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바꾼 대가

by춘환


자정.


유진은 익숙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일의 기억이 들어왔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준호 아버지였다.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숨이 가빴고.


말이 자꾸 끊겼다.


“선생님.”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버님.”


“준호가 사고를 쳤습니다.”


유진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사고요?”


잠깐.


전화기 너머에서 긴 숨이 들렸다.


“차를…”


아버지가 말을 삼켰다.


“차를 가져갔습니다.”


“준호가요?”


“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지는 한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 조금씩.


경위가 이어졌다.


어젯밤.


준호와 아버지가 크게 싸웠다.


처음은 별것 아니었다.


늦게 들어온 것.


휴대전화.


말투.


그러다 아버지가 욕을 했다.


준호도 참지 않았다.


서로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준호가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말했다.


“걔가 평소 알고 지내던 형들이 있는데…”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다가.


차량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일이 벌어졌다.


운전 경험도 없었다.


결국 사고가 났다.


“준호는요?”


유진이 바로 물었다.


“다쳤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많이요?”


“병원입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


잠깐.


“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현재의 유진이 눈을 떴다.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두고 오거나.


버스를 놓치는 정도도 아니었다.


준호가 다친다.


다른 사람까지 다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고 뒤에는.


절도.


무면허 운전.


경찰.


학교.


가정.


준호 인생 전체가 달라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무조건 바꿔야 했다.





다음 날.


준호는 평소처럼 학교에 왔다.


유진은 아침 조회가 끝난 뒤 준호를 불렀다.


“야.”


“왜요.”


“잠깐 와.”


준호가 경계하는 얼굴로 따라왔다.


“저 뭐 했어요?”


“아직은.”


“아직은이 뭐예요.”


유진은 준호를 작은 상담 공간에 앉혔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준호가 먼저 물었다.


“왜 그래요.”


유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준호야.”


“네.”


“집에서 아빠랑 싸우면.”


준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맨날 싸우는데요.”


“아니.”


유진이 말했다.


“진짜 크게.”


“…….”


“열받아서 집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준호는 유진을 빤히 봤다.


“왜요.”


“그럴 때.”


잠깐.


유진은 미래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알고 지내던 형들.


“형들 찾지 마.”


준호 표정이 멈췄다.


“무슨 형들이요?”


유진은 실수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너무 정확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냥.”


“선생님 또 그냥이네.”


“너도 맨날 그냥 하잖아.”


준호가 웃지 않았다.


유진은 계속했다.


“친구든.”


“…….”


“형이든.”


“…….”


“화났다고 아무 데나 가지 마.”


준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럼 어디 가요.”


유진은 바로 말했다.


“나 찾아.”


준호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선생님을요?”


“응.”


“밤에도?”


“응.”


“새벽에도?”


“응.”


준호가 피식 웃었다.


“선생님 잘 때는요.”


“깨워.”


“귀찮게.”


“괜찮아.”


“진짜요?”


“응.”


유진은 준호 눈을 똑바로 봤다.


“어디 갈지 모르겠으면.”


“…….”


“나한테 와.”


준호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물었다.


“왜요?”


유진이 잠깐 생각했다.


미래에 사고 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너 사고 칠 것 같아서.”


준호가 헛웃음을 쳤다.


“제가요?”


“응.”


“뭘 믿고.”


“널.”


준호가 또 웃었다.


“그게 더 이상한데.”


“아무튼 약속.”


“뭘요.”


“진짜 열받는 날.”


유진이 손가락으로 바카라상을 두드렸다.


“다른 데 가지 말고 나 찾아.”


준호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네.”


“대충 하지 말고.”


“알겠어요.”





그날은 별일이 없었다.


수업도.


점심도.


종례도.


준호는 평소와 같았다.


유진은 오히려 더 불안했다.


미래가 바뀌려면.


오늘 밤이 와야 했다.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유진은 잠들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침대 옆에 두고.


소리도 켜놓았다.


평소 같으면 벌써 잘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다렸다.


그리고.


열한 시 사십칠 분.


전화가 울렸다.


준호였다.


유진은 첫 벨에 받았다.


“어.”


전화기 너머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준호야.”


잠깐.


숨소리.


그리고.


“선생님.”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지도 않았고.


거칠지도 않았다.


“어디야.”


“밖이요.”


“왜.”


“아빠랑 싸웠어요.”


유진은 눈을 감았다.


왔다.


미래가.


“어디인데.”


준호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준호야.”


“네.”


“형들한테 연락했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유진은 그 침묵으로 알았다.


“했어?”


“하려고 했어요.”


“하지 마.”


“…….”


“지금부터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마.”


준호가 작게 말했다.


“왜요.”


“그냥.”


“또 그냥.”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치 보내.”


“왜요.”


“갈게.”


“괜찮아요.”


“안 괜찮아.”


“저 그냥 좀 있다 들어갈게요.”


유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준호야.”


“네.”


“오늘은 선생님 말 들어.”


긴 침묵.


그리고.


잠시 뒤.


위치가 왔다.





유진은 준호를 데리러 갔다.


편의점 앞이었다.


준호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난간에 앉아 있었다.


유진을 보자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진짜 왔어요?”


“그럼 전화만 받냐.”


“안 와도 되는데.”


“왔잖아.”


준호는 고개를 숙였다.


유진이 옆에 섰다.


“아빠가 뭐라고 했어.”


준호는 욕 몇 마디를 그대로 옮겼다.


유진은 말없이 들었다.


“그래서 나왔어?”


“네.”


“형들은.”


“연락 안 했어요.”


“잘했다.”


준호가 유진을 힐끗 봤다.


“진짜 가려고 했는데.”


유진의 심장이 조금 내려앉았다.


“왜 안 갔어.”


준호는 잠깐 망설였다.


“선생님이 찾으라면서요.”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준호는 차를 훔치지 않았다.


운전하지 않았다.


사고도 나지 않았다.


경찰서에도.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그냥.


유진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유진은 준호를 바로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를 하나 사줬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준호가 말했다.


“선생님.”


“왜.”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너 데리고 있는 건 말해야 돼.”


“아.”


“대신 싸우진 않을게.”


“저도 안 들어가면 안 돼요?”


유진이 준호를 봤다.


“오늘은.”


잠깐.


“선생님이 같이 갈게.”


준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는 평소와 같았다.


준호도 왔다.


아무 사고도 없었던 것처럼.


유진은 속으로 계속 확인했다.


준호 멀쩡함.


결석 없음.


경찰 연락 없음.


아버지 전화 없음.


미래가.


완전히 바뀌었다.


유진은 처음으로 꽤 크게 안도했다.





그날 오후.


졸업생 한 명이 학교에 찾아왔다.


유진은 처음에 얼굴을 보고 반가워했다.


“어?”


학생이 웃었다.


“선생님!”


“오랜만이다.”


예전에 유진이 담임했던 학생이었다.


이제 교복도 아니었다.


조금 어른 같아졌다.


“잘 지냈어?”


“네.”


학생은 유진 바카라상 옆에 앉았다.


그렇게 한참 옛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학생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생님, 이거 기억나요?”


사진이었다.


체육대회.


운동장.


학생들이 유진 주변에 몰려 있었다.


모두 땀범벅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은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유진도.


그랬다.


유진은 사진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언제지?”


학생이 웃었다.


“뭐예요.”


“아니.”


“우리 3학년 때 체육대회요.”


유진은 다시 사진을 봤다.


분명 자기였다.


자기 반 학생들도 있었다.


운동장도 황동중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그때 질 뻔한 거 선생님이 뒤집어줬잖아요.”


유진의 시선이 멈췄다.


“내가?”


학생이 웃음을 멈췄다.


“진짜 기억 안 나요?”


“뭘.”


“선생님이 미래…”


학생은 장난처럼 말하다가 멈췄다.


“아니.”


다시 웃었다.


“그날 계주 순서 바꿔서 우리가 이겼잖아요.”


유진은 사진을 오래 봤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순서를 바꿨어?”


“네.”


“왜?”


“그때 선생님이 갑자기 애들 뛰는 순서 바꿨잖아요.”


학생은 신이 나서 말했다.


“원래 우리 질 거였는데.”


“…….”


“마지막에 역전해서.”


“…….”


“애들 다 선생님 들고 뛰어다니고.”


유진은 사진 속 자기 얼굴을 봤다.


활짝 웃고 있었다.


유진은.


그 표정을 기억하지 못했다.





“선생님.”


학생이 유진 얼굴을 살폈다.


“진짜 기억 안 나요?”


유진이 웃으려고 했다.


“요즘 기억력이 좀.”


“에이.”


학생이 장난처럼 말했다.


“그날 선생님이 제일 좋아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학생이 돌아간 뒤.


유진은 한동안 사진을 다시 봤다.


졸업생이 보내준 사진.


운동장.


아이들.


자기.


그리고.


승리.


분명 있었던 하루였다.


기록도 있었다.


사람들도 기억했다.


그런데.


유진 안에는 없었다.


유진은 눈을 감았다.


어제 밤.


준호.


편의점.


전화.


사라진 자동차 사고.


바뀐 미래.


그리고.


사라진 과거.


설마.





유진은 억지로 기억하려 했다.


체육대회.


그날의 날씨.


학생들이 어떤 종목에 나갔는지.


누가 마지막 주자였는지.


자기가 왜 순서를 바꿨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을 보면.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아니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날 자정.


유진은 평소처럼 내일의 기억을 기다렸다.


그리고.


왔다.


정상적으로.


내일 교무실에서 박성호와 나누는 대화.


준호가 지각하는 장면.


급식 메뉴.


전부.


멀쩡했다.


유진은 눈을 떴다.


미래는 여전히 보였다.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체육대회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진은 천천히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미래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사라진 건.


과거였다.





유진은 휴대전화를 켰다.


준호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선생님 어제 고마웠어요.






유진은 그걸 한참 바라봤다.


준호는 살아 있었다.


사고도 없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분명.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대가로.


유진은 제자들과 가장 크게 웃었던 하루 하나를 잃었다.


유진은 아직.


그게 우연인지 몰랐다.


정말 능력 때문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이상할 정도로.


타이밍이 정확했다.


유진은 체육대회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속 자신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그 행복이.


이제는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유진은 처음으로.


내일을 바꾸는 일이.


조금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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