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월세방 하나를 얻었다.
8차선 도로가에 있는 오피스텔의 작은 방이었다. 4개나 되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주상복합이라 아래층은 미용실 편의점 베이커리 식당들이 있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건물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일하게 하나뿐인 창을 여니 메타스퀘어 나무 아래로 쉴 새 없이 자동차와 버스들이 움직였다. 빠른 몸놀림으로 소음을 내는 오토바이들도 보였다. 한쪽 벽면을 채우다시피 한 큰 창이 마음에 들었지만 밤이면 불빛이 사그라들지 않고 그대로여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은 누렇게 번진 벽지 자국만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가 있는 작은 주방은 깔끔하긴 해도 오래된 후드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을 해 먹으려면 냄비와 양념통이며 그릇과 식탁도 있어야 했다. 그것뿐인가 썰렁한 방바닥에서 그냥 잘 수는 없었다.
집을 계약하고 당진집에서 옮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담았다. 수건과 냄비처럼 당장 필요한 것부터 입을 옷가지들을 자동차 뒷좌석까지 가득 실었다. 생활필수품은 다시 구입하기로 하고 무거운 가구는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우리는 새 살림을 갖추기 위해 근처 마트와 백화점을 오갔다.
실용적인 것에 눈길이 가는 나와 달리, 남편은 식탁부터 그릇까지 본인이 고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신혼 때부터 쓰던 식기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이제 음식은 근사한 그릇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그동안 썼던 그릇들이 질렸다는 건가. 여태 그런 생각을 감추고 살았다는 게 웃기지만 나도 마찬가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침대와 매트리스 그리고 식기류만큼은 제대로 된 걸 쓰겠다며 은근히 욕심을 냈다.
수입 그릇점에서 남편이 골라 온 접시와 포크, 커피잔은 내가 봐도 근사했다. 무덤덤한 줄만 알았던 사람에게서 뜻밖의 섬세한 안목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의욕을 보이는 사람에게 맡기길 잘했다 싶었다.
그가 고르겠다고 나서기에 무턱대고 킹사이즈 침대를 주문했다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도저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크기였다. 결국 퀸사이즈로 바꾸었다가 바카라상과 작은 옷장에 밀려 최종적으로 더블 사이즈로 줄여 들여놓았다. 그 옆에 바카라상 하나를 바짝 붙이고 TV대로 쓸 작은 옷장을 놓으니 방 안이 가구들로 꽉 채워졌다.
곧 생각지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그동안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짜리 집에서 살며 익숙해진 동선이 있었다. 각자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런 공간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주방이 따로 있지만 직사각형 방 한 칸짜리 원룸은 너무 좁았다.
눈만 뜨면 서로 마주쳐야 하는 좁은 공간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 좁디좁은 방이 나를 비로소 대전으로 밀어냈다. 자연스럽게 신발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원룸의 답답함은 싹 사라졌다. 작은 공원은 온천물로 족욕하는 사람들이 앉아있고 잘 꾸며진 인도길은 천변까지 이어져있었다. 낯선 거리에 끌려 붐비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밤만 되면 한적해 발걸음이 빨랐는데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리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면,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났고 그 사이에 섞여 걷는 게 좋았다.
우리는 집 안에 머무는 대신 바깥으로 나가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침이면 운동화를 신고 유성천과 갑천변으로 나갔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늘 바지런히 움직였는데, 이제는 강물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조깅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볍게 앞질러 멀어져 갔다. 건강미 넘치는 뒷모습을 보며 나도 힘껏 앞뒤로 팔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멀어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런 시간이 내게는 선물 같았다.
인근 대학 평생교육원에 어반스케치 수업을 신청했다. 대학 캠퍼스만 걸어도, 청춘들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괜히 설렜다. 그 생동감으로 가득한 강의실에서 앉았다 오는데도 며칠 동안이나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첫날은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스케치북에 주구장창 선만 그었다. 어반스케치는 원근감을 살려야 한다고 배웠기에 도시 건물을 배치하고 그 옆에 나무를 그렸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렸다. 아픈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슬그머니 주변을 힐끗거렸다. 조용히 펜을 놀리는 수강생들의 모습이 그제야 들어왔다.
옷차림이며 말투까지 어찌나 세련되어 보이던지. 또 그림은 어찌나 잘 그리는지.
괜히 기가 죽었다.
다른 이들의 그림을 보고 내 것을 보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의 문장 하나, 그림 하나에도 빨간 펜부터 들었다. 흥미가 있든 없든 잘잘못을 가려내는 게 먼저였다. 모르면서 아는 척 고개를 돌리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강사가 스케치북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다. 어깨너머로 스케치북을 슬쩍 보고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이 왜 그렇게 고마웠는지. 칭찬 한마디를 들은 날은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서툴면 서툰 대로 펜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그림에 빠져있었다.
물론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일상이 늘 매끄럽고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진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아파트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먹어야 하는 식물, 글쓰기 모임이 남아 있었고, 논산에는 나를 찾는 엄마가 계셨다. 주간보호센터를 오가는 엄마는 점점 더 자주 딸을 찾았다.
고속도로 휴게소며 주변 풍경이 눈에 익을 만큼 당진과 대전, 논산을 쉼 없이 오갔다. 도로에 뿌린 시간이며 기름값도 만만치 않았다. 마음은 대전에 온전히 머물고 싶었지만, 몸은 여러 곳을 감당하느라 분주했다.
그럼에도 대전에 돌아오면 나는 매일 산바카라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 마트에 들러 생필품이며 시원한 맥주를 들고 나오고, 어떤 날은 동네 서점에 들러 바카라 한 권을 사 들고 나왔다. 단골 쌀국숫집에 들어가 따뜻한 국물로 속을 풀고 돌아오는 평범한 하루. 그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배우는 그림은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포기하거나 핑계를 대며 그만두지는 않았다.
다음 수업 날이면 나는 그리다 만 스케치북을 챙겼다. 잘 그릴 자신은 없었지만 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반석천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