긴 뒤 음악대학 소개 페이지 아래에 실린 작은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

사진은 건물 밖에서 찍은 것이었다. 회색 벽과 길게 난 유리, 그 앞의 낮은 화단이 보였다. 송재는 건물이 낯익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사진의 반대편에 서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유리 안에서 밖으로 보았던 화단이었다. 그는 종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사진이 작아서 안쪽은 어두운 직사각형처럼 보일 뿐이었다.

“거기 관심 있니?”

담임이 묻자 송재는 고개를 들었다.

“사진 좀 보려고요.”

“가 본 적 있어?”

“아니요.”

교실로 돌아오는 동안 안내서를 가방에 넣지 못했다. 계단참에서 다시 펼쳤다. 꿈의 복도에 어떤 바닥이 깔려 있었는지, 문은 어느 쪽으로 열렸는지 기억하려 하자 오히려 사진 속 건물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확실한 것은 회색 건물과 유리, 낮은 화단이었다.

태환은 그가 들고 온 바카라자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대신 교무실에서 받은 작은 수첩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년에 대학 홍보물과 함께 온 수첩이 필기하기 편했다는 것이었다. 송재가 못 봤다고 하자 태환은 바카라자를 펴서 기숙사 식당 사진을 보았다.

“여기는 밥이 이렇게 나와?”

“사진 찍는 날만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우리 급식도 사진 찍는 날을 많이 만들자.”

송재는 웃지 않고 건물 사진으로 바카라장을 넘겼다. 태환이 그의 손을 따라 보았다.

“여기가 왜?”

“겨울에 꿈에서 본 데랑 비슷해.”

“귤 다음은 대학이야?”

태환의 말에 송재는 바로 바카라을 덮었다. 놀리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소리 내어 이어 놓으니 지나치게 큰 이야기처럼 들렸다. 태환은 그럼 붙는 꿈이냐고 물었고 송재는 아니라고 했다. 합격 통지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잠깐 복도에 있었고 누군가 문을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태환은 바카라자를 다시 열어 사진 아래의 건물 이름을 읽었다. 송재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둘은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려다가 수업 종이 울려 멈췄다. 바카라은 바카라상 서랍에 들어갔다. 영어 선생님이 지난 학기 범위를 확인하는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고 송재는 첫 문장의 빈칸을 풀지 못해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날 레슨에서 송재는 안내서를 꺼내지 못했다. 빠른 부분에서 오른손과 혀의 움직임이 계속 어긋났다. 선생님이 음을 붙여 불어 보라고 했을 때는 됐지만 다시 짧게 끊으니 틀렸다. 선생님은 둘을 한꺼번에 고치지 말고 손가락부터 보자고 했다. 수업의 절반이 네 마디에 들어갔다.

끝나기 십 분 전에야 송재는 가방에서 바카라자를 꺼냈다. 선생님은 샤대 로고를 보더니 악보와 함께 놓아 보라고 했다.

“여기도 생각하니?”

“가능성이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지금 상태를 묻는 거면 높지는 않아.”

대답은 예상보다 빨랐다. 선생님은 입시곡에서 지금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짚었다. 빠른 손가락보다 느린 부분에서 음을 유지하는 힘, 반주와 함께할 때 자기 시간을 지키는 일, 한 번 틀려도 다음 구절로 넘어가는 습관이었다.

“이번 달 녹음 가져왔지? 끝부분부터 들어보자.”

송재는 바카라자를 다시 넣었다. 꿈 이야기를 했다면 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으나 지금 할 말은 아니었다. 그는 연습 녹음 파일을 열었다. 휴대전화의 작은 스피커에서는 자기 소리가 실제보다 얇게 나왔다. 그래도 늦어지는 곳은 분명히 들렸다. 송재가 중간에 멈추려 하자 선생님은 끝까지 두라고 했다.

안내서는 일주일 뒤 돌려주었다. 반납하기 전에 건물 페이지를 휴대전화로 찍었다. 그 사진에는 빛이 반사되어 회색 벽 한쪽이 하얗게 날아갔다. 그는 다시 찍지 않았다. 작아진 화면에서 화단을 확인한 뒤 다른 사진들 사이에 그대로 두었다. 그다음에는 학교별 모집 정보를 한 장에 정리했다.

봄이 깊어지자 학교 준비실은 낮에 더워졌다. 창문을 열면 체육 수업의 호각 소리가 들어왔다. 문을 닫으면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송재는 수업이 끝난 뒤 물을 채우고, 십 분씩 쉬면서 불었다. 점점 할 수 있는 부분은 늘었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도 더 자세히 들렸다. 예전에는 한 번 넘기면 되는 구절을 이제는 어딘가 급해졌다는 이유로 다시 시작했다.

동네 학원 발표회가 열린 날에는 부모가 모두 오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근무가 겹쳤고 아버지가 동생을 데리고 왔다. 송재는 객석에서 둘을 찾다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반주 선생님이 악보 순서부터 다시 확인하자고 불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무대 옆 의자로 갔다.

연주는 크게 틀리지 않았지만 중간에 숨을 늦게 쉬어 마지막 구절이 짧아졌다. 송재는 객석에 인사하면서 누가 알아챘을지 생각했다. 무대 아래에서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켜 둔 채 손뼉을 치고 있었다. 촬영을 멈추는 버튼을 찾지 못해 다음 학생이 들어오는 장면까지 담겼다.

집에서 영상을 보자 동생이 소리보다 송재가 서 있는 자세를 지적했다.

“왜 자꾸 한쪽으로 가?”

“박자 맞추느라.”

“아까 피아노 치는 선생님은 안 그러던데.”

아버지는 옆에서 웃었고 송재는 영상을 멈췄다. 다시 보면 더 신경 쓰일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날 선생님이 같은 이야기를 해서 그는 영상을 끝까지 봐야 했다. 리듬을 타는 움직임과 중심이 흔들리는 움직임이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어느 순간 발뒤꿈치가 가벼워지는지 느껴졌다.

여름에는 반주 시간을 늘렸다. 수업료를 한꺼번에 내지 않도록 날짜를 조정했고, 어머니는 송재가 적어 온 달력의 빈칸을 확인했다. 송재는 반주 선생님에게 시간을 줄여 달라는 말을 해 볼까 했지만 혼자 연습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대신 준비를 못 해서 같은 설명을 다시 듣는 일은 줄이려 했다.

한번은 호흡과 강약을 고쳐 표시한 악보를 집에 두고 나왔다. 휴대전화 사진으로 하겠다고 했으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작은 화면이 자꾸 꺼졌다. 반주 선생님은 자기 악보를 복사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수업 시간이 십 분 줄었다. 송재는 집에 돌아와 케이스 위에 다음 날 가져갈 악보를 놓았다.

학교에서는 모의고사가 이어졌다. 송재는 국어 시험에서 글을 다 읽고도 선택지를 오래 비교하다 마지막 문제를 급하게 풀었다. 담임은 연습 시간을 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시험을 치르는 동안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표시해 보라고 했다. 송재는 수학 문제집처럼 국어에도 시간을 적기 시작했다. 잘 풀던 유형에서 뜻밖에 오래 걸렸고, 어려울 줄 알았던 부분을 빨리 넘기기도 했다.

태환과 도서관에 가면 둘은 다른 자리에 앉았다. 함께 앉으면 물 마시러 나가는 시간까지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정해 둔 시간이 되면 휴게실에서 만났다. 태환은 전문대와 직업 교육 과정을 동시에 알아보고 있었다. 집에서는 안정적으로 대학부터 가라는 말과 실습이 많은 곳을 가라는 말이 번갈아 나왔다.

“너는 원하는 게 하나라 편하겠다.”

태환이 말하자 송재는 편하지 않다고 대답하려다 물을 마셨다. 태환 역시 그 말의 뜻을 스스로 고쳤다.

“편하다는 게 아니라, 뭐가 안 되면 안 되는지 알잖아. 난 뭘 보면 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

송재는 태환의 휴대전화에 열린 학과 안내를 함께 보았다. 실습 시간과 통학 거리, 장학금 조건이 제각각이었다. 둘은 학교 이름만 비교하다가 시간표의 실제 수업을 찾아보기로 했다. 송재가 입시 정보를 정리한 표를 보내 주자 태환은 반주비 항목에 기름값이라고 쓰겠다고 했다. 송재가 벌써 차를 살 거냐고 묻자 태환은 먼 훗날을 위해 남겨 놓는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태환은 예전에 말한 꿈의 학교가 아직도 나오느냐고 물었다. 송재는 요즘에는 기억나는 꿈이 없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잘 때까지 악보와 지문을 번갈아 보다가 아침 알람에 눈을 뜨는 날이 많았다. 어떤 날은 악기 소리를 내는 꿈을 꾸었지만 장소도 대사도 없는 꿈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겨울의 복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서 선생님은 지원할 학교를 더 구체적으로 골랐다. 무조건 여러 곳을 보라고 하지는 않았다. 시험 날짜가 겹치지 않는지, 학교마다 준비할 곡이 얼마나 다른지부터 봤다. 송재는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들은 학교의 이름 아래 선을 그었다. 그 위쪽에 써 둔 샤대에는 아직 표시가 없었다.

“이곳은 네가 정말 보고 싶다면 준비는 해 볼 수 있어.”

선생님이 말하자 송재는 펜을 들었다.

“추천하신다는 뜻이에요?”

“지금 합격을 기대하라고 하는 건 아니야. 시험을 보러 가는 데도 비용과 시간이 드니까 네가 무엇을 감당할지 정해야 해. 다른 준비가 흐트러지면 나는 말릴 거고.”

송재는 펜을 내려놓았다. 지원과 합격 사이에 얼마나 넓은 거리가 있는지 이미 알면서도, 허락받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요즘 느린 구절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날 가족은 식탁에 앉아 시험 일정을 봤다. 수능을 치른 뒤 실제 지원 조건과 날짜를 다시 확인해야 했고 실기까지는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었다. 송재는 서울 친척 집에서는 악기를 연습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는 근처에 연습실이 있는 숙소를 알아보자고 했다.

“다른 학교 준비까지 생각해 봤어?”

어머니가 물었다.

“응. 이 학교만 보는 거 아니야.”

“알았어. 방은 취소할 수 있는 데로 찾아보자.”

송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달력에 예상 날짜를 작게 적었다. 아직 확정할 수 없어 볼펜 대신 송재의 연필을 빌렸다. 송재는 바카라자 속 회색 건물을 다시 말하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연필을 돌려주자 끝내 아무 말 없이 받아 들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는 졸업 사진을 찍었다. 송재는 악기를 가져갈까 하다가 단체 사진에 케이스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이상해 빈손으로 운동장에 나갔다. 태환은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 후회하고 있었다. 사진사가 줄을 맞추는 동안 둘은 서로의 넥타이를 고쳐 주었다. 태환의 매듭을 잡아당기자 셔츠 깃이 한쪽만 접혔다.

“너는 손으로 먹고살 애가 이런 걸 못 해.”

“다른 종류의 손이야.”

송재가 대답하자 뒤에 서 있던 반 친구까지 웃었다. 사진사는 웃을 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수능을 앞두고 선생님은 마지막 며칠의 연습 시간을 줄였다. 손을 굳히지 않을 만큼 불고 잠을 충분히 자라는 뜻이었다. 송재는 줄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려다가 어머니에게 불을 끄라는 말을 들었다. 바카라상에는 수험표 준비 안내와 악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철학바카라의 반납일은 이미 한 번 연장했다.

바카라은 다 읽지 못한 채 반납했다. 수험표를 받아 온 날, 송재는 그것을 바카라상에 놓고 아버지가 빌려준 시계의 시간을 맞췄다. 옆의 보면대에는 입시곡이 펴져 있었다. 첫 장에 겹쳐 그은 선을 조금 지웠다. 지우개 가루가 수험표 위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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