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할머니는 정말 행복했을까?
2022년 1월 두 아이와 남편을 미국에 두고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고작 2주 동안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머니의 머릿속 기억이 손안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기억을 한 톨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 소중한 모래알들을 모두 다 내 안에 담고 싶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인 때 할머니께서 혈관성 치매가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시국이었기에 할머니의 기억이 오래 유지되길 바랄 수밖에 없던 시간. 서서히 코로나 규제가 풀릴 때까지 어언 1년 반이란 세월이 지났을 때 비로소 나는 저 아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을 할머니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건저내기 위해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갔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을린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웃을 때 깊이 패이는 눈가의 주름. 그 주름만큼 작아지는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웃을 때 보이는 유난히 하얗고 토끼같이 커다란 앞니.
그 모습은 마치 신기한 것을 마주한 소년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할머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전화로 할머니의 안부를 물을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나의 안부만 되물을 뿐 본인의 이야기는 하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잘~지내. 너무 잘 지내지. 매일 놀고먹고 건강하고. 소임이만 건강하면 돼. 소임이만 건강하면"
하지만 말하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꿈틀 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이야기들이 할머니께는 아주 평범한 쓸모없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들은 그 시대를 산 할머니께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야기들일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방에서 시작된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고 불고 떼쓴 덕분에 할머니와 꼭 붙어 생활하던 나의 어린 시절.
할머니는 한시도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고 계셨고 그 옆에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할머니께서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하실 때에도, 옆에서 나물을 다듬으실 때에도, 바느질을 하실 때에도, 반찬을 만드실 때에도, 언제나 바늘 가는 데 실가 듯 할머니 옆에 붙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는 할머니의 6.25 전쟁 피난 이야기.
"네 이모할머니는 어려서 할머니 엄마가 엎고, 나는 그래도 열몇 살 먹었으니께... 할머니 엄마가 이래. '빨리 쫓아와! 빨리 안 쫓아오면 잃어버리는 거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연신 나물만 다듬으면서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함께 다급했다.
"그렇게 가다 보면 하늘에서 군용 비행기들이 왱!!! 하고 지나가. 그리고 갑자기 쾅! 하면서 그 깜깜한 밤에 갑자기 모든 게 환해. 너무 눈이 밝아서 깜깜한 밤인데도 발 밑에 개미들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여."
"왜? 왜 그런 거야?"
나는 숨을 죽이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연신 나물을 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그 얘기들이 어찌나 실감 나던지 만 다섯 살도 되지 않았던 내 머릿속에 그 아이기들이 아직도 마치 영화를 보듯 떠오르곤 한다.
"비행기들이 폭탄을 떨어뜨리니까. 그럼 뭘 어떻게. 꼼짝없이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졸면서 걷는 거야. 바닥만 보고 계~~속 걷는 거야."
전기세를 아끼시느라 낮에는 항상 불을 꺼두셨던 컴컴한 집. 티브이조차 틀어져 있지 않은 고요하고 작은 공간 속 나와 할머니. 그 시절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살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난 내 상상 속에서 어린 할머니와 만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우리 할머니, 10대 시절의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 속을 뛰어다녔다. 상상 속에서 난 할머니와 함께 일본군을 피해 땅굴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밤을 새우며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혼의 짝꿍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할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점점 멀어지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들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언젠가 그때 이야기들이 생각나, "할머니,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해 줘~ 피난 이야기 해줘~"하면,
"에이 뭔 옛날이야기를 해. 소임이 이야기해"라고 하시며 다시 그때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시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제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고 나 역시 더 이상 할머니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할머니를 만나러 가면 언제나 듣는 말이 있었다.
"우리 소임이가 을매나 이쁜지. 우리 소임이 애기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 내가 최고루 행복했어"
그럴 때면 나는 그 당시의 할머니를 잠시 만난다. 언제나 컴컴한 집에서 집안일을 하시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정말 그때가 제일 행복하셨을까?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자마자 나는 그 시간이 소름 돋게 그리워졌다. 다시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눈물이 흘렀다.
더 물어볼걸.... 어릴 때처럼 쫓아다니면서 얘기해 달라고 조를걸...
코로나로 1년 반을 기다리던 나는 결심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쁘던 상관없이 한국에 들어가 꼭 할머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내가 구해내겠다고.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고 그 2주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종종 내 안 깊은 곳에 숨 쉬며 나를 지탱해 준 할머니와의 추억들을 하나둘씩 꺼내 보게 되었다.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들을.