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답안지와 숨

by송작가

수능 전날 저녁, 식탁에는 물잔과 아버지의 술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따로 작은 잔을 찾기 귀찮아 물을 마실 때 쓰는 유리컵에 투명한 술을 조금 따라 두었다. 송재는 식탁 끝의 시험장 안내를 보며 손을 뻗었다. 컵 가장자리가 입술에 닿을 때까지 다른 잔을 집었다는 것을 몰랐다.

한 모금을 넘긴 뒤 얼굴을 찡그렸다. 아버지가 컵을 받아 들었다.

“그거 내 거야.”

어머니가 바로 새 물잔을 주었다. 송재는 물을 마시고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제 컵을 식탁 반대쪽으로 옮겼다. 동생이 잔이 똑같이 생겼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러니까 내가 잘못 놓았다고 했다. 작은 소동은 도시락 반찬을 무엇으로 할지 정하는 사이에 끝났다.

그날 밤 꿈에 종이가 나왔다. 작은 검은 글자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지만 읽으려 하면 시야에서 벗어났다. 송재는 자기 손에 연필이 있는 것을 보았다. 손이 종이 아래쪽으로 내려갔고 몇 개의 번호 중 하나에 멈췄다. 어느 번호인지 확인하기 전에 종이의 흰 여백만 남았다. 깨어났을 때에는 시험 걱정을 꿈에서까지 했다고 생각했다.

도시락을 싸는 소리가 알람보다 먼저 들렸다. 송재는 아버지가 빌려준 시계를 손목에 채우고 방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국을 작은 그릇에 덜어 놓고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있었다.

“평소보다 많이 먹지 말고.”

송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한 숟가락 떴다. 입이 말라 물부터 마시고 싶었으나 국을 먼저 먹었다. 아버지는 자동차 열쇠를 들고 현관에서 기다리지 않고, 식탁 반대쪽에 앉아 자기 밥을 먹었다. 동생은 아직 방에 있었다. 어젯밤 자기 바카라상 위에 작은 초콜릿을 올려놓고 간 것이 생각나 송재는 가방 앞주머니를 확인했다.

시험장까지 가는 길에는 평소보다 차가 많았다. 아버지는 정문 바로 앞까지 들어가지 않고 한 블록 전에 세웠다. 여기서부터 걸으면 늦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송재는 충분하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돌아보았다.

“끝나면 여기서 기다릴까?”

“버스 타고 갈게. 퇴근 시간 겹치잖아.”

“그러면 끝났다고만 보내.”

송재는 가방을 메고 걸었다. 낯선 학교 정문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들렸다. 수험표의 교실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카라상 위에는 이전에 앉던 학생이 연필로 적은 숫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송재는 그것을 손으로 문질렀다가 가루가 묻어나지 않자 그만두었다. 도시락을 의자 아래 놓고 시계를 바카라상 모서리에 두었다. 옆자리 학생이 다리를 떨었다. 멈추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바카라상 끝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첫 시험의 처음 십 분은 연습한 것보다 느리게 갔다. 문장을 읽고도 의미가 바로 붙지 않았다. 송재는 밑줄을 긋던 손을 멈추고 다음 문단까지 한꺼번에 읽었다. 학교에서 풀던 시험지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종이의 두께 정도인데, 자꾸 여기서 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남은 시간을 보고 읽는 속도를 조절했다.

이상한 느낌이 온 것은 시험 중반이었다. 글을 읽고 두 개의 선택지를 남겨 둔 문제였다. 하나는 앞부분이 맞고 뒤가 조금 과한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글에 직접 쓰이지 않은 말이 들어 있었다. 송재는 표시해 둔 문단을 다시 읽었다. 정답을 안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 선택지의 번호 위에 시선이 멈췄을 때 오래전에 같은 자리를 짚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손을 떼었다. 어젯밤 꿈에서 연필이 내려가던 모양이 잠깐 떠올랐다. 꿈에서는 답의 번호를 보지 못했다. 근거를 찾으려고 지문을 다시 읽었지만 처음의 판단이 분명해지지는 않았다.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네 번째에 작은 표시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뒤쪽에서도 한 번 더 비슷한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답을 고르기 전에 번호가 익숙했다. 번호 옆으로 손이 갔다가 멎었다. 그는 문제의 조건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계산을 한 번 더 했다. 답은 그대로였고, 왜 그 답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듯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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