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컸다.

by춘환


황동중학교에는 이상할 만큼 순한 아이들이 많았다.


말을 안 듣는 아이는 있었다.


수업 시간에 졸고.


준비물을 안 가져오고.


친구랑 장난치다가 교무실에 불려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혼나면 고개를 숙였고.


친구가 울면 슬쩍 사과했고.


선생님이 진짜 화난 것 같으면 눈치를 봤다.


유진은 가끔 생각했다.


작은 학교라 그런가.


아이들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그해 1학년 신입생 중 한 명은 첫날부터 눈에 띄었다.


박준호.





입학 서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조금 특이했다.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


아버지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부모의 나이 차가 꽤 컸다.


유진은 거기까지 보고 서류를 넘겼다.


가정환경이 어떻든.


학생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준호를 보자.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눈이 갔다.


“쟤가 1학년이야?”


박성호가 먼저 물었다.


유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키도 컸고.


어깨도 넓었다.


교복을 입혀놓으니 중학교 1학년이라기보다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옆에 선 같은 반 아이들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유진이 말했다.


“생년월일 맞겠죠?”


박성호가 웃었다.


“설마 입학 나이를 속였겠냐.”


“아니, 너무 큰데.”


그때 준호가 지나가다가 둘을 봤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까지 굵었다.


박성호가 준호가 지나간 뒤 말했다.


“나보다 세 보이는데.”


“선생님은 원래 좀 약해 보여요.”


“왜 갑자기 나를.”





준호는 생긴 것과 달리 생각보다 잘 웃었다.


친구들과도 금방 어울렸다.


장난도 많았다.


조금 거친 말을 쓸 때도 있었지만.


큰 사고를 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가정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주제는 가족 갈등이었다.


유진이 물었다.


“가족끼리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하지?”


아이들이 하나씩 말했다.


“대화해요.”


“양보해요.”


“그냥 엄마 말 들어요.”


교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유진이 말했다.


“그게 제일 빠르긴 하지.”


그때 준호가 손도 들지 않고 말했다.


“저희 집은 그냥 싸우는데요.”


아이들이 웃었다.


유진도 웃으며 물었다.


“뭐 때문에 그렇게 싸워.”


준호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빠가 주식으로 돈 많이 날려서요.”


교실이 터졌다.


“야!”


“진짜?”


준호도 웃었다.


“진짜야.”


유진이 말했다.


“집안 경제 사정을 그렇게 다 공개해도 돼?”


“상관없어요.”


“엄마가 알면 혼나겠다.”


준호가 피식 웃었다.


“엄마는 아빠 욕 더 많이 하는데요.”


또 웃음.


유진도 그때는 그냥 웃었다.


그저 솔직한 아이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준호는.


웃으면서 말하는 게 습관인 아이였다.


웃을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웃으면서 말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시간이 흘렀다.


준호는 2학년이 됐다.


그리고.


유진이 그 반 담임이 됐다.


“야.”


첫날 유진이 교실에 들어오자 준호가 웃었다.


“왜.”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에요?”


“싫어?”


“아뇨.”


“표정은 왜 그래.”


“망했다는 표정.”


“나가.”


아이들이 웃었다.


준호도 제일 크게 웃었다.


유진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 아이를 그냥 조금 시끄럽고.


조금 크고.


조금 입이 거친 학생 정도로 생각했다.





문제는 어느 날 점심시간에 생겼다.


아이 둘이 교무실 앞에서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왜.”


“준호 얘기 해도 돼요?”


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얘기.”


둘이 서로 눈치를 봤다.


한 명이 말했다.


“걔 아빠한테 맨날 맞는대요.”


유진의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


“뭐?”


아이들은 유진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아니, 준호가 그랬어요.”


“언제.”


“그냥 전에.”


“어떻게 맞는다고 했는데.”


“그건 모르겠고.”


다른 아이가 끼어들었다.


“아빠가 욕도 엄청 한대요.”


“준호한테?”


“네.”


유진은 웃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장난치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그거 준호가 직접 말했어?”


“네.”


“너희가 본 건 아니고?”


“네.”


“알았어.”


유진이 말했다.


“이 얘기는 너희끼리 더 퍼뜨리지 마.”


“네.”


아이들은 돌아갔다.


유진은 한동안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동학대.


그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교사는 신고의무자였다.


학생이 맞는다는 말을 들었다면.


‘집안일이니까’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들은 말만으로.


세부 상황은 아무것도 몰랐다.


먼저 준호에게 확인해야 했다.


유진은 준호를 불렀다.





방과 후.


준호가 작은 상담 공간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왜요?”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유진은 맞은편을 가리켰다.


“앉아.”


준호가 앉았다.


“나 사고 안 쳤는데.”


“알아.”


“그럼요?”


유진은 바로 물었다.


“준호야.”


“네.”


“아빠한테 맞은 적 있어?”


준호의 웃음이 사라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누가 그래요?”


“그건 중요하지 않고.”


“애들이 말했죠?”


“그것도 중요하지 않아.”


준호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별거 아닌데.”


유진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졌다.


“별거 아닌지는 선생님이 같이 확인해야 돼.”


준호 표정이 굳었다.


“신고하려고요?”


유진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하지 마세요.”


바로 나왔다.


“왜.”


“싫어요.”


“준호야.”


“진짜 지금은 아무 일 없어요.”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작년이에요.”


유진은 말없이 기다렸다.


준호가 말했다.


“작년에 아빠랑 엄마랑 많이 싸웠어요.”


“응.”


“아빠가 주식으로 돈 날리고.”


“응.”


“술 마시고 들어오고.”


준호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저도 말대꾸했고.”


유진이 끊었다.


“네가 말대꾸한 거하고 맞은 건 별개야.”


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맞았어?”


준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안 그래요.”


“언제부터.”


“한참 됐어요.”


“욕은?”


준호가 조금 웃었다.


이번에는 씁쓸한 웃음이었다.


“욕은 그냥 해요.”


유진은 웃지 않았다.





준호가 유진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선생님.”


“응.”


“진짜 신고하지 마세요.”


유진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약속은 못 해.”


준호 얼굴이 굳었다.


“왜요?”


“선생님은 네가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지금 안 맞는다니까요.”


“그 말도 들었어.”


“그럼 됐잖아요.”


“안 됐어.”


준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잡혀가면요?”


유진이 멈췄다.


준호가 계속했다.


“엄마는요?”


“…….”


“엄마 한국말도 완전 잘하는 거 아니고.”


“…….”


“돈은 누가 벌어요?”


유진은 준호를 한동안 봤다.


아까까지는.


덩치 큰 중학생이었다.


교실에서 제일 크고.


친구들이 기대면 밀리지도 않는 아이.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은.


아버지가 잡혀가면.


엄마는 어떻게 살지.


집은 어떻게 될지.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본인이 맞았다는 이야기보다.


그게 먼저였다.





“준호야.”


“네.”


“너 아빠 싫어?”


준호가 조금 당황했다.


“모르겠어요.”


“엄마는?”


“좋아요.”


“아빠는.”


한참.


“좋을 때도 있어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


준호가 유진을 봤다.


“맞았으면 아빠 싫어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유진은 바로 말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준호는 말이 없었다.


“좋아해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


“싫어해도 가족일 수 있고.”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유진은 혼자 결론내리지 않았다.


관리자와 상담 담당 교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준호에게서 들은 내용도.


현재 신체적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진술은 없다는 점도.


가정 내 욕설과 갈등이 여전히 있다는 점도.


준호가 신고나 외부 개입에 강한 두려움을 보인다는 점도.


아이의 말만 듣고 덮을 수도 없었고.


반대로 아이의 의사를 무시한 채 유진 혼자 모든 결론을 정할 수도 없었다.


필요한 보호 절차를 확인하고.


준호의 현재 안전 상태를 계속 살피기로 했다.


유진은 준호에게도 그걸 그대로 말했다.


“선생님이 네 말 아무한테나 하고 다니는 건 아니야.”


“…….”


“근데 너 안전한지는 계속 확인할 거야.”


준호가 한숨을 쉬었다.


“귀찮게 하겠네요.”


“엄청.”


준호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알겠어요.”





그날 이후.


유진은 준호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급식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준호는 여전히 잘 웃었다.


친구들이 장난치면 같이 장난쳤고.


체육시간에는 누구보다 크게 뛰었다.


수업시간에는 졸기도 했다.


유진에게 혼나면.


“죄송합니다.”


하면서 웃었다.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유진은 이제 전과 다르게 보였다.





어느 날.


준호가 바카라상에 엎드려 있었다.


유진이 지나가며 등을 툭 쳤다.


“자냐?”


“아니요.”


“그럼 왜 엎드려.”


“피곤해서요.”


“어제 몇 시에 잤어.”


“두 시.”


“뭐 했는데.”


준호가 잠깐 머뭇거렸다.


“부모님 싸워서요.”


유진의 손이 멈췄다.


준호는 금방 웃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예전 같았으면.


유진도 그냥 지나갔을지 몰랐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준호야.”


“네.”


“너 맨날 그 말 한다.”


“뭘요.”


“괜찮다고.”


준호가 웃었다.


“괜찮으니까요.”


유진은 잠깐 그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알았어.”


지금 당장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근데 진짜 안 괜찮은 날에는.”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다고 하지 마.”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례가 끝났다.


아이들이 우르르 나갔다.


준호도 가방을 들었다.


“선생님.”


“왜.”


“저 진짜 괜찮아요.”


유진이 어이없는 얼굴로 봤다.


“또 하네.”


준호가 웃었다.


“진짜라니까.”


“알았으니까 집에 가.”


“네.”


준호가 교실 문을 나갔다.


그러다 다시 돌아봤다.


“선생님.”


“또 왜.”


“그날.”


잠깐.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말하고 바로 나가버렸다.


유진은 빈 문을 한동안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눈에 띄는 아이였다.


또래보다 큰 체격.


굵은 목소리.


거친 말투.


집안 이야기도 웃으면서 해버리는 아이.


그런데 알고 보니.


덩치만 컸다.


아빠가 잡혀가면 엄마는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고.


부모가 싸우면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자기가 맞았던 이야기보다.


가족이 깨지는 걸 더 무서워하는.


열다섯 살이었다.


유진은 그 아이가.


조금씩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쌍해서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유진은 아직 몰랐다.


준호가 앞으로.


자신이 가장 많이 신경 쓰게 될 학생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