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 것인가

by은진

"이제 뭐 하실 거예요?"

퇴직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 고생 많았다며 이젠 쉬엄쉬엄 지내라며 물어보는 이도 있고, 때가 되어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격식 차린 인사처럼 묻는 이도 있었다.


"실컷 놀아야죠."

그렇게 말하면 정말 놀기만 할 거냐고 묻다가, 무슨 계획이든 있을 것 아니냐며 궁금해했다.


늦잠도 자고 여행도 다니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하나씩 해볼 거라고 답했다. 퇴직 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낼지 나름대로 그려둔 그림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보아온 은퇴 선배들은 대부분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거나, 예전 동료들과 취미 모임을 다니곤 했다. 어떤 분들은 일이 좋아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기간제로 재취업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 익숙한 수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다들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웃긴 말이지만, 소처럼 일했으니 이젠 '잘 놀고' 싶었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 구체적인 답은 없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쉬어가는 일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남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오래 살아 고향처럼 익숙해진 동네를 떠나,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살던 곳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목마름이 있었다. 평생 지역 교육청에 매인 공무원이었기에 내 의지대로 거주지를 옮겨본 적이 없었다.


이십 대 초반 첫 발령지는 서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고, 그 후로도 몇 년에 한 번씩 바람을 따라 가까운 지역의 소규모 학교들을 전전해야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현실의 여건은 매번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익숙한 지역에 눌러앉아 사는 길을 택했고, 어쩌다 떠나는 서울 나들이나 해외여행으로 새로운 세상을 맛보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무엇보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가 점점 좁게 느껴졌다. 18평 남짓한 곳에서 온종일 사람 사이에 매여 한눈팔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무려 30년이면 베테랑 소리를 들을 법도 한데, 매년 3월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나는 다시 초보가 되었다.


퇴직 후에는 그 틀을 벗어나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선택한 곳에서, 내가 궁금한 것들을 찾아다니며 살아보고 싶었다. 낯선 동네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워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그냥 앉아 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무작정 뛰어들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배짱은 줄고, 그 자리를 현실적인 계산들이 대신했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도시들의 이름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전주? 통영? 대전? 진주?



어디가 좋을지는 직접 살아봐야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집을 사고 몇 년 뒤의 미래까지 계획을 세우기보다, 일단 몇 년 살아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모았다. 마음에 들면 더 살고, 아니면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너무 멀지 않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터전과 오가기 부담 없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는 곳.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아이들과 왕래하기에도 편한 위치여야 했다. 하나씩 따져보니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조건이 하나둘 붙을수록 후보지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의 도시로 좁혀졌다.

대전이었다.

아주 낯선 도시는 아니었다. 가끔 애경사 때문에 들르던 곳이고, 아는 사람들이 몇몇 살고 있었으며, 아들도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새로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 가까이에 가득한 도시였다.

'우선 2년만 살아보자.'

2년 살아보고 좋으면 조금 더 머물고, 아니면 또 다른 도시를 찾아보면 되었다. 평생 한 곳에 묶여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살 곳을 내가 골라도 되지 않을까. 그 사실만으로도 설레어 이미 손가락으로 부동산 앱을 홀린 듯 뒤적이고 있었다.

그동안은 정해진 발령지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이번만큼은 우리가 머물 곳을 스스로 정해 보기로 했다.

대전에서의 2년 살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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