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바꾸는 크기

by춘환

자정.

유진은 또 내일의 기억을 기다렸다.

어제부터.

이 시간이 조금 무서워졌다.

준호의 자동차 사고를 막은 뒤.

유진은 체육대회 기억 하나를 통째로 잃었다.

그날의 사진은 있는데.

자기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유진은 예전처럼 편하게 눈을 감지 못했다.

그래도.

기억은 왔다.

다음 날 아침.

준호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조회가 끝나고.

교무실로 내려온 유진에게 전화가 왔다.

준호 아버지였다.

“선생님.”

목소리가 다급했다.

“준호 학교 안 갔습니까?”

“안 왔습니다.”

“집에도 없습니다.”

유진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부터요?”

“아침에 나간 줄 알았는데… 방금 보니까 휴대전화도 꺼져 있고.”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넘어갔다.

시간이 꽤 흘렀다.

오후였다.

다시 준호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훨씬 지쳐 있었다.

“찾았습니다.”

“어디 있었습니까?”

아버지가 장소를 말했다.

학교와 조금 떨어진 오래된 공원 근처.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정자 뒤편이었다.

준호는 거기서 혼자 앉아 있었다.

다친 곳도 없었다.

누군가와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집에도.

학교에도.

가고 싶지 않아서.

거기 있었던 것뿐이었다.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현재의 유진이 눈을 떴다.

이번에는 자동차 사고 때처럼 심장이 크게 뛰지는 않았다.

준호가 다치지는 않는다.

범죄도 없다.

몇 시간 뒤면 결국 찾는다.

그런데.

굳이 몇 시간을 헤매게 둘 필요는 없었다.

유진은 잠깐 고민했다.

이것도 바꾸면.

또 기억이 사라질까.

체육대회처럼.

유진은 한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한번 확인해보자.

다음 날.

준호는 결석했다.

조회가 끝나자마자.

유진은 휴대전화를 봤다.

아직 아버지에게 연락은 없었다.

미래 기억대로라면.

조금 뒤 전화가 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십여 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준호 아버지.

유진은 잠깐 화면을 바라보다 받았다.

“네, 아버님.”

“선생님.”

예상했던 목소리였다.

“준호 오늘 학교 갔습니까?”

“안 왔습니다.”

“집에도 없습니다.”

유진은 이미 다음 말을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꺼져 있고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네.”

아버지가 의아하게 물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유진은 바로 둘러댔다.

“준호가 전에 집 나간 적도 있으니까요.”

“아…”

유진은 곧바로 말했다.

“아버님.”

“네.”

“공원 아십니까?”

“네?”

“거기 한번 가보세요.”

“왜요?”

“그냥.”

유진은 말하다가 스스로 조금 웃었다.

요즘 ‘그냥’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준호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납득하지 못했다.

“왜 거기요?”

“전에 준호랑 이야기하다가.”

거짓말은 최소한으로 했다.

“혼자 있고 싶으면 그런 데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화기 너머에서 망설임.

그러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번에는 목소리가 완전히 달랐다.

“찾았습니다.”

유진은 이미 알면서도 물었다.

“거기 있었습니까?”

“네.”

“괜찮고요?”

“네.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근데 선생님.”

“네.”

“진짜 어떻게 아셨어요?”

유진은 웃었다.

“담임이니까요.”

“담임이면 그런 것까지 압니까?”

“가끔요.”

준호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유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미래가 바뀌었다.

원래 몇 시간을 헤매야 했던 준호를.

삼십 분도 안 돼 찾았다.

그 정도였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준호 인생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몇 시간짜리 불안이 사라졌다.

유진은 그날 하루 종일.

자기 기억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머릿속으로만.

민재.

기억난다.

민재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왔던 날.

민재가 처음 제대로 웃었던 장면.

기억났다.

김하늘.

제주도에서 학생 한 명을 놓칠 뻔했다가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던 날.

기억났다.

비행기.

학생들이 신발을 벗고 낄낄거리던 장면.

기억났다.

도현.

전화기 너머로.

선생님, 저 포기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던 목소리.

기억났다.

준호.

아버지가 욕을 안 했다고.

교무실에 일찍 찾아와 말하던 아침.

기억났다.

유진은 조금 안도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몰랐다.

유진은 점심시간에 박성호를 붙잡았다.

“선생님.”

“왜.”

“우리 제주도 갔을 때요.”

박성호가 밥을 먹다가 봤다.

“갑자기?”

“비행기에서 애들 신발 벗었던 거 기억나요?”

박성호는 한동안 유진을 봤다.

“너 갑자기 왜 무서운 질문을 해.”

“기억나죠?”

“당연하지.”

박성호가 웃었다.

“너 그때 기압 때문에 신발 벗어야 된다고 헛소리했다가 승무원한테 정정당했잖아.”

유진은 바로 말했다.

“맞아요.”

“근데 왜 좋아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 요즘 이상해.”

“원래 이상했어요.”

“그건 맞고.”

유진은 웃었다.

기억났다.

정확하게.

오후에는 김하늘에게 물었다.

“선생님.”

“네?”

“제주도에서 화장실 간 학생 두고 버스 탈 뻔했던 거 기억나요?”

하늘 얼굴이 바로 빨개졌다.

“왜 그걸 지금 말해요?”

유진이 웃었다.

“기억나죠?”

“잊고 싶거든요?”

“전 기억나요.”

“그걸 왜 자랑해요?”

유진은 또 안도했다.

이것도 있었다.

퇴근 전.

유진은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오래된 사진들을 봤다.

학생들과 찍은 사진.

축제.

여행.

교실.

운동장.

대부분.

사진을 보면 그날이 떠올랐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웃었는지.

어떤 학생이 사고를 쳤는지.

자기가 왜 화를 냈는지.

기억났다.

그런데.

딱 하나.

체육대회.

그 사진만.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 속 사람은 자긴데.

기억 속 사람은 아니었다.

유진은 한참 화면을 봤다.

이상했다.

이번에는 미래를 바꿨다.

분명히.

준호가 몇 시간을 떠돌 미래를.

삼십 분 만에 찾는 미래로 바꿨다.

그런데.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유진은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적었다.

미래 확인만 함 이상 없음.

잠깐 생각.

사소한 미래 변경 이상 없음?

그리고.

큰 미래 변경 기억 손실?

손가락이 멈췄다.

자동차 사고.

준호가 차를 가져간다.

사고가 난다.

병원.

경찰.

범죄 기록.

그 뒤의 삶.

그 모든 게.

유진이 개입하면서 사라졌다.

그 대가로.

체육대회 하루 하나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준호를 몇 시간 빨리 찾았다.

결과적으로 준호 인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유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규칙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래를 보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미래를 조금 바꾸는 것도.

문제는.

얼마나 큰 미래를 없애느냐.

유진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졌다.

유진은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앞으로.

언젠가 또 보게 될 것이다.

학생이 다치는 미래.

학교를 떠나는 미래.

범죄를 저지르는 미래.

혹은.

죽는 미래.

그걸 봤을 때.

유진은 선택해야 했다.

바꿀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

예전 같았으면.

고민하지 않았다.

나쁜 미래를 봤으면.

막으면 됐다.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하나를 막으면.

무엇을 잃을지 모른다.

체육대회 하루가 사라졌다.

다음에는.

무엇일까.

민재가 웃었던 날?

도현이 자신에게 전화했던 날?

준호가 처음 마음을 열었던 순간?

김하늘과 교사들이 웃었던 기억?

박성호와 몇 년 동안 같이 학교에서 버틴 시간?

유진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체육대회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속 학생들은 행복해 보였다.

자기도.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자기는.

그 행복을 느껴본 기억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기 인생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간 것 같았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학생 얼굴은 아는데.

왜 그 아이를 좋아했는지 모르게 될 수도 있었다.

졸업생이 찾아와.

“선생님, 저 기억나요?”

하고 묻는데.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사진은 수백 장 남는데.

정작.

그 안에 있는 자기만.

그날을 모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반대쪽도 있었다.

유진은 준호를 떠올렸다.

자동차 사고 미래를.

자기가 알고도.

막지 않았다면.

준호는 병원에 갔을 것이다.

누군가 다쳤을 수도 있다.

경찰이 왔을 것이다.

그 뒤 준호 인생도.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유진은.

그걸 알고도.

체육대회 기억을 지키기 위해.

그냥 둘 수 있었을까.

대답은.

쉽지 않았다.

자정.

내일의 기억이 다시 들어왔다.

평범한 하루였다.

수업.

교무실.

급식.

학생들.

특별한 사고는 없었다.

유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이상하게 안도했다.

내일은.

선택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그 안도감이 오래가진 않았다.

유진은 알았다.

언젠가는.

또 온다.

정말 바꿔야 하는 미래가.

그때.

유진은 무엇을 고를까.

현재의 제자를 지키고.

과거의 제자를 잃을까.

아니면.

자기 기억을 지키기 위해.

알고 있는 비극을 흘려보낼까.

둘 다.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은 아직 답을 몰랐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제 자정에 찾아오는 기억은.

선물이 아니었다.

때로는.

값을 요구하는 예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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