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좁은 탑차 안, 가장 낮은 곳의 식탁 위에서

가장 좁고 낮은 식탁 위에서 완성하는 우리만의 명화

2부 땀방울이 오만한 자아를 깎아낼 때면



장마철 무더위 속, 까대기 작업 중 간선 차량 도착이 한 시간 남짓 지연되는 궂은날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식당을 찾아 나서기도 애매한 시간, 우리는 비좁은 포터 차 안에서 아내가 아침 일찍 챙겨 온 도시락을 펼쳤다.


땀에 절어 끈적이는 옷, 에어컨 바람으로도 가시지 않는 후텁지근하고 좁디좁은 포터 차 운전석 공간이지만,


입안으로 오가는 밥 한 숟가락마다 "참 맛있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런 입맛이 육체를 격렬히 움직여 일한 뒤 마주하는 밥의 정직함이구나 싶어진다.


힘들게 일하고 먹는 음식은 장소를 불문하고 "똑같은 반찬인데 집에서 먹을 때랑 왜 이리 달라?"라며 우리를 연신 감탄하게 만들었다.


늘 집에서 아내가 연하고 부드럽게 무쳐낸 나물 반찬인데, 지금은 호박무침과 나물무침의 맛이 혀끝에 더 깊게 와닿는다.


문득 도시락통을 쥐고 있는 아내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쏟아지는 상자들을 쉴 새 없이 받아내는 까대기 작업과 택배상자를 배송하느라 아내의 희고 고운 손이 다 망가져 버렸다.



택배 일을 하기 전, 나는 아내의 그 고운 손을 마주 잡고 종종 지하철 노선을 따라 소박한 맛집 투어를 즐기곤 했다.


우리 곁을 오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풍경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작정이었다.


가끔은 스타벅스나 투썸 같은 천정 높고 번듯한 카페에 앉아 매끄러운 포크로 조각 케이크를 썰며 여유도 부렸다.


아이들의 진로 문제나 양육 갈등 같은 평범한 주제를 나누던 그 시간들은 겉보기엔 그럴싸한 힐링의 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내 속이 헛헛해지던 가짜 풍요를 동경하던 소비적인 먹고 마시기는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택배를 시작한 후, 매끄럽던 손이 거칠게 변해가는 동안 우리의 밥상 풍경은 180도 바뀌었다.

레일 앞에 서는 아침부터 배송이 끝나는 시간까지 공식적인 휴식 시간은 사라졌다.


동료 택배기사들이 택배 상자가 쏟아지는 레일 곁에서 도시락이나 짜장면을 먹으면서 동시에 물건을 잡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량이 쏟아지는 화요일 같은 날이면 레일이 멈추는 틈을 타 컵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웠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신속한 배송을 위해 까대기 시간에 짬짬이 준비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노동의 날 것 같은 현실이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기 위해 장갑 끝을 갈라낸 나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손톱 밑에는 박스 때가 까맣게 눌어붙어 있다.


이 볼품없는 손으로 아내가 싸 온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드는 순간,


나는 빈센트 반 고흐가 작품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그토록 집착하며 그리려 했던 농부들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떠올렸다.


고흐는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집어 드는 농부들의 거친 손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땅을 일구고 땀 흘려 수확한 '정직한 노동의 결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골 아낙이 고상한 귀부인보다 훨씬 아름다워. 그녀들이 귀부인의 드레스를 걸치는 순간 진정성은 사라져 버려"라며 흙먼지 묻은 식탁에 깃든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찬미했다.


무더위 속에서 매일같이 무거운 택배 상자와 씨름하는 택배 가족인 우리의 두 손은 비록 거칠어졌지만,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림 속 농부들의 투박한 손처럼, 모진 이 삶을 향한 진정성이 놀랍도록 겹쳐져 있다.


나는 그림 속 짙은 어둠으로 감싸인 가장 낮은 식탁 위에서 고흐가 그려내고자 한 불편하고도 투박했던 진실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것만 같다.



삶 속에서 행복이란 결코 고귀함과 화려한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 운전석, 도시락 등 소소하고도 평범한 일상 속에도 깃들어 있었다.


화려하게 잘 차려진 식탁이나 예전의 여유로운 식사는 결코 아니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는 노동 뒤 좁은 포터 안에서 나누는 도시락에서도 나는 '일상의 표면'이 지닌 참된 가치가 존재함을 새롭게 느낀다.



가족과 함께 택배 하면서, 점심시간이면 나는 급히 나오느라 아침도 챙기지 못한 아들과 배송하는 아내를 위해 탑차로 음식을 나르는 식사 당번이 된다.


편의점에서 아들이 좋아할 만한 도시락이나 햄버거를 고르고, 화요일이면 열리는 아파트 장터에서 만두와 잔치국수를 사 오기도 한다.


비록 좁은 운전석에 펼쳐진 편의점 음식이지만, 가족 각각의 기호를 살피고 그들이 맛있게 먹는 반응을 보는 것은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나만의 흐뭇하고 쏠쏠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고단함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고, 이 상처 나고 거칠어진 두 손으로 서로를 위한 도시락을 나누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말없이 건넨다.


춥고 힘겨운 배송 중에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의 달달함은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때로는 짠하고 애처로운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주고받는 종이컵 한 잔 만으로도 지친 심신이 넉넉히 위로를 받는다.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순간마다 필요한 '의지력'은 쓸수록 두뇌의 혈당 수치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한다.


결국 이런 의지력을 회복시키는 것은 음식이다.


슬롯적인 시선으로는 가장 볼품없는 식사일지라도, 서로를 향한 애처로움과 연민이 담긴 손으로 음식을 나누고 건네는 동안 이 소박한 식탁에도 가족 간의 깊은 교감을 끌어내고 다시 살아갈 생기가 생겨났다.


우리의 먹고 마시기는 단순한 영양 섭취나 과거의 허무한 소비에서 벗어나, 험난한 세상을 헤치고 나갈 의지력을 재충전하는 보다 생산적인 행위로 탈바꿈한 거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고된 육체노동 후 가족과 교감하며 소박하게 먹고, 마시는 과정 속에서도,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재충전까지 우리의 삶을 지탱할 의지력은 충분히 공급되어 왔다.


먼 훗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이 순간을 회상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가슴 짠하게 와닿고 의미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리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좁고 낮은 포터 차 운전석 안에서 같이 공분하고 웃으며, 그 어떤 화려한 것보다 숭고하고 의미 있는 우리 만의 명화를 부지런히 그려나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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