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아니죠?

by은진


선 하나 긋는 것조차 쩔쩔매던 날들을 지나, 건물과 나무에 원근감을 살려 제법 도시다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다. 까다롭고, 어렵고, 막막했다. 감히 써볼 생각조차 못 하던 영역이었다. 그랬던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시작은 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바카라 만들기'였다.

'내가 무슨 바카라을 쓴다고.'

도망칠 핑계를 찾는데, 하필 1차 합격 문자가 그때 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쓰고 보면 유치해 보였고, 근사하게 쓰려할수록 글이 꼬여 내가 아닌 괜찮은 사람만 있었다. 지우고 다듬기를 수없이 반복해도 강사님의 빨간 줄은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몇 달을 매달린 끝에 투박하지만 세상에 단 한 권뿐인 내 바카라이 나왔다. 남들이 볼까 봐 괜히 부끄러워 가방에 슬그머니 넣어두었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내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아 꺼내 읽고, 또 읽었다.


바카라방 카페, 지상의양식


대전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온라인카지노라는 끈은 놓지 않았다. 그러다 글을 쓰며,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남동생들이 있으니 대학은 포기해라." 그 한마디에 나는 오래도록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아버지는 달갑지 않아 하셨다. 빨리 졸업해서 집을 떠나고만 싶었다.

장례식 때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 차올랐다.

그곳에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한 사람이 보였다. 온라인 게임에서 무슨 일을 겪고 밀려났는지, 시골로 들어와 여름이면 무거운 복숭아 상자를 옮기고, 자식들 학비를 마련하려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던 남자였다. 농사일에는 영 서툴렀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여린 사람이었다.


그 무거운 어깨에 기대어 내가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글을 다듬는 내내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계속 흘렀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마디라도 해볼걸 그랬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썼다.

평소처럼 그날도 낯선 도시에 적응해 가며 찾아가던 단골 미용실로 향했다. 웬일인지 원장의 얼굴이 어둡고 그늘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요즘 들어 갑자기 예약이 줄어 가게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대로 문을 닫으면 안 되는데. 낯선 이 도시에서 이만한 공간도, 이런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아쉬웠다.

머리를 매만지는 그녀의 지친 손길을 보며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저… 사실 원장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원장은 거울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손님… 혹시 악플은 아니죠?”

“무슨 말씀을요.”

뜻밖의 당황한 표정과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나는 온라인카지노에 올려두었던 글을 가만히 화면에 띄워 보여주었다.

낯선 대전에서 처음 이곳을 찾았던 날의 기억, 내 취향을 조용히 기억해 주던 세심함, 머리뿐만 아니라 외로웠던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다듬어 주던 그녀의 손길을 담은 글이었다.

원장은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읽어 내려갔다. 글을 읽는 동안 시무룩했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이내 환하게 배시시 웃었다.

“손님, 감사해요. 정말 선물 받은 기분이에요. 우리 애들한테 자랑해도 되죠?”



그녀는 식구들에게 글 링크를 보내느라 바빠 보였다. 나는 머리를 감고 나와 거울 앞 의자에 앉아, 화면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리라는 그녀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거울 앞에 걸린 드라이기를 직접 들어 젖은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원장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다가와 드라이기를 슬며시 가져가며 말했다.


"아유, 손님도 참…. 저 이런 거 처음 받아봐요."

손이 하나 더 필요할 뿐인 일이었는데, 그녀는 꼭 큰 걸 받은 사람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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