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며칠째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재킷을 들고 상가 세탁소에 간다. 소매 끝에 커피가 몇 방울 튀었는데 물수건으로 닦아도 희미한 갈색 자국이 남아 있다. 곧 입을 생각이라 더 미룰 수가 없다.
세탁소 문을 열자 천장 가까이 매달린 행거에 옷들이 빽빽하다. 언제나 신기한 건 세탁소 주인 부부가 커튼처럼 늘어진 세탁물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사람들이 찾는 옷을 잘도 찾아낸다는 것이다. 투명한 비닐 속에 남색 양복,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꽃무늬 원피스가 서로 몸을 바싹 붙이고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흰 셔츠를 다리는 중이다. 다리미가 등을 밀고 지나갈 때마다 납작한 김이 치익 하고 솟는다.
"이거 얼룩 빠질까요?"
아주머니가 내 재킷 소매를 잡아 빛에 비춰본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빠지죠. 언제 입으세요?"
"주말에요."
아주머니가 작은 종이에 날짜를 적어 재킷에 끼운다. 내 옷도 이제 이 세탁소의 번호를 달았으니 말끔해져 나올 일만 남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헬멧을 든 남자가 들어온다. 배달 점퍼 차림이다.
"검은 양복 찾으러 왔는데요."
아주머니가 행거를 밀자 비닐들이 사각사각 부딪히며 반 바퀴를 돈다. 맨 뒤에서 검은 양복 한 벌을 꺼낸다.
"오늘 입으세요?"
"네. 지금이요. “
남자는 비닐을 조금 걷어 양복을 확인한다. 손가락으로 재킷의 깃을 한 번 쓸어보고 다시 비닐을 덮는다. 나는 접수대 앞에서 영수증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쪽으로 들어가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그사이 나는 아주머니와 다른 옷이며 신발 세탁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커튼이 걷히고 남자가 나온다.
조금 전까지 배달 점퍼를 입고 헬멧을 들고 있던 사람인데 검은 양복을 입고 나오니 표정까지 달라 보인다. 그는 시간에 쫓기는지 봉투 하나를 달라고 해 벗어놓은 배달복을 구겨 넣는다. 한 손에는 헬멧이 들려 있다.
“늦었다.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응, 잘 가요.”
서로 안면이 있었나 보다. 남자는 시간을 재확인하며 세탁소 문을 밀고 급하게 사라진다.
나도 영수증을 챙겨 세탁소를 나온다. 상가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 훤하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에서 입간판을 내놓고, 미용실에는 이제 막 손님 한 명이 들어간다.
“어?”
길 건너편에 그가 보인다. 어깨까지 구불거리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와 마주 보며 웃고 있다. 방금 다려 입은 듯 그의 검은 양복이 빳빳하게 서 있다.
여자가 그의 양복 어깨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준다. 남자는 쑥스러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웃는다. 조금 전까지 시간을 확인하며 발을 구르던 사람이 맞나 싶게 느긋한 얼굴이다. 한 손에는 여전히 배달복을 넣은 비닐봉지와 헬멧을 들고 있다.
나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두 사람을 잠깐 바라본다.
아침부터 몇 군데의 주소를 찾아다녔을 남자에게 오늘은 배달복을 입고 보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저 짧은 순간을 위해 세탁소안에서도 남자가 얼마나 서둘렀는지 여자는 알까.
신호가 바뀐다.
길을 건너며 다시 보니 여자는 남자가 들고 있던 봉투를 받아 들고 남자는 헬멧을 바깥손에 들고 그 옆에 선다.
둘은 손을 잡고 나란히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사라진 골목의 식당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