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잘하는 법

결론을 먼저 말하지 못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김도경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회사에서 보고는 빠질 수 없는 업무 중 하나이죠. 예전의 저는 보고 자료만 꼼꼼하게 준비하면 보고는 잘 끝나는 줄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예전의 저처럼 보고 때마다 설명이 길어지는 분이 있을까 싶어 그동안의 기록을 꺼내어 공유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보고 전에 빈칸이 있는 문장 몇 개를 먼저 채워 보면, 할 말이 정리되고 보고가 훨씬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정답은 아닙니다. 제가 해 보니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로 봐 주세요.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일을 맡아 끌고 가다 보면 보고할 일이 많아집니다. 매주 진행 상황을 올려야 하고, 중간중간 결정을 받아야 하는 일도 생기죠. 보고가 잘 풀려야 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한 번은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서 들어갔어요. 숫자도 다 맞췄고, 슬라이드도 순서대로 넘겼습니다. 그렇게 20분쯤 혼자 구구절절 설명했을 때 제 상사가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뭘 정해 드리면 돼요?" 속으로 '아, 그걸 처음에 말했어야 했는데' 싶었습니다. 참 속상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제 상사분이 제 이야기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셨다는 거고, 그건 제가 요지를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잖아요.

저는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듣는 분이 뭘 하시면 되는지는 빠져 있었던 것이죠.


2.

그 뒤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기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말이죠. 심플합니다. 저는 보고 전에 빈칸이 있는 문장 몇 개를 먼저 채워 봅니다. 1) "오늘 정해 주셨으면 하는 건 ○○ 하나입니다." 2)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예요." 3) "지난주엔 ○○을 했고, 이번 주엔 ○○을 합니다." 4) "안 하면 ○○, 하면 ○○가 좋아집니다." 5) "제가 이걸 여쭤보는 이유는 ○○ 때문이에요." 채우다 보면 할 말이 정리되더라고요. 못 채우는 칸이 있으면 거기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부분입니다.


결정을 받으러 가는 보고라면 첫 번째 문장을 맨 앞에 둡니다. 듣는 분은 이 한 줄로 '끝에 내가 뭘 골라야 하는구나' 하고 들을 준비를 하시거든요. 이 칸이 안 채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 그건 보고라기보다 공유에 가깝습니다. 그럴 땐 "오늘은 공유만 드리려고요"라고 먼저 말하면 듣는 분도 편하게 들으십니다. 두 번째 문장은 자료에 있어 보이는 단어가 늘어날 때 씁니다. 고도화, 최적화, 시너지 같은 것들이요. "그게 구체적으로 뭐예요?" 한마디에 말이 막혔던 적이 저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있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골라 초등학생도 알게 풀어 봅니다. 고도화라면 "버튼을 세 번 누르던 걸 한 번으로 줄인다"처럼요. 제가 그 단어를 풀어 쓸 수 있으면 풀어 쓴 말로 바꾸고, 안 풀리면 그 단어를 뺍니다. 어차피 풀어 쓸 수 없으면 제 것이 아니에요.


진행 보고는 세 번째 문장 두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지난주에 한 일 하나, 이번 주에 할 일 하나요. 결과가 아직 없을 때 특히 좋습니다. 결과가 없으면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오히려 길게 설명하게 되잖아요. 이 두 줄이면 멈춰 있지 않다는 게 바로 전해집니다. 자세한 건 물어보시면 그때 답하면 됩니다. 새로운 걸 제안할 땐 네 번째 문장을 먼저 채웁니다. 좋은 점만 말하면 잘 와닿지 않더라고요. 안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같이 말하면 듣는 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바로 아십니다. 채우다 보면 제 제안의 빈 곳도 보입니다. "안 하면" 칸이 비어 있으면 생각보다 급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마지막 문장은 질문을 드릴 때 씁니다. 이유 없이 "이건 어떻게 할까요?"만 여쭈면 듣는 분은 왜 이걸 지금 묻는지부터 궁금해하십니다. 이유를 먼저 붙이면 답도 빨리 나옵니다. 맥락 설명이 중요하다는 말을 상사들에게 워낙 많이 들어서, 저도 이런 방법을 생각했나 봐요. 지난주 보고는 첫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 정해 주셨으면 하는 건 일정 하나입니다." 자료는 세 장만 넘겼고, 10분 만에 "그럼 다음 주 화요일로 가죠"라는 답을 받고 나왔어요.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면, 보고는 듣는 분이 무엇을 정하시면 되는지부터 알려 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도 아직 보고 때마다 말이 길어져서 연습 중입니다. 다들 보고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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