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텅 빈 짐칸에서 만나는 '제로(Zero)'의 미학

세상이 만든 몰아세움을 넘어, 내면의 빈 공간을 개척하는 법

2부 땀방울이 오만한 자아를 깎아낼 때면



한 주간 동안 배송으로 정신없는 나날들, 오늘도 바쁘게 배송한 후 다음 짐을 챙기려 걸음을 옮기던 중이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 도로 위에, 중고 택배차 포리가 뒷문을 활짝 연 채 가만히 멈춰 서 있다.


아내와 아들이 각자의 손에 택배박스를 챙겨 들고 아파트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 평 남짓한 비좁은 포터의 적재함에 점점 다가서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 좁은 탑차 공간에 기대어 우리 가족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하게도 하늘은 유난히 맑고 청명했다. 눈시울이 시리면서, 동시에 가슴에는 알 수 없는 감사함도 차오른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깊고 서늘한 '크레바스(Crevasse)' 구간을 서로 부둥켜안은 채 힘겹게 지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지만, 동시에 내일을 향해 알 수 없는 강한 희망의 손길에 이끌려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슬프지만 행복해지는, 참으로 기묘한 순간을 탑차의 짐칸 앞에서 나는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동도 잠시, 일상이 시작되면 택배센터의 아침은 다시 거대한 기계의 뱃속으로 변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쏟아지는 수많은 택배상자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휠소터의 날카로운 굉음, 바코드를 찍어대는 스캐너의 기계음이 뒤섞여 새벽공기가 짓눌린다.


스마트폰으로는 배송을 독촉하는 대리점의 카톡 알림이 연이어 울려대고, 배송 시간에 쫓기는 나의 몸은 오직 할당된 물량들을 쳐내기 위한 부품으로 전락한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던 ‘몰아세움(Ge-Stell)’의 민낯이 바로 이곳에 있다. 현대 기술과 자본의 속도는 인간을 그저 목적 달성을 위한 부품이나 대기 자원으로 몰아세운다.


송장 번호와 주소 외에 나의 감정이나 사유가 개입할 틈은 전혀 없다. 낮 시간 동안, 나는 철저히 타인의 편의성과 욕구충족을 위해 다루어지고 소모되는 도구(It) 일뿐이다.


하지만 그 숨 막히는 몰아세움의 시간도 마침내 저물어간다. 해가 지고 최종 목적지에서 마지막 택배 상자를 내려놓은 뒤, 철컹거리는 탑차의 뒷문을 활짝 열어젖힌 순간,


나는 빈틈없이 가득 차 있던 짐들이 거짓말처럼 비워져 있는 사실에 잠시 놀라고, 이내 잔잔한 희열을 느끼곤 했다.


긁히고 패인 차가운 철제 바닥뿐인 탑차의 짐칸 위로 성큼 올라 선 나는 운전석 뒤에서 낡은 빗자루를 꺼내 들고는, 짐칸 바닥에 흩어진 흙먼지와 스티로폼 가루들을 쓸어내기 시작한다.


쓱, 쓱, 쓰윽,

거친 빗자루가 철제 바닥을 스치는 마찰음만이 텅 빈 짐칸을 하나 가득 채운다.


아파트 가로등 불빛이 적재함 안으로 스며들자, 바닥을 뒹굴던 하얀 스티로폼 가루들이 마치 부서진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허공으로 흩어진다.


빗자루질을 하는 이 고요한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나의 모든 것을 다시 ‘제로(Zero)’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의식의 시간이 된다.


쓸려나가는 먼지들과 함께, 쫓기듯 달리며 쌓였던 조급함과 타인의 시선 앞에서 느꼈던 찰나의 부끄러움, 내 안의 오만한 에고(Ego)마저 짐칸 밖으로 조용히 밀려나간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속 ‘마꼰도(Macondo)’ 마을이 태초의 정적을 간직한 망각의 공간이었던 것처럼, 방금 전까지 짓눌렀던 삶의 무게들이 모두 잊히고, 텅 빈 이 탑차 공간은 이제 나만의 '마꼰도'로 새롭게 태어난다.


삶 속에서 누리는 평온함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알량한 기대를 접을 때 비로소 찾아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는 낡은 라디오 대신 스마트폰 스피커에서는 이적이 부르는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가 잔잔히 흐르고 , 곁에 앉은 아내는 드라마 속 덕선이네 단칸방 사연을 조용히 건네온다.


나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지나가는 사람'이 된 것 마냥, 정겨움과 서글픔이 교차하는 가수의 목소리 위로 지친 내 마음을 슬며시 내려놓고 지나친다.


땀에 절은 작업복을 벗고 나만의 빈방 바카라상 앞에 앉아 바카라을 펼친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카라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흙먼지 날리던 낮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에게 차가운 객관성과 자유를 되찾아준다. 나는 마치 왕관과 망토를 스스로 벗어 내려놓고 떠나는 '퇴위하는 왕'처럼 읽는다.


과거의 헛된 자부심과 오만한 몽상들을 텅 빈 탑차 바닥에 모두 버려두고 왔기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타인의 문장을 보고 읽는 행위의 고결함에만 온전히 집중하려 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고된 육체노동자가 밤의 고요 속에서 깨어나 사유하는 것을 '논리적 반역'이라 불렀다.


낮 동안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It)로 철저히 소모되었던 나는, 이 밤과 새벽에 독서와 음악을 통해 비로소 삶의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나'라는 존재들을 다시 한 곳으로 끌어모은다.


그리고 마침내 펜을 쥔다.

퇴위하는 왕의 고결한 심정으로 내면의 찌꺼기를 완벽한 제로(Zero)로 비워내려 애쓰며, 나는 다시 이 하얀 모니터 위로 온전한 '나'를 찾는 순결한 문장들을 묵묵히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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