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회의를 20분 동안 조용히 읽으면서 시작합니다
예전의 저는 회의 자료만 꼼꼼하게 만들어 가면 회의 준비가 끝났다고 착각했는데요.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하다 보면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질문이 질문을 낳고, 끝날 때쯤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시죠"로 마무리되는 회의가 참 많았습니다. 회의가 30분쯤 지났을 때 누군가 "그래서 오늘 뭘 정하려고 모인 거죠?" 하고 묻는 걸 들은 적도 있고요. 돌아보면 그때 저는 회의 자료만 준비했고, 정작 회의에서 무엇을 정할지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참 아까웠고, 이 문제를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혹시 회의만 하면 시간이 모자라고, 끝나도 정해진 게 없어서 고민인 분이 있을까 싶어 이번에 읽은 바카라과 제가 해 본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제가 정답은 아닙니다. 읽어 보시고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하시면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지난 화부터 일 잘하는 법을 다룬 바카라을 한 권씩 펴 보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이어 이번 실무는 회의 준비하기이고, 펴 본 바카라은 "순서 파괴"입니다. 아마존에서 오래 일한 콜린 브라이어와 빌 카가 쓴 바카라이고, 우리나라에는 2021년에 다산북스에서 나왔습니다.
바카라 제목은 아마존이 일을 시작하는 순서에서 왔습니다. 무언가를 다 만들고 나서 고객에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고객이 받을 결과를 먼저 적어 놓고 거꾸로 일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바카라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건 회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마존은 2004년 6월부터 중요한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를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 문장으로 쓴 여섯 쪽짜리 글을 들고 들어가고, 회의는 다 같이 그 글을 조용히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길게는 20분 동안요. (처음 읽었을 때는 회의 시간에 앉아서 글을 읽는다는 게 솔직히 좀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회의가 길어졌던 이유가 거기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회사 회의에 바로 옮길 수 있는 걸 세 가지 골라 봤습니다.
1.
첫 번째는 슬라이드 대신 문장으로 쓰는 것입니다. 바카라에서는 아마존이 파워포인트를 내려놓은 이유를, 글머리표로 쪼갠 슬라이드로는 깊이 따져 보기 어렵고 중요한 생각과 덜 중요한 생각이 다 같은 무게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슬라이드에 "매출 감소, 고객 이탈, 경쟁사 가격 인하"라고 세 줄을 적으면 깔끔해 보이지만, 셋 중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발표하는 사람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이걸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자 고객이 빠져나갔고, 그래서 매출이 줄었다"처럼 문장으로 쓰는 순간, 정말 그 순서가 맞는지를 스스로 다시 보게 됩니다. 물론 파워포인트로 잘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아마존은 이렇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해 보니 문장으로 쓰는 게 슬라이드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문장이 안 써지는 곳이 바로 제가 아직 생각을 덜 한 곳이었습니다. 팀 행사 장소를 정하는 회의라면 슬라이드에는 보통 "후보 A: 회사 근처, 넓음 / 후보 B: 경치 좋음, 이동 1시간" 정도가 들어가는데요. 같은 내용을 "이번 행사는 A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B가 경치는 더 좋지만, 퇴근 뒤에 한 시간을 이동하면 참석하지 못하는 분이 생깁니다. 이번 행사의 목적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라서 참석을 먼저 봤습니다."처럼 쓰면, 읽는 사람은 무엇을 정하면 되는지, 왜 그런지, 어디에 반대 의견을 내면 되는지까지 알고 회의에 들어옵니다. 회사에서 여섯 쪽까지 쓸 필요는 없고, 안건 하나에 1) 무엇을 정해야 하는지 2) 왜 지금 정해야 하는지 3) 내 생각은 무엇인지, 이 세 가지를 담은 문단 하나면 충분하더라고요.
2.
두 번째는 회의 첫 5분을 다 같이 읽는 데 쓰는 것입니다. 아마존 회의는 말을 하면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준비한 글을 읽으며 조용하게 시작합니다. 모두가 같은 글을 읽고, 발표하는 사람도 설명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게 왜 좋은지는 우리 회의를 떠올려 보면 바로 보입니다. 미리 자료를 보내도 대부분은 바빠서 읽지 않고 들어오고, 그래서 회의 첫 20분은 설명하는 데 쓰고 정작 이야기는 남은 10분에 몰아서 하게 됩니다.
회의를 시작할 때 다 같이 읽으면 모두가 같은 내용을 알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건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같은 말도 사라지고요. 물론 우리 회사에서 20분은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한 쪽짜리 글에 5분이면 충분합니다. 설명에 쓰던 20분이 5분으로 줄어드는 만큼 이야기할 시간이 생깁니다. 저는 "시작하기 전에 5분만 이 한 장을 같이 읽고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정도로 말을 꺼내 봤는데, 생각보다 다들 거부감 없이 따라와 주셨습니다.
3.
세 번째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좋은 생각이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카라에서 제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인데요. 회의를 하다 보면 결론이 꼭 가장 좋은 생각으로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 가장 먼저 말한 사람 쪽으로 기울 때가 많죠. 그런데 글로 읽으면 누가 썼는지보다 무엇을 썼는지가 먼저 들어옵니다. 말수가 적은 동료의 좋은 생각도 글로 읽으면 제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회의를 잡은 사람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의견이 있는 사람이 미리 한두 줄씩 적어 오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회의 전까지 이 안건에 대한 생각을 한 줄씩만 남겨 주세요" 정도만 부탁드려도, 회의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던 분의 생각을 듣게 됩니다.
특히 회의를 잡은 사람이 팀장이라면, 먼저 자기 생각을 말해 버리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말하기 쉽습니다.
글을 먼저 읽고, 의견을 먼저 들은 뒤에 내 생각을 보태는 순서로 바꾸기만 해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훨씬 많아집니다.
다만 아마존처럼 하려면 여섯 쪽을 며칠씩 다듬어야 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그대로 하면 회의 준비가 회의보다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1) 여섯 쪽 대신 한 쪽(안건이 여러 개면 안건마다 한 문단) 2) 20분 대신 5분 3) 모든 회의 대신 정할 게 있는 회의만, 이렇게 세 가지를 바꿔서 씁니다. 매주 하는 공유 회의까지 글로 할 필요는 없고, 무언가를 정해야 하거나 의견이 갈릴 것 같은 회의에만 쓰는 것이죠.
한 쪽짜리 글을 쓰다 보면 회의 초대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글의 첫 줄인 "오늘 정할 것"을 초대 메시지에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되거든요. 흔히 보내는 "내일 2시에 프로젝트 관련 회의 있습니다"를 받으면, 받는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자기가 왜 불려 가는지 모른 채 들어옵니다. 이걸 "내일 2시, 다음 달 행사 장소를 A와 B 중에서 정하려고 합니다. 30분이면 됩니다"로 바꾸면 들어오는 사람이 미리 생각을 해 옵니다. 이때 부를 사람도 다시 봅니다. 정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만 부르고, 결과만 알면 되는 사람에게는 끝나고 정리를 보내면 충분합니다. 끝나는 시간을 초대에 적어 두는 것만으로도 회의가 그 시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저도 잘 안 됐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걱정이었는데요. 회의 시간에 읽으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차라리 내가 빨리 설명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을 하며 미팅을 준비해 온 시간을 떠올려 보니 답이 보였습니다. 잘 풀린 미팅은 대부분 제가 미리 한 장으로 정리해 간 미팅이었고, 무엇을 여쭙고 무엇을 정하고 싶은지 적어 가면 상대도 금방 같은 곳을 보셨습니다. 반대로 자료만 잔뜩 들고 간 날은 설명하다 시간이 끝났고요.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글이 안 써지는 날이면 회의를 하루 미루는 편입니다. 아직 정할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더라고요.
혹시 내일 회의가 있다면, 회의 전에 이 다섯 줄만 먼저 채워 보셔도 좋겠습니다. 1) 오늘 정할 것 2) 지금 정해야 하는 이유 3) 제 생각 4) 다른 선택지와, 그걸 고르지 않은 이유 5) 정하고 나면 누가 무엇을 하는지. 다섯 줄을 채우다가 막히는 곳이 있으면, 그게 회의에서 꼭 이야기해야 할 곳이더라고요.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은, 회의 준비는 오늘 무엇을 정할지 한 문장으로 적어 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화의 "논리의 기술"도, 이번 "순서 파괴"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쓰고, 읽는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을 맨 앞에 두라는 것이죠. 바카라이 한 권씩 늘 때마다 이 공통점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같이 적어 두겠습니다. 여러분 회사 회의에서는 설명, 딴 이야기, 결론 안 나는 토론 중에 무엇이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나요? 댓글로 알려 주시면 다음 회의 편에서 그 부분을 더 깊게 다뤄 보겠습니다.
참고한 바카라: 콜린 브라이어·빌 카, "순서 파괴"(유정식 옮김, 다산북스, 2021)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