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저절로 훌륭해지는 줄 알았다.
나는 부모님이 기대하셨던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
비교적 평온하고 평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작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많이 받으며 자랐다.
그 기대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믿어 주시고, 잘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늘 “파이팅! 넌 잘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 주신 덕분에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른이 된 나는 누구나 객관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물론 훌륭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많은 것을 이루고 이름을 알린 사람?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사람?
그렇다면 누군가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삶은 또 어떤 삶일까?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의 삶도 좋았다.
그런데도 가끔은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부모님께 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나는 큰아이를 참 힘들게 낳았다.
임신 29주부터 조기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겨우 37주까지 버텨 2.5kg의 아들을 낳았다.
다행히 인큐베이터 신세는 면했지만 출산도 쉽지 않았다. 자궁수축억제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통은 계속되는데 자궁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난산이었다.
출산 후에는 하혈이 심해 쇼크까지 왔다. 여러 팩의 수혈을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절대 임신하면 안 된다. 아들 하나만 잘 키워.”
그럴 만도 했다.
딸이 아이를 낳다가 그렇게 위험한 일을 겪었으니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금쪽같이 귀한 아들이 어느 날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고, 참!
엄마는 다시 임신하면 의절하겠다고까지 하셨다.
그만큼 걱정되셨던 거겠지.
그런데 나는 기어이 둘째를 가졌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딸 역시 37주 만에 태어났고, 병원 신세도 많이 졌다.
그렇게 걱정하시던 엄마는 지금 하나뿐인 손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신다.
그런데 참 감사한 일이 있다.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던 아들은 지금도 동생을 무척 아끼고 챙긴다.
자기가 원해서 엄마가 낳아 준 귀한 동생이라며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동생 역시 오빠를 참 잘 따른다.
함께 옷을 사러 가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응원자가 되어 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감사하다.
그렇게 어렵게 낳은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서로의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되었다니.
내가 아무리 애쓴다고 만들어 줄 수 있는 관계도 아닐 텐데.
두 아이가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바랐던 행복은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참 대단한 분이다.
나는 막내동생과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엄마가 막내를 임신하셨을 때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침저녁으로 병원을 오갔던 기억이다.
그때 엄마를 진료하셨던 의사 선생님은 참 고마운 분이었다. 엄마가 아침에는 입원하고 저녁에는 퇴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엄마와 함께 그 산부인과에 간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께서는 엄마를 기억하고 계셨다.
엄마를 두고 “크레이지(Crazy) 산모”라고 하셨다.
셋째를 가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도 아이를 지키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엄마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엄마가 정작 자신의 딸에게는 둘째를 임신하면 의절하겠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자신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를 지키려 했지만, 사랑하는 딸이 똑같이 위험해지는 일만큼은 막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나!
그렇게 어렵게 낳은 아이들이니 아프지 않고, 힘든 일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엄마는 너희가 그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면 좋겠어.”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남들이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이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어느새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 더 잘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만큼 해준 것도 고마운데.
여기까지 온 것도 대견한데.
그런데도 조금만 더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고...!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하거나 강압적으로 무엇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으로 선택하고, 스스로 걸어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마음과 별개로 부모인 나의 기대까지 완전히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잘해 주는 모습에 감사하며 살고 싶은데도, 자꾸 또 다른 기대가 생기는 마음.
참 간사하기도 하지.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잘될 때도 있었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했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아팠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는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득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어쩌면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조금 더 잘되기를 바라셨을까?
내가 해낸 것에 기뻐하시면서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셨을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부모의 기대가 반드시 아이의 부족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그 기대가 언제나 아이에게 힘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기대가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다.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아이가 바라는 결과를 대신 만들어 줄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곁에서 믿어 주고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 자신에게도 조금 미안해진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비교적 평안하게 살아왔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누군가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닐 텐데.
어쩌면 훌륭한 삶이란 남들이 인정하는 커다란 성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며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그런 삶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기대하셨던 모습대로 내가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어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여전히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앞으로 더 성장하고 싶다.
다만 잘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훌륭한 삶이란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훌륭한 삶이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단, 너는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무엇을 기억하고 싶니?
글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참 많았잖아.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어렵게 낳은 두 아이는 서로를 아끼며 잘 자라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걱정하고 기대하고, 때로는 욕심을 부릴지도 모르지.
그래도 잊지 말자.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내게 주어진 행복을 알아보고 감사하며 살아야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이미 내 곁에 있는 소중한 행복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이해와 감사)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이미 내게 주어진 행복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