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카리스마와 막사발이 주는 행복
"내 남편 손대지 마! 내 아들 손대지 말라고!"
비명에 가까운 아내의 외마디가 창고의 낡은 벽을 타고 물류센터의 높은 천장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온몸의 신경을 꼿꼿이 세운 채 서슬 퍼렇게 맞서는 그 기세에, 거칠게 달려들던 사내들조차 일순간 당황하며 주춤 걸음으로 물러섰다.
늘 내 등 뒤에 조용히 숨던 가냘픈 체구의 아내가, 그 순간만큼은 아들과 나를 자신의 작은 등 뒤로 숨긴 채 집채만 한 거인처럼 맹렬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배송 물량이 폭주하는 화요일 오후의 물류 터미널 하역장은 늘 매연과 고성, 날 선 신경전이 교차하는 위태로운 전쟁터가 된다.
단 일 분이라도 신속하게 물건을 내리고 다음 배송구역으로 출발하려는 우리 부자의 조급함과,
사방에서 밀려드는 화물 더미 속에서 자신들의 최소한의 작업 공간을 확보하려 애쓰던 물류터미널 하청직원들의 절박함이 좁은 데크 위에서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서로의 사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점차 고성이 오가며 순식간에 험악한 마찰이 빚어졌다.
언성이 점차 높아지더니, 이내 작업 공간을 사수하려던 건장한 하청직원 사내 대여섯 명이 래퍼인 이십 대 막내아들과 나를 위협적으로 에워쌌다.
금방이라도 폭력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던 찰나, 우리의 맨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아내가 불현듯 고함을 치며 우리 앞을 가로막아 선 것이다.
폭풍 같던 사태가 어찌어찌 진정된 후, 아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차 안의 정적을 깼다.
"엄마 목청이 그렇게 크다는 사실 오늘 처음 알았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옅게 웃는 아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따라 웃었지만 울컥 뜨거운 뭔가를 목구멍으로 남몰래 삼켜내야만 했다.
그동안 나는 남자는 모름지기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상대를 제압하는 권위와 위세, 심지어 없던 초능력이라도 총동원해서 쥐고 있어야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온라인 게임이라는 높은 성채 속으로 홀로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카리스마를 생존의 부적처럼 도배하고 필사적으로 강한 척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얄팍하고 옹졸한 카리스마는, 철저하게 내가 중심인 우주 공간 속으로 아내를 불러들여 내 주위를 맴도는 위성처럼 대하게 만들었다.
아내는 스스로를 '미어캣'이라고 평가했다. 늘 남편을 살피고, 시댁을 살피고, 이제는 가족의 안전을 살피느라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꼭 미어캣을 닮았노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그 불안한 본능을 '바람까마귀'처럼 이기적으로 이용해 먹으며 군림해 온 몹쓸 존재라는 자바카라이 든다.
물류센터에서 우리를 막아서던 아내의 맹렬한 고함 소리는, 어쩌면 내가 만들어놓은 권위와 불안의 억압 속에서 홀로 가족을 지켜내려 발버둥 쳐 온 미어캣의 슬픈 비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높디높은 성채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 택배를 하면서, 남자의 '카리스마'가 아내와 자식 앞에서는 '녹슨 부엌칼'처럼 무용지물이고 거의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힘들게 택배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식사준비를 하는 아내 곁에서 함께 도와주고, 식사 후에는 아내의 입맛에 맞는 커피와 다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가 되고, 아내와의 대화에서 살가운 말동무가 되어주고, 아내가 쉬는 동안 설거지하며 뒷마무리를 하고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아내를 두고 조용히 바카라방으로 피신하는 AI남편로봇의 일정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남자의 '카리스마'가 발휘될 여지란 눈곱만큼도 없다.
조직생활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구성원을 리드하기 위해서 '카리스마'가 필요했지만 가족에게는 전혀 다른 유형의 리더십이 요구되었다.
'막사발(막그릇)'같은 유형의 리더십 말이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되는 막그릇처럼 때론 마구 푸대접당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정겹고 편안한 그런 존재 말이다.
가족이 원하는 것들을 언제든 담아내려 어떠한 푸대접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또 다른 차원의 푸근한 카리스마를 아내와 자식들은 원하고 있었다.
계획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안달복달하며 살다가 제풀에 고꾸라졌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제발 계획을 세우지 마. 그냥 살자고. 인생이 계획대로 된 거 하나도 없잖아. 맘 편하게 살자고" 만류하던 아내의 말이 백번 옳았다.
가족이란 계획 속에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제 각기 흔들어대는 몸동작에 맞추어 함께 장단을 맞춰 추임새를 춰줄 때 흥이 나고 능률이 생기는 공동체였다.
이제 아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좁디좁은 포터 안을 함께 콘서트장으로 만든다.
장마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날에도, 'Prep'과 '밥 말리'의 신나는 리듬의 음악에 맞춰 아내는 어깨춤을 추고 나는 흥겨운 고갯짓으로 흥겹게 맞장구를 친다.
그 아무짝에 쓸모없이 무뎌진 '녹슨 카리스마'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제는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춤을 춘다.
어느 날, 아내가 영문도 모르는 내게 냅다 요구를 해왔다.
"자기야. 라비 어쩌고 하는 샹송 노래 좀 찾아 줘 봐."
스피커로 정미조 씨의 드라마 주제가가 흘러나오자, 택배를 돌리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아내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양손을 우아하게 늘어뜨린 채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La vie est une aventure sans fin,
Le bonheur est special.
(인생은 끝없는 모험입니다. 행복은 특별합니다.)
그 생뚱맞고 낯선 춤사위를 가만히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나는 이내 가슴이 묵직하게 뭉클해져 왔다.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인생은 내게 그럴 기회를 허락해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가난한 남편을 만나 힘겨운 택배 현장으로 선뜻 들어와 내 곁을 지키는 아내를 보며, 생존을 위한 현실 속에서 아내의 미소를 영영 잃어버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돈은 소중하지만, 여자인 아내가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는 작고 사소한 관심과 존중받는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행복해하고 흥겨움이 샘솟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된다.
노랫말처럼 행복이란 인생 속 작은 순간에 숨어있기에 모든 순간이 보물이고 선물이라는 가삿말이 참 많이 공감된다.
물류센터의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자신을 내던져 우리를 지켰던 거친 나의 여신은, 이제 내 앞에서 두 눈을 감고 화사한 꽃처럼 춤을 춘다.
더 이상 아내를 불안에 곤두선 미어캣으로 살게 하지 않으리라.
무엇이든 거뜬히 담아내는 투박한 막사발 남편이 되어, 이 척박한 바닥 위에서도 아내가 영원히 내 곁에서 편안하게 춤추며 살 수 있도록 기꺼이 이 한 몸 헌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