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무거운 똥 짐이 삶의 중심을 잡아주다

가장 낮은 곳으로 하강하는 법을 배우다.

2부 땀방울이 오만한 자아를 깎아 낼 때면.



오늘은 유독 '똥 짐'(크고 무거운 택배상품)이 많다. 한동안 진땀을 흘리며 탑차의 짐칸으로 옮기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나의 낡은 탑차 ‘포리’에 부피만 크고 가벼운 휴지 상자나 의류 박스들만 가득 실려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택배차 포리는 코너를 돌 때마다 무게중심을 잃고 좌우로 휘청일 거고, 애써 쌓아 둔 짐칸의 상자들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릴 것이다.


배송지에 도착해 화물칸 양쪽 문을 여는 순간, 엉망으로 뒤엉킨 짐들을 바라보는 순간, 택배기사인 나의 억장도 무너지리라.


하지만 ‘똥 짐’들이 화물칸 맨 밑바닥에서 바위처럼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준다면 상황은 완전하게 달라진다.


거친 요철을 넘어 급커브를 돌아도, 택배차 포리는 신기할 정도로 도로 위에 밀착해 안정감 있게 내달린다.


땀을 흘리며 똥 짐을 적재하고, 도로 위를 달리는 과정 중에 아주 투박한 진실을 하나 발견했다.


가벼운 짐은 결코 층층이 포개진 짐들의 중심이 되지 못하지만, 감당하기 버거운 육중한 하중을 지닌 ‘똥 짐’은 역설적으로 내 삶의 탑차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꽉 붙들어주는 든든한 ‘평형수(Ballast)’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형수 : 선박의 중심을 잡기 위해 선박의 하단부에 실어두는 바닷물. 선박평형수라고도 함.


그런 '똥 짐'은 반드시 위가 아니라 아래, 그것도 가장 밑바닥에 위치해야만 한다. 화물의 중심을 잡는 무게중심은 맨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 내가 실패한 후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마다, 내 삶의 탑차가 그토록 위태롭게 흔들렸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중심을 잡아줄 무거운 평형수들을 번거롭다며 깡그리 내다 버리고는, 부피만 클 뿐 실속 없는 가벼운 것들로만 내 안에 가득 채워왔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화려하게 재기하고 싶다는 오만한 보상심리, 세상을 향해 품었던 적개심, 그리고 어떻게든 쥐고 있으려 했던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에고(Ego)들 말이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부풀려지고 오만했던 에고들은, 조그만 시련의 바람 앞에서도 나를 돛 잃은 배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에고(자아)'를 섬기며 살아왔다. 나 자신을 부리며 사업을 하고,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소비하며 살아왔다.


그럴수록 화를 내면서 까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인간의 영혼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이기적인 욕망을 ‘중력’이라 불렀다.


그녀는 삶이란 나를 무겁게 만드는 '자아의 중력'을 견디며 위가 아닌 아래로 하강하는 거룩한 과정이라고 했다.


나는 택배 현장에서 나를 짓누르는 물리적인 중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중력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40kg 쌀포대와 덤벨 등을 배송할 때마다, 허공을 떠돌던 나의 얄팍한 자존심과 오만한 에고도 동시에 짓눌려 하얀 스티로폼 조각과 흙먼지로 뒤섞인 짐칸 바닥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육체가 무거운 중력에 짓눌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부속품이나 비루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자괴심도 끼어들 틈이 없다.


무거운 현실의 짐들을 기꺼이 나의 손가락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하나씩 움켜쥘 때마다, 내 삶은 고요함 속에 오히려 더 단단히 다져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온몸의 근육을 짓누르고 고통을 주던 이 투박한 이 똥 짐은, 내 현실의 삶이 주는 시련 같은 중력이다.


하지만 그것은 탑차에 촘촘히 쌓인 짐들과 마냥 흔들리던 나의 중심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현실의 삶 밑바닥에서 단단하게 붙잡아주고 있었던 거다.


택배 기사의 일상은 여전히 혹독하고 부조리하다.


억수 같은 비와 살을 에는 눈보라를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고, 고객의 실수조차 고스란히 택배기사 탓이라며 되돌아오는 등 힘겨운 상황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과거의 얄팍한 자존심과 가벼운 에고를 거머쥔 나였다면 이런 불합리함에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분노하며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가슴은 이상스레 담담하다.


밑바닥에 똥 짐을 단단히 깐 택배차 포리가 거친 급커브와 요철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도로에 밀착해 달리듯, 나의 내면 역시 현실의 냉대와 부조리 앞에서 더 이상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온몸으로 받아낸 노동의 하중과 세월의 파도가 내 가슴속 얄팍한 감정들을 다지고 다져 거친 바닷가의 묵직한 '갯바위'처럼 단단하게 바꿔 놓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추운 겨울, 가족들과 함께 배송을 마치고 집안에 들어서니 창가에 하얗게 눈 덮인 나무들이 보였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던 과거의 창문을 등지고,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자락이 비치는 창가 앞에 나란히 서 있다.


나를 섞어 넣지 않은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본 매섭게 추운 현실도 참 아름다웠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거룩하게 하강하리라.


삶의 밑바닥에서 잔인한 하중을 온몸으로 버텨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삶이 전복되지 않기를.


나를 섞지 않고 비워진 가장 낮은 그 빈자리에 고요하게 머물 수 있기를.


마침내 중력의 사슬이 풀리고 , 이름 모를 빛이 우리를 채워 주시길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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