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담벼락 위에도 품위 있게 양반꽃은 핀다
자신만만했던 마흔 즈음, 내 삶의 성벽이라 믿었던 사업이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혹독한 '돈 가뭄' 앞에서, 나를 보호해 주던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낮과 밤은 뜬눈으로 지새워야만 하는 지독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떠밀리듯 들어선 택배의 세계는 지독한 육체적 통증 그 자체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체중이 급격히 줄었고, 온몸의 근육은 매일 밤 비명을 질렀으며, 레일 위로 쏟아지는 무거운 짐들 앞에서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다.
어느 비 오던 날, 골목길 빌라 단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고 말았다.
한동안 충격으로 차가운 1층 시멘트 바닥에 누워 신음을 삼키고 있을 때, 위층에서 누군가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러나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은 이내 차갑게 닫혀버렸다.
그 매정한 문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삶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타인의 무심함 앞에서 서글픔과, 수치심이 온몸을 감쌌다.
끝없는 절망이 나를 짓누르던 그 무렵, 과거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간 깊은 산등성이에서 보았던 풍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면서도 서로의 몸을 의지해 기어이 '사람 인(人)' 자를 만들어내던 무수한 나무들.
"누가 승리에 대해 말하는가? 견뎌내는 것이 전부인 것을."
시인 릴케의 읊조림처럼, 나는 땀방울을 흩날리는 레일 곁에서 인생은 시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전부임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동시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단함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가족이라는 의미가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땀방울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던 어느 순간, 이 일을 시작하기 전 기억 속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상도동 재개발 구역의 가파른 언덕배기, 곧 허물어져 가던 어느 단독주택의 금이 간 담장 위에 그려진 능소화였다.
옛날 양반가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 불리던 그 꽃은, 담장의 보기 흉한 금을 감추는 대신 오히려 그 흉터의 선을 줄기 삼아 고고하게 주황빛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빗물과 땀방울이 뒤섞이는 일터에서 늘 알 수 없는 회한에 젖곤 하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어 분노했던 내 인생의 상처와 결핍들이, 실은 그 흉한 금을 따라 피어나던 양반꽃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사실을.
인간이 지닌 흠집과 불완전함은 수치스러운 오점이 아니다.
그것은 거친 상실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회복하려 했던 아름다운 흔적이자,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진정한 품위'의 증거였다.
이제 나는 수억, 수십 억의 숫자로 사람의 등급을 재단하는 화려한 성벽 안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백 원, 천 원짜리 푼돈이 모여 생을 지탱하는 이 지독하게 평범하고도 고단한 삶의 경계부인, 나만의 '회색지대'에 겸허히 머물기로 했다.
1830년대 젊은 노동자들이, 낮에는 공장 노동자로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밤잠을 줄여가며 사유의 문장을 쓰며 생각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논리적 반역'을 시도했다.
나 역시 땀 냄새 밴 낡은 택배 조끼를 걸치고 텅 빈 탑차의 적재함에서 진실하고 투박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며 나만의 고독한 '사유적 반란'을 이어가려 한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남긴 말처럼, 완벽한 삶이란 완벽한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디딘 두 발에 힘을 빼고 오늘의 흐름에 온전히 나를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이란 지금까지 무엇을 성취했냐 보다는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깐 말이다.
불완전한 나를 비로소 긍정하며,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펼쳐진 나의 원고지 위에 나와 가족의 땀 냄새나는 <연대하는 이야기>를 세상 속으로 이제는 기꺼이 배송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