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리에서, 한동안 입을 다물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 몇 달은 결론 대신 반례를 모았습니다

by김도경 dkkim

“한동안은 아무 말도 보태지 마세요. 듣기만 하셔도 됩니다.” 처음 해 보는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들은 말입니다. 새로 옮겨 온 자리에서 저는 빨리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그렇듯이요. 나름대로 준비도 철저히 해 갔습니다. 관련 자료를 샅샅이 읽고 정리하며, 회의 때 던질 만한 말들도 몇 개 챙겨 두었습니다.


1.

그런 제게 처음 주어진 과제가 ‘침묵’이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서운했습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 것만 같아 불안했습니다. 그 무렵의 저는 늘 스스로가 모자라다고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조급했죠. 더 잘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결핍의 마음 덕분에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마음은 저를 자주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계속 성과를 내고 싶었고, 그 조급함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제가 가지고 온 결과물들과 판단들은 계속해서 상사에게 반려를 당했고요. 그 당시 제 머릿속에 들어가 보면, 아래와 같은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은 없으며, 모든 상황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유연한 사고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습니다. 왜 처음 몇 달 동안 제가 내린 판단들이 보통 틀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입니다. 제 상사분이 저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주셨는데요.
“배운 걸 바로 써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처음엔 정리만 하셔도 충분해요.”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정리하는 것과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도대체 뭐가 다른가 싶었으니까요. 한참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정리는 본 것을 본 대로 두는 일이었고, 내 것으로 만드는 건 거기에 '나만의 결론'을 성급히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결론을 내리는 순간부터, 새로 보이는 것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2.

몇 주 뒤, 다른 선배 한 분도 비슷한 조언을 건넸습니다.
“본 걸로 바로 결론 내지 마세요. 반대 경우가 꼭 나오거든요.” 선배는 결론 대신 적어야 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상대는 이렇게 반응했다." 이런 것들을 많이 써 놓으세요. 저에게 이렇게 알려 준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론은 대개 “상대는 이렇다”라는 단정으로 끝났지만, 관찰은 내가 한 말과 상대의 반응을 나란히 붙잡아 둡니다. (의견 없이요) 결론을 적으면 상대를 '판정'하게 되지만, 관찰을 적으면 내가 한 말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비로소 편견과 판단 없이 보게 됩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느 쪽으로 적느냐에 따라 다음번에 내가 고칠 수 있는 영역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상대는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내가 던진 말과 행동은 다음번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가 굳이 정리의 형태까지 세심하게 지정해 준 이유를,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선배에게 반려당했던 기획안 역시 '나만의 결론'만 가득한 문서였습니다. 무엇을 바꿀지는 열심히 적었으면서, 그 이야기가 읽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해될지는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의 저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본 게 쌓이면 빨리 결론을 내고 정리하는 게 일을 잘하는 것 아닌가? 몇 달씩 결론을 미루는 건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돌아보면 좋은 생각은 아니었어요. 만약 처음 몇 주 동안의 제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면, 아마 이런 문장들이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제 고객)가 좋아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제 고객)은 이런 걸 싫어한다.”


참 그럴듯해 보입니다. 한두 번 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언제나 그럴듯한 법칙이 만들어지니까요. 하지만 선배의 조언대로 반대의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꺼내도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은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만약 결론을 먼저 내려 가두어 두었다면, 저는 제 법칙에 맞지 않는 한쪽을 그저 '예외'라며 치워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찰의 모양으로 적어 둔 덕분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반응은 모두 다음번에 내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소중한 관찰 거리가 되었습니다.


반례는 제 결론을 깨부수는 방해물이 아니라, 제가 아직 모르는 곳이 어디인지를 친절하게 짚어주는 표시등이었습니다.


3.

물론 제 의견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던 한두 달의 시간이 편안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제 쪽을 보며 의견을 물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미리 챙겨 간 문장들이 입안에서 맴돌곤 했습니다. 빨리 말하고 싶었나 봐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중 대부분은 자기계발서에서 읽고 그저 외워 간 문장들이었습니다. 제 것이 아닌 것이죠. 만약 그 자리에서 섣부르게 꺼냈다면, 상대가 한 번만 되물어도 금세 밑천이 드러나 막혔을 말들이었습니다.


옆에서 묵묵히 듣기만 하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적는 것뿐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기억을 더듬어 상황을 다시 적어 내려갔습니다. 마치 바둑 기사가 대국이 끝난 뒤 바둑판 위에 돌을 처음부터 다시 놓아보며 '복기'하듯이요. 누가 무슨 말을 먼저 꺼냈는지, 상대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쳤는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도대체 무엇이 흐르고 있었는지.


처음 제게 말을 보태지 말라던 선배는 이런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실력은 완만한 비탈길처럼 서서히 오르는 게 아니라, 툭 꺾이는 계단처럼 도약하는 것이라고요. 처음엔 잘하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를 겨우 제 것으로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 하나로 한동안 버티다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벽을 만나 크게 꺾입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의 하나를 다시 붙잡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좋은 비유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처음 붙잡은 무기 하나를 절대적인 '정답'이라 맹신해 버리면, 꺾이는 날 그 정답과 함께 나 자신도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반면 나만의 정답에 갇히지 않고 수많은 '반례'를 차곡차곡 모아 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꺾이더라도 다시 딛고 일어설 또 다른 무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내는 건, 새로운 자리에 선 사람이 받는 압박의 무게를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새로운 자리에서 어떻게 적응했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는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팀장은 첫 회의에서부터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만 같고, 이직한 지 한 달 된 사람은 눈에 띄는 성과 하나쯤은 당장 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그래서, 이제 뭘 보여줄 건데?"라며 다그치는 듯하니까요. 저 역시 그 숨 막히는 조급함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마다, 저는 오래전 그 선배가 던져 준 질문을 제 상황에 맞게 넌지시 바꾸어 봅니다. 새로 온 팀장이라면 ‘이 팀은 왜 지금까지 이 방식을 고수해 왔을까?’가 될 것이고, 이직한 사람이라면 ‘이 회사에서는 왜 보고가 이런 순서로 올라갈까?’가 될 것입니다. 섣부른 답을 내리기 전에 우선 관찰과 물음표로 자리를 비워두면, 이상하게도 조급함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모르는 게 당연한 시기'라는 사실을, 내 손으로 적은 질문들이 대신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요.


1화에서 저는 '진짜 납득'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어떤 송곳 같은 질문이 날아와도, 온전히 내 자산이 되어 단단하게 버텨 주는 답 말입니다. 새 자리에서 보낸 처음 몇 달은 역설적이게도 그 반대편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 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급하게 내놓은 결론은 언뜻 완벽히 납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반례 하나에도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 결론은 아직 내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지금도 저는 새로운 일을 맡으면 어김없이 조급해집니다. 처음에 무언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여전합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딱 하나입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알 것 같은 오만한 순간이 찾아오면, 의식적으로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고 기다립니다.

내 얄팍한 결론을 깨뜨려 줄 반례가, 적어도 한 번은 찾아올 때까지.


ps. 이 글마저 선배의 말대로 그럴듯한 결론 없이 담담하게 끝내려니, 솔직히 손끝이 조금 근질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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