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할수록 가라앉는다

누군가 보고 있다고 느낀 순간, 가라앉았다

by맛있는 하루

오전 9시. 레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즘 부쩍 회원이 늘어 여름엔 붐비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던 참이라, 이날의 고요는 뜻밖의 횡재 같았다. 함박눈 쌓인 운동장에 첫 발자국을 찍을 때 같은 설렘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잔잔했다. 그 고요함을 혼자 누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웜업으로 자유형 다섯 바퀴를 돌고 일어섰다. 수경 끈을 조절하려 잠시 벗었는데, 옆 레인에 낯선 회원 한 분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방금까지 헤엄치던 나를 보고 있었다.


"수영 잘하시네요. 저는 자유형 글라이딩이 잘 안 되던데, 회원님 보면서 연구 좀 해볼게요. 괜찮죠?"


"그럼요." 별생각은 없었다. 연구해봐야 얼마나 더 보겠어. 그렇게 여기고 다시 물살을 갈랐다.


세 바퀴, 네 바퀴를 넘어가는 동안에도 그분의 시선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사이드턴을 할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부터였다. 몸에 없던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잘 보이고 싶은 순간, 나는 이미 균형을 잃고 있었다.


팔은 평소보다 크게 휘저었고, 킥은 더 세차게 뻗었다. 물살을 가르는 게 아니라 물과 싸우고 있었다. 숨은 가빠졌고 몸은 자꾸 옆으로 기울었다. 돋보이려 애쓸수록 몸은 오히려 말을 듣지 않았다.


세 바퀴 만에 숨이 차 레인 끝에 멈춰 섰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 거리였다.


ChatGPT Image 2026년 8월 2일 오후 02_58_35.pngAI 생성 이미지 활용


힘을 뺀다는 건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에 나를 맡기는 감각이다. 물을 이기려 들면 물은 더 세게 밀어낸다. 반대로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면, 물은 오히려 나를 앞으로 보내준다. 잘하려는 마음이 나를 가라앉히고 있었다는 걸, 다시 배웠다.


독서도 다르지 않다. 어제는 가족 행사로 하루가 빡빡했다. "일정이 바쁘니 30분 동안 100페이지만 읽고 출발해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바카라을 폈다. 페이지 수를 의식하자 바카라장은 희한하게도 더디게 넘어갔다. 인물 이름이 자꾸 헷갈렸고, 방금 읽은 문장을 다시 읽어야 했다. 눈은 글자 위를 지나가는데, 머릿속은 남은 시간과 페이지를 세고 있었다.


잘 읽으려는 마음, 많이 읽으려는 마음이 오히려 읽기를 방해했다.


박애희 작가는 <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썼다.


"행복해지려면 무언가를 더 가지거나, 더 해야 할 것 같지만 행복의 고수들은 다르게 말합니다. 작가 마스다 미리 는 행복해지는 법을 묻는 질문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가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고요. (중략) 완벽한 디자인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_ p.190, 박애희, <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


문장을 다시 읽으며 '행복' 자리에 다른 말을 넣어본다. 수영도, 독서도,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언가를 더하는 기술이 아니라, 돋보이려는 마음, 과시하려는 스트로크, 꾸미려는 문장을 덜어내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며칠 뒤 같은 시간, 레인엔 다시 나 혼자였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곁눈질을 하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보는 눈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잘 보이려는 스트로크'를 하고 있었다.


힘을 빼는 연습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 모양이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물은 애쓴 만큼 정직하게 반응한다. 문장도 다르지 않아서, 꾸미려는 마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곧 다시써야 하는 문장이 된다. 잘하려는 마음을 살짝 내려놓는 것. 이번 한 주, 물속에서 그 연습을 다시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헤엄치듯 읽는 법]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는 응답 대신 호흡에 집중한다. 읽을 때는 페이지 수 대신 지금 이 문장에 머문다. 잘 보이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만히 내려놓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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