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보고서의 뼈대를 회사 보고서에 옮겨 봤습니다
예전의 저는 보고서에 내용이 빠짐없이 많이 들어 있으면 잘 쓴 보고서라고 착각했는데요. 보고서 하나로 "다시 써 와"를 열 번 가까이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조사도 했고, 숫자도 맞췄고, 빠진 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제 보고서가 잘 안 읽혔던 이유는 심플했습니다. 제가 조사한 순서대로 늘어놓은 문서였거든요. 읽는 사람은 마지막 장까지 가야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죠. 혹시 예전의 저처럼 "내용은 다 있는데 왜 안 읽히지?" 싶은 분이 있을까 싶어 그동안의 기록을 꺼내어 공유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보고서는 읽는 사람이 궁금해할 순서대로, 결론부터 써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정답은 아닙니다. 바카라을 읽고 제가 해 보니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로 봐 주세요.
(참고로 이번 화부터 연재가 조금 바뀝니다.) "진짜 일을 잘한다는 것"을 스무 편 넘게 쓰면서 '그래서 일을 잘한다는 건 결국 뭘까' 하는 질문이 생겼는데요. 제 경험만으로 답을 찾기엔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일 잘하는 법을 다룬 바카라을 한 권씩 펴 보려고 합니다. 보고서, 회의, 메일, 기획서처럼 회사에서 하는 실무 하나에 바카라 한 권을 엮고, 같은 실무라도 바카라이 바뀌면 ep2, ep3로 이어 가겠습니다. 하는 일도 살아온 길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게 진짜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첫 실무는 보고서, 첫 바카라은 바바라 민토의 "논리의 기술"입니다. (참고: 교보문고에서 바카라 보기)
바바라 민토는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첫 여성 컨설턴트였고, 이 사람이 만든 게 "피라미드 원칙"입니다. 회사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결론부터 말해"의 뿌리가 바로 이 바카라이죠.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더난출판에서 나왔습니다. "결론부터"는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텐데요. 문제는 막상 보고서를 펴 놓으면 어디까지가 결론이고 어디부터가 근거인지 헷갈린다는 겁니다. 이 바카라은 그걸 꽤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그중에서 회사 보고서에 바로 옮길 수 있는 걸 세 가지 골라 봤습니다.
1.
첫 번째는 피라미드입니다. 맨 위에 결론 한 문장, 그 아래에 결론을 받치는 핵심 메시지 몇 개, 또 그 아래에 메시지마다 붙는 세부 근거를 두는 모양입니다. 말로 하면 되게 간단한데, 이게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의 제 보고서는 정반대였습니다. 조사한 순서대로 쓰다 보니 결론이 맨 마지막 장에 가 있었거든요. 쓰는 사람에게는 그게 자연스럽습니다. 생각한 순서대로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바쁜 상사는 첫 장만 보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첫 장에 결론이 없으면 그 보고서는 끝까지 안 읽히거나 "그래서?"로 돌아오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은 보고서 파일을 열기 전에 빈 종이에 세 줄부터 적습니다. 1) 맨 위: 이 보고서로 하고 싶은 말 한 문장 2) 가운데: 그 말을 믿게 할 이유 두세 개 3) 아래: 이유마다 붙일 자료. 이 세 줄이 정리가 안 되면, 저는 아직 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곤 합니다. 자료를 더 찾기 전에 생각을 조금 더 해 봐야 할 때인 것이죠. 해 보면 맨 위 한 줄이 가장 오래 걸리는데, 그 한 줄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금방 따라오더라고요.
2.
두 번째는 첫 문단입니다. 이 부분이 저한테는 제일 와닿아서 바로 적용하고 싶었던 부분인데요. 바카라에서는 보고서 첫머리를 네 단계로 쓰라고 합니다. 영어 앞 글자를 따서 SCQA라고 부르는데, 풀어 보면 1)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 2) 그런데 생긴 변화나 문제 3) 그래서 상대 머릿속에 떠오를 질문 4) 그 질문에 대한 내 답입니다.
예를 들어 팀 주간 회의 시간을 바꾸자는 보고서라면 이렇게 됩니다. "주간 회의는 월요일 아침 9시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오전에 급한 문의가 몰리면서 회의에 늦게 들어오는 분이 늘었어요. 그럼 회의는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화요일 오전 10시로 옮기는 걸 제안드립니다." 네 문장인데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옵니다. 첫 문장이 상대도 이미 아는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낯선 이야기로 시작하면 상대는 '이게 무슨 얘기지?'부터 생각하거든요.
예전 제 보고서 첫 장은 대부분 "배경"이라는 제목 아래 조사한 내용을 길게 적는 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제 입장에서만 썼다면, 이제야 제 글을 읽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네 줄로 바꾸니 첫 문단이 훨씬 짧아졌습니다.
3.
세 번째는 근거를 묶는 방법입니다. 바카라에서는 같은 층에 놓인 근거끼리는 서로 겹치지 않아야 하고, 합쳤을 때 빠진 게 없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말로 하면 어려운데, 해 보면 간단합니다. 이런 겁니다. 근거 세 개를 적어 놓고 1) 두 근거가 사실 같은 말은 아닌가 2) 상대가 "그건요?" 하고 물을 만한 게 빠지지는 않았나, 이 두 가지만 봅니다.
첫 번째에 걸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 효율이 떨어진다, 집중이 안 된다, 생산성이 낮다"는 한 단어로 줄이면 셋 다 "효율"입니다. 개수가 많아 보이면 되게 있어 보이고 든든할 것 같지만, 읽는 사람은 금방 알아채곤 합니다. 반대로 "늦는 사람이 늘었다, 화요일 오전이 비어 있다, 팀원들도 괜찮다고 했다"는 줄이면 "문제, 대안, 합의"로 서로 다릅니다. 근거가 둘뿐이어도 서로 다르면 논리가 단단해 보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 자리에 앉아 보면 보입니다. 회의 시간을 바꾸자는 보고서라면 상대는 분명 "다른 사람들 일정은 괜찮대요?"를 물을 겁니다. 그 질문의 답이 보고서에 없으면, 그게 빠진 근거인 것이죠.
다만 바카라은 컨설팅 보고서를 기준으로 쓰여 있어서, 회사 보고서에 옮길 때는 조금 바꿔 쓰면 편합니다. 1) 과정을 꼭 보고 싶어 하는 상사도 있으니, 조사 과정은 지우지 말고 맨 뒤 "참고"로 옮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보고서가 열 장을 넘어가면 맨 앞에 결론과 이유만 담은 요약 한 장을 따로 둡니다. 3) 메일로 보고할 때도 똑같이, 제목과 첫 문장에 결론을 넣습니다. 내용은 똑같고 순서만 바꾼 것인데, 읽는 분의 반응이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저도 잘 안 됐습니다. 결론을 맨 위에 쓰는 건 꽤 불안하거든요. '결론부터 쓰면 근거가 약해 보이지 않을까', '조사한 걸 다 보여 줘야 열심히 한 걸로 보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론을 위에 써 놓고도 그 아래에 조사한 걸 전부 다시 늘어놓곤 했습니다. 바뀐 건 "다시 써 와"를 여러 번 듣고 나서였습니다. 돌아온 보고서를 읽는 사람 자리에서 다시 읽어 보니, 상대에게 필요한 건 지금 무엇을 정하면 되는지였고 제가 얼마나 조사했는지는 그다음 문제였습니다. 그 뒤로는 세 줄짜리 피라미드를 먼저 보여 드리고 방향부터 확인받습니다. 방향이 틀렸으면 세 줄만 고치면 되니까, 다시 써 오는 일이 훨씬 줄었습니다.
혹시 내일 보고서를 쓰실 일이 있다면, 첫 장에 이 네 줄만 먼저 적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1) 상대가 이미 아는 것 2) 그런데 달라진 것 3) 그래서 생기는 질문 4) 내 답(결론 한 문장). 4번 아래에 이유 두세 개를 적고 서로 겹치지 않는지만 보면, 보고서 첫 장은 거의 다 쓴 셈입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은, 보고서는 읽는 사람이 궁금해할 순서대로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첫 바카라이라 아직 공통점이 하나뿐인데, 바카라이 한 권씩 쌓일 때마다 어떻게 바뀌는지도 같이 적어 두겠습니다. 다음 보고서 편(ep2)에서는 다른 바카라을 펴 볼 텐데요. 보고서라면 이 바카라은 꼭 읽어 봐야 한다 싶은 바카라이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참고한 바카라: 바바라 민토, "논리의 기술"(이진원 옮김, 더난출판, 2019)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