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던 기획안이었는데, 질문 하나에 막혔다

그 기획안은 아직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by김도경 dkkim

과제를 했다는 것과, 그 과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행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1.

"그래서, 이게 되면 우리가 얻는 게 뭐예요?" 몇 해 전, 제가 쓴 기획안에 돌아온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 하나에 막혀서 한참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저는 윗분의 지시로 기획안 하나를 맡았습니다. 우리 본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 보자는 제안서였습니다. 윗분은 저에게 맡기시면서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분명히 이런저런 질문이 나올 거야. 받을 질문을 미리 생각해 둬."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죠. 기획안은 금방 나왔습니다. 문제도 적고, 해결바카라도 적고, 생길 수 있는 위험까지 적었습니다. 제 눈에는 빈 곳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자신 있는 기획안이었습니다. 칭찬받을 생각에 기획안을 올리기 전에 제 선배 한 분께 먼저 보여 드렸습니다. 칭찬을 기대했죠. 두근두근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는 한참 보더니 물었습니다.


"이게 왜 필요한데요?" 필요하니까요, 라고 답했습니다. "근거는요?" 준비한 데이터를 나열하며 나름의 이유를 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추가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래서 이게 되면, 우리가 얻는 게 뭐예요?" 거기서 막혔습니다. 무엇을 바꿀지는 열심히 적었는데, 정작 '바꾸고 나서 무엇이 좋아지는지'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기획안의 핵심이 빠진 것이죠. 배경과 필요성은 장황했으나, 결론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가 없으니 검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되는 게 당연했습니다.


2.

그날 알았습니다. 저는 기획안의 제목을 멋지게 꾸미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상대방의 관점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예상 질문을 준비했는데도 제 답이 무력했던 이유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되질문 한 번에 쉽게 무너질 만큼, 정교하지 못하고 깊은 단계까지 들어가지 못한 기획안이었던 것이죠.

가장 큰 문제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직접 써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AI에게 물어보고 '아, 이해됐네' 하고 넘겨짚었을 뿐(실제로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대응도 하지 못했습니다), 겉돌기만 하는 예상 질문 대응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이든 제가 직접 써 보고 여러 관점에서 직접 쪼개 보지 않으면 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제 것이 된다는 것은 제가 직접 썼다는 뜻입니다.


3.

사실 저는 예전에 납득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24년 11월에 쓴 "일을 잘한다는 것: 납득"입니다. 그 글에 적은 납득의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이 일의 배경과 의도를 아는가. 그 맥락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받을 질문에, 내 말로 답할 수 있는가.


그 뒤로 빠진 하나를 채우는 연습을 합니다.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막히는 곳이 하나라도 있으면 전부 묻습니다. 윗분에게도, 선배에게도, 요즘은 AI에게도 묻습니다. 그리고 예상 질문을 뽑습니다. "그래서 왜?" "안 되면?" "되면 뭐가 좋아져?" 답은 제가 먼저 적습니다. 문장이 안 되면 키워드라도 적고, 그게 맞는지 AI에게 검증을 시킵니다. 순서가 중요했습니다. 남이 써 준 답을 외워 가면, 질문이 조금만 비틀려도 막혔습니다. 제가 적은 답을 조금씩 다듬어 가면,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제 의견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나눕니다. 어떤 것을 이해했다고 보이는 상태는 두 가지입니다.

1)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상태. > 납득

2) 어떤 질문이 와도 답이 완전히 내 것인 상태. > 진짜 납득


앞의 것이 납득이라면, 뒤의 것을 저는 진짜 납득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자주 막힙니다. 진짜 납득했다고 믿고 들어간 자리에서도, 처음 듣는 질문 하나에 말이 멈추곤 합니다. 다만, 달라진 건 하나입니다. 막힌 질문을 이제는 적어 둡니다. 그 질문이 다음번 예상 질문의 맨 윗줄이 되니까요. 저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겁니다.


이 연재는 그렇게 적어 둔 날들의 기록입니다. 일을 받고, 부탁하고, 설득하고, 거절당하고, 사람을 맡고 가르치기까지. 그 사이 제가 막혔고 개선했던 부분들을 한 편에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알겠습니다" 하기 전에 스스로 검증하며 묻는 습관은 생겼습니다.

질문에 답할 때, 남의 언어가 아닌 '내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가.




"진짜 일을 잘한다는 것" 2권은 월·수·금 아침 8시에 이어집니다.

회사에서 매일 하는 실무 하나에 일 바카라 한 권씩을 엮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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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 기획안은 결국 제목부터 다시 썼습니다. 처음 제목은 부끄러워서 안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