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은 없었다

by은진

노트북 앞에서 풀리지 않는 글을 붙잡고 있었다. 모니터 속의 글자들이 빽빽하다 못해 모래알갱이처럼 보였다. 뚫어지게 들여다봐도 그 말이 그 말이었다. 화장대에 올려둔 휴대폰에서 진동소리가 울렸다. 예상대로 엄마였다.

“우리 논 있잖아. 가져간 그놈이 또 왔다 갔어.” 어제와 비슷한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도 가까이 사는 남동생에게 확인을 부탁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했다.

“누나, 내가 가봤는데 이상 없어. 진짜 아무 일도 없더라고. 이제 엄마 전화 올 때마다 나한테 확인하지 마.”

그 말투에서, 도둑보다 내 전화가 더 귀찮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에 비해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그놈을 들먹이며 화내던 목소리는 이내 속이 상해 죽겠다는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양은 냄비를 가져가고, 이불도 뒤졌나 봐. 이제 집까지 넘보는 나쁜 놈이야.”

도둑이 들어왔다는 집은 이미 엄마가 떠난 곳이었다. 시내 아파트로 옮겨 간 후로는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혼자 갈 수 없는 거리다.

“엄마, 혹시 꿈꾼 거 아니야?”

“아니, 그놈이 또 가져갔다니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젯밤 그 집을 다녀온 사람처럼 말하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더 할까.



그 무렵 나는 퇴직 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첫해를 보내고 있었다. 삼십 년 넘게 미뤄 둔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쓰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으며, 하는 일마다 즐거웠다. 나만을 위해 하루를 보내는 것이란 게 이런 맛이구나 싶었다.

그런 내 시간 속으로 엄마의 전화가 불쑥불쑥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딸이 젤 편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았고, 털어놓고 싶은 말이 생기면 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도 옛날 사람이었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아들이었다. 아들이 제일 든든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든든한 아들은, 희한하게도 늘 바빴다.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한 빈자리는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먼저 달려갔다. 딸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집은 주위에 민가가 없는 외딴집이다. 혼자가 되신 후, 엄마는 전보다 더 씩씩하고 더 억척스럽게 변했다. 아버지가 들었다면 서운하셨을 말이지만, 날개를 단 것처럼 후련하다고 했다.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던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반가워했다. 집으로 불러들이고, 방으로 들이고, 냉장고를 뒤져 밥을 하고 먹을 것을 내놓았다. 내가 간다는 말만 들어도 전에 없이 대문 밖까지 나와 기다렸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시장에도 나가지 않고, 마을 회관에 놀러 가는 일조차 귀찮아했다. 그리고 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밤이면 걸려오는 전화도 처음에는 그저 외로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때부터 엄마에게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병원에 모시고 가는 길도,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병원이나 주간보호센터라는 말만 나와도 화부터 냈다.

“뭐 하러 병원엘 가! 노치원이라고 허더라. 싫다야.”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겨우 모시고 간 병원에서 의사는 내게 몇 마디를 건넸다. 의사의 표정을 보며 그제야 단순한 건망증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이 떠난 장독대

혼자 외딴집에 있는 밤이 더 이상 안심되지 않았다. 엄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와 가까운 시내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했다. 처음에는 “내 집 놔두고 뭐 하러 이사를 가?” 하며 못마땅해하시더니, 주간보호센터를 오가며 만나는 이웃들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처음의 못마땅한 표정도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 날은 아파트 창문 너머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를 한참 듣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

“참 듣기 좋다.”

적막한 시골집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엄마가 그동안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공간이 바뀌어도 도둑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엄마가 되풀이하는 도둑 이야기는 오래전 친척에게 논과 밭을 빼앗겼던 일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일은 엄마에게 상처로 남았고, 아버지를 더 그립게 했다. 이제는 그 기억이 현실의 일처럼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그러실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다가도, 실체 없는 도둑이 목소리를 타고 내게까지 달려드는 느낌일 때가 있었다. 짜증이 불쑥 올라왔다.

“엄마, 아무도 안 들어왔어요! 엄마 아들이 다녀왔다니까요.”

“아니라니까!”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엄마, 왜 자꾸 이러세요! 제발 그만 좀, 그만 좀 하시라고요!”

“딸도 필요 없다”는 원망과 거친 숨소리가 이어지더니 뚝 끊겼다. 휴대폰을 든 내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도둑보다 더 두려웠다.



다음 날, 마음이 무거워 엄마 아파트를 찾았다. 그리고 시골집부터 가자고 했다.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장 부엌으로 가서 냄비를 찾고 안방 이불장을 열어 보였다. 냄비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이불장 속도 하나하나 들춰 보았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냄비도 그대로 있고, 이불도 그대로 있잖아요.”

엄마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냄비와 이불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던 엄마가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멍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눈이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후에야 내가 한 짓을 알았다. 엄마를 안심시키려던 게 아니라,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손이 멈췄다. 지긋이 나를 보는 그 눈빛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즘도 생각나면 엄마는 또 내게 도둑 이야기를 하신다. 하지만 나는 이제 냄비와 이불을 찾으러 가지 않는다.

“아주 나쁜 놈이네.”

“그렇다니까!”

“우리 엄마, 많이 속상하셨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