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 송재는 셔터 옆에 서서 휴대전화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삼십이 분이었다. 버스를 하나 늦게 타도 됐지만, 어머니가 일찍 나가는 바람에 그도 외투를 입고 따라나섰다. 아래층 빵집에서 나온 직원이 유리문 앞의 고무 매트를 털었다. 송재는 내려갈까 하다가 계단참에 케이스를 세우고 단어장을 폈다.
선생님은 종이봉투를 두 개 들고 왔다. 한 봉투에서는 식빵이 보였고 다른 봉투에는 수리점에 맡겼던 악기 부품이 들어 있었다. 송재가 인사하고 봉투를 받아 들자 선생님이 셔터를 올렸다. 안은 바깥보다 나을 뿐 따뜻하지 않았다.
“바로 불지 말고 히터부터 켜. 그리고 열한 시 전에 닦는 시간까지 계산하고.”
가장 안쪽 연습실에는 벽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송재는 제 얼굴을 보면서 연습하는 것이 싫었다. 잘 안 되는 순간 눈썹을 올리는 버릇이 보였다. 선생님이 거울을 달아 둔 건 몸의 힘을 확인하라는 뜻이었지만 그는 자꾸 얼굴만 보고 있었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의자에 걸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긴 음을 불고 천천히 음을 올리는 데 삼십 분이 지나갔다. 준비실에서 혼자 할 때보다 음 하나에 오래 머물렀다. 옆방에서 선생님이 식빵 봉투를 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듣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둘러 곡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다만 오래 버티는 것과 안정되게 부는 것은 달라서 마지막에는 늘 소리가 말랐다.
선생님이 문을 두드렸을 때 송재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끝에 왜 더 눌렀어?”
“숨이 모자라서요.”
“모자라면 쉬어. 모자란 걸 입으로 막으면 더 모자라.”
선생님은 그의 악기를 가져가지 않고 옆에 앉았다. 손바닥을 갈비뼈 가까이에 대고 숨을 들이마셔 보라고 했다. 송재가 어깨를 내리자, 이번에는 내리는 것까지 일부러 크게 한다며 웃었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자세인지 찾으려 하면 몸 전체가 부자연스러워졌다.
“아까 들어올 때 인사할 때는 잘 쉬었잖아.”
송재도 웃음이 나왔다. 웃고 난 뒤 첫 음은 조금 덜 눌렸다. 그러나 두 번째로 시도했을 때는 웃고 난 상태까지 흉내 내다가 처음보다 이상해졌다. 선생님은 그만하고 악보의 짧은 부분으로 넘어가라고 했다. 호흡을 알아냈다는 느낌을 붙들고 있는 사이 실제로 숨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열 시가 넘자 다음 학생이 왔다. 학교에서 음악을 따로 배운다는 동갑내기였다. 그 학생은 송재와 인사하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혀도 빠르게 움직이는 음들이 들렸다. 송재는 자신이 연습하던 속도를 한 칸 올렸다가 바로 틀렸다. 원래 속도로 돌아가려니 민망했다. 아무도 그의 숫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열한 시 십 분 전에는 악기를 내려놓아야 했지만 한 번만 더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넘겼다. 문 앞에서 다음 예약자가 기침하는 소리에 그는 급히 청소용 천을 꺼냈다. 관을 분리하고 키 사이의 물기를 닦는 동안 선생님이 지나가며 시계를 가리켰다. 송재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음 학생은 괜찮다며 먼저 자기 가방을 놓을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집에 돌아오자 동생이 거실 바닥에 귤을 늘어놓고 있었다. 큰 것과 작은 것을 나누는 줄 알았는데, 하나씩 들어 밑면을 보고 다시 놓았다. 송재가 뭐 하느냐고 묻자 동생은 준비물이라고만 대답했다. 방학 과제로 과일을 관찰해 오라는 말을 들었는지, 친구와 장난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송재는 손을 씻고 어머니가 남겨 둔 국을 데웠다.
오후에는 태환이 왔다. 둘은 문제집을 식탁에 펴 놓고 한 시간쯤 공부한 뒤 태환의 휴대전화로 정비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태환은 낡은 부품과 새 부품의 차이를 설명하려다 정확한 이름을 몰라 삼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오는 동안 송재는 사진 가장자리의 기름통을 확대했다.
“네가 뭐 했는데?”
“청소.”
“견학이라며.”
“구경하다가 저절로 청소하게 되더라. 바닥에 흘린 건 바로 닦아야 돼.”
태환은 아침에 너무 추워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았고, 점심에 먹은 찌개가 생각보다 비쌌다는 이야기를 했다. 송재는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물었고 태환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그래도 계속 가 볼 거야?”
“응. 두 번 가고 뭘 알겠냐. 근데 학교에서는 이미 진로 정한 것처럼 쓰라더라.”
송재는 다음 주에는 아침 버스를 같이 탈 수 있겠다고 했다. 정비소와 학원은 반대 방향이었지만 시내 정류장까지는 같은 길로 갔다.
태환이 돌아간 뒤 송재는 방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 졸리기는 했지만 낮잠을 자면 밤에 공부가 더 밀릴 것 같았다. 휴대전화에서 연주 영상을 틀어 놓고 들었다. 자신이 배우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불면 음들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자기가 따라 하면 음 사이가 끊어졌다. 화면 속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다가 결국 잠들었다.
그 꿈은 긴 내용이 없었다. 송재는 손에 든 귤을 반 바퀴 돌렸다. 껍질에 검은 펜으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한쪽 눈은 동그랗고 다른 눈은 길쭉했다. 입을 그린 선은 중간에서 한 번 끊겨 있었다. 옆에서 태환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거 먹으면 안 돼.”
왜 안 되는지 묻기 전에 동생이 방문을 열었다. 저녁 먹으라는 말이었다. 송재는 몸을 일으켜 화면이 꺼진 휴대전화를 찾았다. 귤 꿈을 꿨다고 말하려다가 낮에 거실에서 본 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식탁에는 귤 대신 잘라 놓은 사과가 나왔다.
며칠 동안 날씨가 풀렸다. 학교의 창문 공사도 끝나서 송재는 다시 준비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새 고무가 들어간 창문은 닫을 때 힘이 더 들었지만 찬바람이 덜 들어왔다. 그는 바카라상 한쪽을 닦고 연습 시간을 셋으로 나누었다. 처음에는 기초, 가운데는 악보에서 안 되는 부분, 마지막에는 앞뒤를 잇는 연습이었다. 계획한 대로 다 되는 날보다 첫 부분에서 시간이 끝나는 날이 많았다.
점심에는 근처 분식집에서 가장 싼 메뉴를 먹거나 집에서 가져온 주먹밥을 먹었다. 혼자 먹을 때 악보를 펼치면 밥풀이 붙어 수업 중에 민망했다. 그래서 식사할 때는 가방을 닫기로 했다.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마친 태환이 가끔 준비실로 와서 같이 먹었다. 태환은 이미 수학 문제집을 덮고도 송재가 한 입씩 천천히 씹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입 때문에 그렇게 먹는 거야?”
“어떻게?”
“뭔가 중요한 사람처럼 먹어.”
송재는 삼키다가 웃어서 기침했다. 태환이 물병을 밀어 주었다. 입술을 다치면 며칠 연습을 못 한다는 말을 들은 뒤 사탕을 깨물지 않게 된 건 맞았다. 그렇다고 식사까지 그렇게 조심할 필요는 없는데, 연습 전에 매운 음식을 먹고 입 안이 아팠던 일이 오래 남아 있었다.
그날 가방 안에는 어머니가 넣어 준 주먹밥 외에 귤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송재는 태환에게 하나를 굴려 주고 자기 것도 꺼냈다. 껍질을 까려다가 검은 선을 보았다. 귤을 반 바퀴 돌리니 얼굴이었다. 한 눈은 동그랗고 한 눈은 길었다. 입은 중간이 끊겨 있었다.
태환이 손을 뻗었다.
“그거 먹으면 안 돼.”
송재는 손을 멈췄다. 태환은 귤을 가져가지 않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이름까지 있는 거 아니냐? 네 동생 거 같은데.”
“네가 어떻게 알아?”
“뭘 어떻게 알아. 걔가 맨날 네 공바카라에도 그리잖아.”
태환은 종이로 된 주먹밥 포장을 접고 있었다. 송재는 귤을 바카라상 위에 세웠다. 꿈에서 본 얼굴과 어느 부분이 다른지 찾아보았지만 바로 눈에 띄는 차이는 없었다. 그가 오래 들여다보자 태환은 썩은 데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이거 꿈에서 봤어.”
“귤을?”
“얼굴 그려진 거. 네가 방금 한 말도.”
태환은 잠시 귤을 보고 웃었다.
“먹으면 안 된다고? 누가 봐도 그 말 하지.”
송재는 그런가 하고 대답했지만 손을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태환은 자기가 먹을 귤을 까면서, 동생이 저런 얼굴을 그리는 걸 예전에 본 적이 있을 거라고 했다. 송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그림은 눈 크기가 늘 달랐다. 그래도 입이 중간에서 끊긴 모양과 태환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겹친 것은 처음이었다.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쉬는 시간에 답이 왔다. 그것은 관찰용 귤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만든 표정 귤이었다. 엄마가 실수로 가방에 넣었는지 확인해 달라는 답 다음에는 먹어도 된다는 말이 붙었다. 껍질 사진만 찍어 달라고 했다. 송재가 사진을 보냈더니 동생은 눈이 위로 가게 다시 찍으라고 했다.
태환은 그 과정을 보며 자기 귤의 마지막 조각을 먹었다. 송재는 얼굴을 최대한 남겨 껍질을 깠다. 한쪽이 찢어졌다. 속은 조금 말라 있었다. 그는 두 조각을 한꺼번에 먹었다. 태환은 꿈에서 본 맛이냐고 묻다가 송재가 싫어하는 표정을 짓자 더 놀리지 않았다.
연습을 시작한 뒤에도 같은 말이 생각났다. 송재는 악기를 내려놓고 휴대전화 메모에 귤, 태환, 먹으면 안 됨이라고 적었다. 그날 날짜가 자동으로 붙었다. 꿈을 꾼 날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태환이 집에 왔던 날인지 다음 날인지 생각하다가, 그때 들었던 영상의 시청 기록을 찾아볼까 했지만 관 안에 물이 고인 것을 보고 휴대전화를 치웠다. 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
주말 레슨에서 선생님은 새 리드를 꺼내 오라고 했다. 송재는 작은 상자에서 네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어제 잘됐고 하나는 지난주에 잘됐으며 나머지 둘은 아직 잘되지 않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송재의 분류를 듣고 웃으며 모두 날짜를 써 두라고 했다.
“잘 안 되는 걸 무조건 리드 때문이라고 하지는 말고.”
“그런데 어제는 됐어요.”
“어제 네 상태도 오늘이랑 같지는 않잖아.”
송재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말을 오랫동안 들었다. 하지만 비용이 드는 리드를 앞에 놓으면 자기 상태보다 나무 조각을 의심하는 쪽이 쉬웠다. 선생님은 그가 부는 것을 두 번 듣고, 마지막 것을 조금 더 두었다가 쓰자고 했다. 당장 새 상자를 뜯을 필요는 없었다.
그날 레슨에는 반주 선생님이 잠시 들어왔다. 봄에 작은 발표회를 할 수 있어서 미리 한번 맞춰 보기로 한 것이었다. 피아노가 시작하자 송재는 첫 줄부터 쫓아가기 바빴다. 혼자 연습할 때에는 실수한 곳을 지나며 조금씩 늦추었는데, 피아노는 그 사정을 모르고 앞으로 갔다. 그는 한 음을 놓친 뒤 그 음을 다시 불려다 다음 음까지 놓쳤다.
“틀린 곳을 다시 불지 말고 다음 시작에서 들어와요.”
반주 선생님이 말했다. 송재는 어디에서 들어와야 하는지 물었다. 두 사람이 악보의 같은 부분에 네모를 그렸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송재는 박자를 세었고, 숨을 들이마신 뒤 피아노의 낮은 음과 함께 다시 들어갔다. 전부 맞힌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반주 선생님이 네모 친 곳을 다시 짚었다.
“암보할 때도 처음부터만 하지 말고, 여기서부터 바로 시작하는 연습을 해 둬요.”
송재는 악보를 덮었다. 첫 음은 떠올랐지만 그다음이 막혀 다시 펼쳐 봤다. 확인한 뒤에는 덮고 같은 곳에서 시작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겨울 타이어를 바꿀지 고민하고 있었다. 비용을 계산하는 말이 나오자 송재는 자기 리드 상자를 가방 안쪽으로 넣었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녁에 송재가 다음 달 레슨은 네 번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공바카라의 숫자를 고치고, 아버지는 버스를 놓치면 무리해서 뛰지 말라고 했다. 창문 밖 보도에 다시 눈이 쌓이고 있었다.
송재는 귤 꿈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할 만한 사건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동생은 다음 날 얼굴이 그려진 귤 세 개를 한꺼번에 가져와 더 잘 그린 것을 고르라고 했다. 모두 비슷해 보였지만 고르는 데 오래 걸리자 동생은 송재가 그림을 모른다며 다시 가져갔다.
며칠 뒤에는 회색 건물의 복도가 다시 꿈에 나왔다. 손에는 케이스가 있었고 남자는 문을 잡고 있었다. 여긴 저녁에도 문이 열려, 하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어서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했다. 유리 밖 낮은 화단을 보다가 깼다. 이번에는 아침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송재는 휴대전화 메모를 열었다가 닫았다. 귤에 관해 세 단어만 적어 둔 것이 우스워 보였다. 정작 꿈을 꾼 날을 적어 두지 않았으니 나중에 자신도 믿기 어려울 것 같았다. 캠퍼스 같았다는 생각을 덧붙일까 하다가, 학교라는 표지판을 본 적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어떤 건물인지 모르는 복도라고만 머릿속에서 고쳐 불렀다.
학원에 도착해 문을 열자 선생님은 오늘은 학교에서 연습하는 것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송재는 학교에 가기 전에 리드 상태를 한 번 보여 드리려고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제야 알아듣고 안으로 들였다. 그는 어제 잘되던 리드가 오늘도 잘되는지 확인했다. 첫 음은 흐렸고 두 번째 음은 조금 나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불어 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만 잘된 곳을 동그라미로 표시하지 말라고 했다. 다음 날 다시 확인해서 같은 상태면 표시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송재는 지우개를 찾아 방금 그린 원의 절반을 지웠다. 종이에 조금 남은 연필 자국은 없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것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고 해서 둘 다 웃었다. 송재는 내일 이 부분부터 해 보겠다고 공바카라에 순서를 적었다.
송재는 숨을 들이마셨다. 밖에서 빵집 유리문이 열렸다. 그는 악보의 네모에 도착해 숨을 쉬고, 다음 줄까지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