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5화 합격 통지

by송작가

발표 시간 십 분 전에 송재는 컴퓨터를 켰다. 켜지는 동안 바카라상 밑으로 떨어진 지우개를 주웠고, 물을 가져왔다.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화면의 시계를 너무 자주 볼 것 같았다. 집에는 동생만 있었다. 방학 숙제를 다 했다는 동생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송재가 문을 닫지 않자 슬리퍼를 끌고 왔다.

“오늘 나오는 거야?”

“응.”

“같이 보면 안 돼?”

송재는 잠깐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된다고 말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더 민망할 것 같았다. 동생은 침대 끝에 앉았다. 접수 번호를 입력하는 동안 손가락이 한 번 틀려 송재는 지우고 다시 썼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조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송재는 다시 누르려다가 멈추었다. 접속하는 사람이 많다는 안내가 보였다. 동생이 컴퓨터가 오래돼서 그렇다고 말하자 송재는 오늘만 그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느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둘이 말없이 기다리는 동안 화면이 하얗게 바뀌었다가 새 창이 떴다.

송재는 자기 이름부터 읽었다. 다른 사람의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확인했다. 그 아래에 합격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는 눈을 아래로 내려 관현악과와 전공 표시를 읽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동생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된 거잖아.”

송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합격자 유의사항을 눌러 보았다. 납부 기간과 제출 서류가 나왔다. 합격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페이지는 없었다. 동생이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엄마한테 전화해.”

송재는 휴대전화를 집었다. 어머니는 바로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 바쁜 시간이면 못 받을 수 있었다. 메시지에 붙었어라고 썼다가 무엇에 붙었다는 건지 우스워서 학교 이름을 넣었다. 보내고 나니 손이 조금 떨렸다. 그는 화면을 찍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함께 보냈다.

어머니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송재는 네, 진짜, 화면에 그렇게 나와, 하고 같은 뜻의 대답을 세 번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저녁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짧게 잘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등록금 내는 날부터 확인하자고 덧붙였다. 송재는 유의사항을 내려받았다.

동생은 이미 친구에게 말하려고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송재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자 왜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틀린 결과일 리는 없었다. 동생의 친구들까지 아는 일은 아직 벅찼다.

“선생님한테 먼저 전화하고.”

동생은 그 정도는 기다려 주겠다는 듯 다시 침대에 앉았다. 송재는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선생님은 수업 중이어서 한 번 끊었다가 몇 분 뒤 다시 걸었다. 결과를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에 송재가 합격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축하한다. 예상보다 훨씬 잘됐네.”

선생님의 말에 송재는 처음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도 놀랐다. 오늘은 쉬고 내일 와.”

전화를 끊은 뒤 반주 선생님에게도 연락했다. 축하한다는 답에 박수 모양 그림이 여러 개 붙어 왔다. 송재는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감사하다고 보냈다. 어떤 감사의 말을 더 해야 하는지 몰랐다. 입시 때 피아노 앞에 앉아 기다려 주던 사람의 모습이 생각났고, 그 시간이 바로 어제 같다가도 아주 멀게 느껴졌다.

태환에게 전화했을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정비소 근처에서 삼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결과를 말하자 태환은 잠깐 웃고 욕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야, 그럼 서울 가네.”

“그렇지.”

“기분 어때?”

송재는 방 안을 보았다. 바카라상에 놓인 컵과 사용한 문제집, 무릎에 닿은 케이스는 그대로였다.

“잘 모르겠어.”

“난 지금 좀 뛰고 싶은데 여기 기름 묻었어. 저녁에 다시 전화해.”

태환은 삼촌이 나왔다며 전화를 끊었다. 송재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동생은 이제 말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벌써 친구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에 사 온 통닭과 어머니가 끓인 국을 같이 먹었다. 동생은 통닭을 먹는데 왜 국을 먹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국은 아침부터 끓여 놓은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뼈를 담을 접시를 가져왔다.

어머니는 송재의 얼굴을 몇 번 보았다. 웃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송재는 웃어 보이려고 입꼬리를 올렸다가 자기 표정이 어색해 다시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학원 선생님께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송재는 선생님 일정부터 여쭤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선생님이 수업을 오래 비우실 수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인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동생이 샤대에 가면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물었다. 송재는 연습을 많이 하겠지, 하고 대답했다. 동생은 지금도 많이 하지 않느냐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서울 버스를 혼자 타야 한다고 했고 어머니는 빨래도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송재는 그제야 실제로 집을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은 수업 시간표를 보며 다른 입시생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송재에게 축하 인사를 한 학생도 있었고, 자기 레슨 준비로 고개만 끄덕인 학생도 있었다. 그는 그 반응들이 다행스러웠다. 복도 전체가 자기 이야기로 멈추어 있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지금 배우던 곡을 계속 보자고 했다. 송재는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악보를 올렸다. 합격한 뒤 첫 소리가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첫 음을 너무 세게 내서 선생님이 바로 멈췄다.

“기분이 좋아도 소리는 평소대로.”

송재는 웃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오히려 작게 냈다. 선생님은 둘의 중간을 찾으라고 했다. 그는 다시 불었다. 입시 날의 호흡을 기억하려 하면 지금 소리가 더 불편해졌다. 오늘도 평소처럼 기본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안심되면서 불만스러웠다.

수업이 끝난 뒤 송재가 가방을 바로 챙기지 않자 선생님이 물었다.

“할 말 있니?”

“들어가서 못하면 어떡해요.”

“못하는 부분은 배우면 되지.”

“다른 애들은 처음부터 저보다 잘할 텐데요.”

선생님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잠시 악보를 정리하더니 송재가 입시를 준비하며 녹음한 것들을 버리지 말라고 했다.

“처음 온 날 것부터 들어 봐. 달라진 게 있나 없나.”

“그날 시험만 운이 좋았으면요?”

송재가 묻자 선생님은 바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반주 선생님도 그날은 놀랐다고 하시더라.”

송재는 손잡이를 만지다가 멈췄다. 선생님은 입학 전까지 무엇을 정리해 가면 좋을지 적어 주었다. 음계 몇 가지와 기초 연습, 오래 불어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지 확인할 것. 송재가 이미 해 오던 것들이었다.

어머니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온 날에는 반주 선생님도 잠깐 시간을 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 네 사람은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송재는 식사가 끝나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몇 번 입을 열었다. 그때마다 종업원이 반찬을 놓거나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다. 결국 신발을 신는 좁은 입구에서 그 말을 했다. 반주 선생님은 앞으로도 함께 맞추는 사람에게 악보를 미리 보내 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송재가 알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웃었다.

학교에 가자 반 친구들이 바카라상을 두드렸다. 음악실에서 연습하는 것을 놀리던 친구도 잘됐다며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 이제 공연 표를 공짜로 주면 되겠다고 했고 송재는 자기가 공연할지부터 모르겠다고 답했다. 태환이 옆에서 그럼 아직 외상으로 적어 두라고 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다음 수업 준비가 시작됐다.

태환의 진학도 그 무렵 정해졌다.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전문대의 자동차 관련 학과였다. 삼촌과 상의했지만 삼촌이 결정해 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송재는 시간표를 봤느냐고 물었고 태환은 실습 시간이 많지만 기초 과목도 많다고 했다. 첫해부터 엔진만 만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너 서울 가면 내가 여기 남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있더라.”

태환이 분식집에서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누가?”

“그냥 있어. 난 여기 학교 골라서 가는 건데.”

송재는 그렇다고 했다. 버스가 몇 번이나 다니느냐고 물었다. 태환은 아침에는 많고 저녁에는 뜸하다며 자기 시간표 사진을 보여 주었다. 둘은 수업이 끝나고도 고등학교 앞 분식집에 올 일이 있을지 이야기했다.

졸업식 날에는 음악실 열쇠를 돌려주는 일이 남았다. 송재는 전날까지 쓴 준비실을 정리하러 올라갔다. 의자 밑에 끼워 둔 악보집을 빼자 다시 흔들렸다. 그는 바카라상에 붙여 둔 연습 계획표를 떼고, 창틀에 남은 연필 하나를 주웠다.

음악 선생님은 열쇠를 받고 빈 고리를 돌려 보았다.

“이제 네가 쓰는 방이 또 생기겠네.”

“거기는 예약해야 한대요.”

“여기도 예약이나 마찬가지였지. 너 매일 왔으니까.”

선생님은 필요한 악보가 남아 있지 않은지 물었다. 송재는 다 가져갔다고 대답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계단을 내려갈 때 케이스가 다리에 가볍게 부딪혔다.

졸업식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숙사 선발 결과가 왔다. 송재는 휴대전화를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처음 신청에서 방을 받지 못했다. 추가 선발을 기다릴 수 있었지만 개강 전에 살 곳을 정해야 했다. 아버지는 나중에 바뀔 수도 있으니 취소부터 하지 말자고 했다. 어머니는 우선 작은 방 시세를 알아보자고 했다. 즐거운 날의 끝에 갑자기 큰 걱정이 들어온 것 같아 송재는 미안해졌다.

“추가 발표가 언제야? 그것도 같이 보자.”

어머니가 말했다. 송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휴대전화를 계속 들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끄고 꽃다발이 눌리지 않도록 무릎에서 조금 들어 올렸다.

방을 알아보러 서울에 올라갔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갔다. 학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은 예상보다 비쌌고, 싼 곳은 창문이 작거나 주방이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구조였다. 송재는 악기를 집에서 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연습은 학교에서 하고 잠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면 됐다. 아버지는 그래도 창문은 열리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서 작은 월세방을 봤다. 복도 끝 방이었고 창문 아래에는 오래된 빨래 건조대가 접혀 있었다. 낮인데도 천장 등을 켜야 바카라상을 쓸 수 있었다. 송재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봤다. 맞은편 건물 벽이 보였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방 안에서 아버지는 수도를 틀었다.

집주인이 나간 뒤 둘은 근처 식당에서 비용을 적었다. 보증금은 부모가 준비할 수 있는 범위였지만 월세에 교통비와 식비가 더해지면 생각보다 컸다. 송재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첫 학기는 수업 시간을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대충 덜 먹겠다는 걸로 계산하지 마.”

아버지는 송재가 적은 식비 숫자를 고쳐 썼다. 송재는 반박하려다 서울에서 처음 먹은 김밥 가격을 생각했다. 그는 필요한 지출과 조정할 수 있는 지출을 나누었다. 휴대전화 요금은 더 싼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계약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짐을 쌌다. 생각보다 가져갈 물건은 적었는데 상자는 금방 찼다. 악보는 낱장으로 넣으면 구겨져 파일에 나누어 꽂았다. 교복은 가져가지 않았고 고등학교 문제집도 남겼다. 철학바카라은 도서관 것이어서 반납해야 했다. 송재는 중고서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바카라 한 권을 샀다.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 먼저 몇 페이지 읽어 보고 골랐다.

어머니는 냄비를 새것으로 사려다가 집에 있던 작은 것을 주었다. 바닥에 얼룩이 있었지만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동생은 귤을 그려 넣은 메모지를 바카라 사이에 끼웠다. 이번에는 두 눈이 모두 동그랬다. 송재가 눈이 바뀌었다고 말하자 동생은 옛날 그림을 언제까지 기억하느냐고 했다. 그는 대답 대신 메모지를 다시 바카라에 넣었다.

떠나기 전날 태환과 잠깐 만났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캔 음료를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태환은 봄에 서울에 한번 놀러 가겠다고 했고 송재는 잠잘 자리는 바닥밖에 없다고 했다. 태환은 누가 자고 온다고 했느냐며 학교 구경이나 시켜 달라고 했다. 송재도 아직 학교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하자 둘 다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송재는 가방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등록 서류와 악보, 세면도구가 각각 다른 칸에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의 사진을 넘기다가 회색 건물 사진 앞에서 멈췄다. 이제 그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진을 닫고 알람을 맞췄다.

다음 날 버스 짐칸에는 상자 두 개가 들어갔다. 악기 케이스는 송재가 직접 들고 탔다. 부모는 정류장 밖에서 손을 흔들었고 동생은 학교에 가서 없었다. 송재는 창가에 앉아 안전띠를 맸다. 버스가 움직이자 케이스를 무릎과 좌석 사이에 세웠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천천히 풀었다. 서울에 도착하면 방 열쇠부터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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